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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회사원 김씨는 지난 해 아는 컨설턴트를 통해 재무상담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복잡하게 가입하고 있는 보험을 정리하고 실제 부담한 병원비 만큼 보장을 해주는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했다. 이전보다 보험료도 줄고 보장 범위는 넓어진 것 같아 내심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 생명보험사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실손 의료비 특약이 새로 출시되어 상품 설명과 가입 제안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실손보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그 실손보험보다 훨씬 좋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에도 실손보험을 정리하느라 기존의 보험을 해약하면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본 상태였다. 불과 일년도 안돼서 더 좋은 상품이 나왔다는 말이 화가 났지만 더 좋은 실손보험이라는 말에 하나 더 들어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었다.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에 대한 삼성생명의 보고서(2003). 현재 4단계까지 진행되고 실손형의료보험이 활발히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영리병원과 결합한 수익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과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을 확대하는 단계를 앞두고 있다.
민영의료보험의 발전단계에 대한 삼성생명의 보고서(2003). 현재 4단계까지 진행되고 실손형의료보험이 활발히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영리병원과 결합한 수익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과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을 확대하는 단계를 앞두고 있다. ⓒ 경실련 김동영

민영의료보험 과소비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의 보장율이 2005년 기준 61.3%에 불과하다. 세금처럼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지만 병에 걸렸을 경우 병원비 걱정을 안해도 되는 현실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때를 대비해 건강보험 하나에 의존하지 못하고 민영의료보험을 하나 둘 가지고 있다. 

이전 참여정부 시절에는 2008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70%까지 보장율을 높이겠다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드맵을 발표해 일부 시행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정 악화를 이유로 심지어 올해는 6세 미만 아동의 본인부담금 전액 면제와 식대의 보험 적용이 크게 후퇴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의료보험 시장을 민영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어 의료보험 시장을 둘러싼 각계 각층의 논란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병원의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이다. 즉 건강보험증을 갖고 있는 환자가 왔을 때 해당 병원이 건강보험을 거부하고 민간 의료보험과 맺은 계약내용대로만 병원비를 부과하게 할 수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가족부의 '당연지정제 유지' 방침에도 이러한 의료시장 정책 변화를 읽고 생명보험사들은 앞다투어 민영의료보험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추세이다.

얼마 전 삼성생명의 민영의료보험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민영의료보험의 최종목표를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으로 정의하고 실손상품을 도입해 판매를 시작했다. 실손상품 도입을 '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라는 목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의료시장 민영화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란을 크게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보험사의 최종적 목표 달성까지 거론하지는 않겠다.

문제는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한 실손보험 판매에서부터 소비자들의 민영의료보험 과소비가 크게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생명보험사들의 실손 보험 시장 진출 전까지는 손해보험사들만이 실손 의료보험 판매를 해왔다. 그럼에도 실손보험 시장은 은근한 과당 영업 경쟁으로 소비자들가 불필요한 중복가입을 하게 만들어 보험료 과소비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영업 실력이 대단한 생명보험사들이 판매 경쟁에 가담하면서 소비자의 보험 과소비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 우려된다.

실손보험 1+1=1?...중복보장이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실손의료보험은 가입 후 병원치료를 하게 되면 소비자가 부담한 병원비만큼 보험금을 주는 상품이다. 이전의 생명보험 상품들은 주로 정액보험이었다. 즉 병원비가 얼마가 나왔건 가입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대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이었다. 암에 걸렸을 때 병원비가 1000만원이 나왔어도 유지하고 있는 보험상품이 2000만원짜리면 2000만원을 수령하고 500만원짜리면 500만원만 수령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개 보험상품에 가입되어 있어도 해당 질병이 보험약관에 나와 있는 내용이 아니면 병원비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었다.

그에 비해 실손보험은 병원비 만큼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전의 정액 보험보다는 실효성이 높은 상품이다. 문제는 실손보험은 정액보험과 달리 중복으로 보장이 안된다는 것이다. 즉 2개의 실손보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병원비가 100만원이 나왔다고 200만원의 병원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두 군데 보험사에서 절반씩 보장을 해 주게 되어 있다.

대부분 소비자들은 이런 중복보장이 안되는 실손보험의 성격을 잘 모르고 가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내용의 실손 보험을 두 개씩 들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나 이상은 그 자체가 이유없는 지출일 수밖에 없는 과소비가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손해보험사들끼리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이런 보험 과소비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명보험사들의 과당 영업경쟁이 가담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우려가 분명히 있다.

약간의 차이로 똑같은 보험을 두 개 들다!

사례의 김씨처럼 이미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을 갖고 있는 소비자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약간의 차이를 내세워 갈아타기 혹은 추가 가입을 유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과 생명보험사의 실손보험의 보장 내용은 일부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생보사의 것이 손보사의 것보다 못한 내용도 있다. 예를 들면 손해보험의 경우 입원실료, 입원제비용, 수술비 등에 대해 전액 보상을 하고 있으나 생명보험의 경우 80%만 보상하고 있다. 생보사가 좀더 유리한 내용은 통원에 있어서 손보사가 5000원을 공제한 금액에 대해서 하루 10만원을 한도로 지급해 주는 반면 생명보험은 하루 10만원 규정이 없어서 고액의 치료 또는 하루에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좀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약간의 차이일 뿐이다. 어짜피 보험이라는 것이 반드시 일어날 확정적인 사건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는 확률까지 들이댄다면 이런 약간의 차이는 상당히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능력있는 설계사는 약간의 차이를 대단히 큰 차이로 포장하는 영업력이 있다. 그에 비해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중복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내용이 중복되어 보험료의 상당부분이 그대로 새나가는 돈이 될 수밖에 없음은 충분히 고지하지 않을 위험이 있다. 결국 보험사만 좋은 일 시키는 실손보험의 중복가입으로 소비자들의 지갑만 가벼워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중복 보장은 NO! 중복 가입은 은근히 환영!

삼성생명은 실손보험의 중복보장을 방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벌써부터 소비자들에게 손보사에 가입되어 있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동의서를 받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보험사가 고객 중심의 판매를 한다면 그 정보 동의서는 가입 당시부터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도덕적인 영업관행이 자리 잡을 것이란 기대는 어렵다. 아마 가입 당시 중복가입하는 것은 오히려 환영되고 심지어 일부 지점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비교 영업을 권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에 비해 보장 당시에는 대단히 철저하게 중복보장이 되지 않도록 프로페셔널을 발휘할 것이 뻔하다.

생보사의 실손 보험 시장 진출을 앞두고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중복 가입을 법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양심적인 영업행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를 풀어 기업에게 영업이익을 극대화 할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자체에 대한 비판은 둘째로 하자. 그러나 규제완화에 따른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요소에 대한 보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의 피해가 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복 보장이 안되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중복 가입이 안 되는 시스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한 개면 될 실손보험을 두 개 세 개를 가입해 보험사의 영업이익만 고스란히 늘려주는 것이 될 것이다.


#민영의료보험#실손보험#중복가입#생명보험#손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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