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게 문제다. 만두, 새우깡, 오리, 닭, 쇠고기 까지. 미친 소를 먹기 싫다고 촛불을 들고 청계천을 찾는 데는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2008년 한국 사회에 광우병 유령이 떠돌고 있는 것처럼, 먹고 사는 것은 요즘 최대 이슈다. 이러한 시기에 혜성처럼 떠올라 각종 인터넷 서점 인기 검색어를 장식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죽음의 밥상>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가히 논쟁적이다. 장장 446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온통 먹거리 얘기다. 그러나 여느 먹거리 책처럼 나부터 잘 먹고 보자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은 1980년 <동물 공장>이라는 책을 쓰면서 공장식 농업 논쟁을 불러온 바 있다. 이 책은 1980년 수정, 증보되었고 공장식 농업을 넘어 유기농 열풍, 공정 무역 운동, 윤리적 소비주의 등으로 쟁점이 넓어지자 <죽음의 밥상>을 쓰게 되었다. 피터 싱어는 철학자다. 짐 메이슨은 농부이자 변호사다. 이들 둘이 만나 <죽음의 밥상>이 나오기까지 그들은 칠면조 사육의 실상을 알고자 스스로 잡역부가 되어 칠면조 우리 작업을 하고, ‘쓰레기통 다이버’들의 생활을 알고자 직접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필자들의 이러한 열정을 보는 것 만 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죽음의 밥상>은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부터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완전 채식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족의 100% 리얼리티 식탁을 공개한다. 필자들은 ‘가족들의 식탁’을 통해 그들의 고민과 식생활에 대한 가치관에 주목했다. 한국의 독자들은 ‘미국 밥상 논쟁’에 대해 다소 거리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미국 가족의 고민은 사실 한국 가족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내 식탁에 올라온 이 돼지는 항생제 덩어리가 아닐까? 이 닭들은 어떤 도축과정을 거친 것일까?’ 하는 먹거리에 대한 의심들, 그리고 연이어 누구나 수긍하고 마는 ‘가격과 편리함’.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을 갖고 있는 힐러드-니어스티머 가족은 한국의 보통의 잡식주의자 패턴과 거의 같다. 이 가족은 고기와 감자 중심의 전형적인 미국의 아침 식사를 하고 월마트에서 식품을 구입한다. 물론 유기농 식품을 선택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차로 25분 거리를 더 가야하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식비를 요구한다.
전형적인 잡식주의자를 넘어, 양심적인 잡식주의자 매서렉-모타밸리 가족을 보자. 이 가족은 채소 위주의 잡식 식단을 갖고 있다. 유기농 달걀을 사며 아이들에게 콩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있다. 우리 주변에 생협이나 한 살림 등을 이용하는 이들과 비슷한 유형이다. 이들은 편리함과 원칙주의의 기로에서 매번 갈등한다. 생활은 단연 녹록치 않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잡식주의자 두 가족을 보면 소비자들은 수시로 갈등하고 의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민에 부응하고자 이 책은 닭의 도축과정, 칠면조의 사육과정, ‘유기농 인증’과 ‘인도적 사육 인증’ 달걀에 대한 이야기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그 중, ‘닭장 속으로’라는 제목의 글은 가히 충격적이다. 주의 글에는 ‘일부 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져 있는데, 정말 불쾌감을 느낄 내용이었다. 닭의 사육과정 및 도축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와 있는데 산 채로 튀겨지거나 눈알이 머리에서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로 보였다.
닭의 도축 과정의 끔찍함에서 벗어나는 것도 잠시, 곧이어 광우병 쇠고기가 나왔다. ‘미국에서 매년 새로 태어나는 3,600만 마리의 송아지가 두당 66파운드의 닭장 쓰레기를 먹고 있다’는 글은 한국 내 퍼지고 있는 광우병 유령을 다시 한번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불쾌한 글을 넘어 완전한 채식주의자들을 찾아가보자. 조앤과 조 파브 가족은 베건이다. 채식주의자들도 먹는 음식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이중 베건은 동물성 음식을 일체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보통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영양 불균형에 대한 지적을 하기 쉬운데 오히려 베건의 경우 더 건강할 수 있다는 각종 증명들을 통해 독자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피터싱어와 짐 메이슨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윤리적 원칙을 제안했다. 투명성, 공정성, 인도주의, 사회적 책임, 필요성이 바로 그것이다. 투명성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권리’를 말한다. 공정성은 ‘식품 생산 비용을 다른 쪽으로 전가하지 말 것’을 말하며, 인도주의는 ‘중요하지 않은 이유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노동자에게 타당한 임금과 작업 조건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책임, ‘생명과 건강의 유지는 다른 욕망보다 정당하다는’ 필요성까지 견지한다면 당신은 이들이 제안한 윤리적 제안에 근접한 식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 어렵다. 원칙적인 사람이 되기란 식생활이나 모든 면에서 어렵다. 그러나 <죽음의 밥상>은 결코 고지식한 원칙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 책은 말한다. ‘먹을거리는 윤리 문제이다. 하지만 광신은 필요 없다.’ 이 말은 상당히 중요하다. 개인적인 상황과 여건, 그리고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 등을 고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취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책은 월마트에 가는 잡식주의자를 비판하지 않고, 완전한 채식주의자 베건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모든 상황의 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다양한 식생활에 대해 독자에게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선언적이다. 또한 로컬푸드 시스템부터 유기농 농업의 필요성, 공정 무역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밥상의 문제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책을 읽는 다수의 사람들이 실생활과의 모순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조금씩 노력하는 것이다. ‘<죽음의 밥상> 덕분에 내 밥상은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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