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우리가 더욱 용감해지고 더욱 강한 자의식을 키워가도록 도와준다.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을 매일 새롭게 체험하고 더 많은 자신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중략)…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깨달음의 경지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생각이 모든 종류의 상상, 감정,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고통은 끝이 난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자비와 사랑으로 영혼을 채운다. …(중략)….
지은이의 말은 사랑과 해방, 진리와 자비로 채워져 있지만, 부끄럽게도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로 나는 '싸움닭'이 됐다. 활달한 것 같아도 은근히 '샤이'한 성격은 어지간한 일은 못본 체 넘어가거나, 속으로 앓고 지나가거나, 그도 안 되면 속내를 알아주는 형제들에게 풀곤 했다. 그러다 태중에 아이가 생기면서 점점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 하나만을 의지해 탯줄에 매달려 있는 어린 생명을 '내가 아니면 누가 책임지랴!'는 심정으로, 누군가 불편부당하게 하거나 무례하게 굴면 마치 나와 아이가 동시에 당하는 기분이 들어 끝까지 따져 묻고 사과를 받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싸움이 무슨 자랑거리도 아닌데 서두부터 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어쨌거나 아이가 생긴 뒤로 조금 용감해졌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으로 키우는 아이
제목에 달라이 라마가 등장하지만, 이 책은 달라이 라마가 쓴 책이 아니다. 지은이들은 동양의 명상 수련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 엄마, 아빠이다. 각각 육아잡지와 심리학 잡지의 편집장들이다.
잡지사 기자들 답게 쉽고 간결하게 쓴 글은 막힘없이 수월하게 읽힌다. 두 살 아이를 둔 슈테판 리스(아빠)는 아이와 겪는 일상적 상황과 부모의 태도에 대해, 두 아이의 엄마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안네 베르벨 쾰레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요즘 엄마들에게 자신의 경험담들을 근거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전달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예전의 생활과 전혀 다른 삶의 유형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되기의 시작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상황을 수동적으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기꺼이 맞이하고, 부부와 아이가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는 것을 뜻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독일 아저씨 슈테판 리스는 아들 핀을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단다.
핀과의 나날들은 내게 낯선 땅으로의 탐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핀이 내게 하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았다. 아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행동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방법은 단 하나다. 늘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여유롭게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함께 느끼려고 애쓰면 된다. …아이를 다루는 비법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며 이는 갓난아이도 마찬가지다.(이 책 11-12쪽)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태도에도 연습은 필요하다. 유년 시절을 두 번 산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툭 던져놓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일상이 한결 편안해지는데, 사실 이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딸기를 주면 모조리 으깨서 질펀하게 만들거나 새로 도배한 벽에 낙서를 하기 일쑤인 악동과 사는 일은 미처 계획하지 않았던 인생이다. 게다가 얼마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까칠한 상사가 있는 사무실에 나가서 아침 일곱시부터 밤 일곱시까지 꼬박 열두 시간 일하는 것이 차라리 더 편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맡아서 돌봐주는 시설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주는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 잠든 아기가 뿜어내는 평화, 하루하루 놀라운 성장, 의도하지 않은 일에서 얻는 웃음, 어쩌다 찾아오는 예기치 못했던 행복들 때문일 것이다.
고통은 집착이나 욕심에서 나온다
"욕심과 집착이 없는 삶이 곧 노력과 소망이 없는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저런 일을 해야 하다고 생각할 때 고통은 시작된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두려움과 좌절 같은 감정이 생겨난다"는 호주 출신의 불교도 사라 나프탈리의 말이 자녀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서, 우리들 자신과 아이에게 막연한 기대를 거는 것을 경계하자고 한다.
초조한 눈빛으로 제때 성장하는지 지켜보면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부모들은, 아이가 자라면서 기대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면 실망한다. 실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어진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쓸데 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짧다. 쿠하를 키워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꾸역꾸역 일기장을 채워두지 않으면 송두리째 산화될 것만 같은, 그러나 순간 순간 기쁘고, 흥분되고, 행복했던 날들이었음에 틀림 없는 시간들이었다.
짧은 순간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남방 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가 도움이 된다. 몇 년 간 오쇼 라즈니쉬의 명상법을 배운 적이 있는데, 다양한 명상 방법 중에서 쿠하를 키우면서 촛불명상과 함께 가장 많은 도움이 된 방법이기도 하다.
자녀를 키우는 생활이 과연 명상의 시간일까?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얼마나 정신없는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아이가 저지르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얼마나 집 안이 혼란스러운지를 생각하면, 자녀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명상의 시간이라는 말은 웃음마저 나오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중략)… 동양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자녀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려는 인생의 태도로 해석된다. 지금 이 순간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지 말고 찰나를 의식하고 살피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모는 자녀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순간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책 118쪽)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자주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지 의도적으로 떠올려보자. 과거의 불행이나 미래의 상상에 현재를 허비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아이와 함께 깨어 있는 훈련을 하면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고, 육아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지은이들은 여러 번 강조한다.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간단한 자세와 효과에 대해 설명할 뿐, 책에는 구체적인 명상법이 본격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명상에 관심을 갖게 하는 입문서로, 영재교육이 아니라 '행복'에 기준을 교육에 관해 이야기 하는 이 책이므로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살짝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자세 가운데 한 가지와 위빠사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 상태에서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놓는다. 평안함이 몸 전체에 퍼진다. 긴장을 푼 상태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내 몸을 온전히 느껴본다.
<위빠사나>
위빠사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수행법으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관찰 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선입견, 편견, 분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위빠사나는 걷거나 앉아서 할 수 있어, 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1. 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에 동반되는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기.
2. 들숨에 따라 복부가 불러오면, '일어남'이라고 마음 속으로 알아차리기.
3. 날숨에 따라 복부가 꺼지만, '사라짐'하고 마음 속으로 알아차리기.
4.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따라 생겨나는 복부의 감각들을 주의 깊게 살피기.
5. 복부의 일어남, 사라짐에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나 느낌들이 생겨나면 그 순간을 파악하기.
6.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는 몸의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는 손의 동작에서부터 음식을 씹는 동작, 삼키는 동작 등으로 순간순간의 두드러진 동작이 마음챙김의 대상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