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10시 경기도 안산시청 브리핑룸. 전날 알려진 지역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의 한나라당 입당 기자회견이 있을 거란 소식은 여러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탈당이야 국회의원들의 당적이동에 비해 '격이 떨어지지만(?)' 그 대상자가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 등 상징성 있는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더욱이 보궐선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주요 선거가 끝난 이후 철새 정치인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당적이동이라는 점, 정치윤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친박 복당 문제 등이 얽혀있는 한나라당의 상황, 쇠고기 문제로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 등 복잡한 국면이 이어지는 때에 여당으로 당적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런 탓인지 브리핑 룸에는 기자들 외에 시의회를 찾은 방청객들까지 들어와 놀란 표정으로 갑작스러운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 이유를 궁금해 했다.
전격적인 당적 변경,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안산시의회 송세헌 의장은 통합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것이었고, 박정호 부의장은 열린우리당 탈당 이후 무소속으로 있다가 한나라당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통합민주당쪽과 연관이 깊은 인사들이란 점에서 아무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에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특히 안산시의회는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이 의장을 맡고 있는 자치단체인지라, 의장과 부의장의 동반 한나라당 입당에 민주당 쪽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22명의 시의원 중 한나라당 의원이 12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의장과 부의장을 민주당쪽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이들의 한나라당행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을 전후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지역민들과 시의원들의 거친 항의가 이어져 이날 기자회견은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박순자 의원과 이화수 18대 의원 당선자, 이진동 당협위원장, 지역 시의회 의원 등 한나라당내 주요 인사가 양옆으로 도열한 가운데 이들 두 사람은 '원론적인 이유'를 들어 한나라당 입당 이유를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혼란을 막고 경제회생과 국민성공시대에 힘을 보태고자 한나라당 행을 선택했다. 지역발전도 한나라당 대통령, 도지사, 안산시장, 국회의원들이 힘을 합칠 때 가능하다고 판단했다."(송세헌 시의회 의장)
"(구)민주당이 통합민주당으로 개편되면서 정치철학이 다른 정당과 정치행보를 함께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고, 18대 총선을 치르며 주민들이 현 정부의 정책을 선호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지역 주민들의 뜻을 받드는 것이 지역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인식해 고민 끝에 결정했다."(박정호 시의회 부의장)
하지만 탈당의 구체적 배경과 이유를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이들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움과 당혹감이 역력했다.
선거 치르고 옮기는 것이니 철새 아니다?
- 민주당 지지자들을 외면하는 행태로 보이는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해서도 (여당과) 정치철학이 같나?
송세헌 시의회 의장(이하 송세헌): "당적을 옮기더라도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충실히 일하겠다. "
- 안산이 낙하산 인사들이 많다는 오명을 갖고 있는데, 본인들이 철새가 아니라는 해명을 하신다면?
송세헌: "철새는 상황에 따라 옮기는 것이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옮겼다면 철새라는 표현을 이해하겠으나 선거를 치르고 나서 옮기는 것이니 만큼 그것과는 다르다고 나름대로 정리하겠다. "
- 쇠고기 수입 건에 대해서는 정부와 뜻을 같이 하는 것인가? 정부에 재협상을 건의할 생각은 없나?
(이진동 상록을 당협위원장이 끼어들며 "정부가 발표한 방침에 대해 같은 생각이다"라고 답변하자 기자들이 재차 송 의장에게 질문했다.)
송세헌: "아직 그 부분에 대해 생각을 안 해봤다. 이제 입당한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
계속 어려운 질문이 이어지자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이진동 상록을 당협위원장(전 조선일보 기자)도 당혹스러운 듯 빨리 끝내고 싶은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을 구해준 것은 공교롭게도 민주당 시의원들. 질의응답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타난 이들이 거친 목소리로 의장과 부의장에게 항의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이 틈을 타서 이진동 위원장은 황급히 기자회견 종료를 선언하고 자리를 떴다.
한나라당이 떠난 자리에 들어선 야당 시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한나라당의 권모술수와 밀실야합의 구태의연한 정치를 비판했다.
한 시의원은 "두 사람의 한나라당 입당을 전혀 알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의장과는 그동안 무척 가까웠던 사이였기에 심한 배신감이 든다. 정치를 떠나서 인간적으로 용납하지 못하겠다"며 분개했다. 다른 시의원도 "한나라당 시의원들조차 의장과 부의장의 입당 소식을 오늘에야 알았다는 사람이 있다. 반대급부 제공을 통한 공작정치가 벌어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주민들도 갑작스러운 이들의 당적 변경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박태순씨는 "의장과 부의장이 동시에 당적을 변경하는 것은 초유의 일로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시의회 의장이 속한 지역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분노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민소환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차기 의장단 선거와 관련 있지 않겠나"
시의회에 방청을 왔다가 기자회견을 지켜본 홍옥자씨는 "주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날강도 같은 짓이다. 예고 없이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질렀다"라고 맹비난하고, 이들의 당적변경 이유를 "하반기 의장을 맡으려는 욕심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송세헌 의장은 탈당 배경에 대한 질문에 "후반기 의장단 선거가 임박했고, 의장단 선거를 치르고 나면 더 복잡해 질 것 같아서"라고 밝혀, 차기 의장단 선거와 연관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 "차기 의장직 출마 여부는 아직 모른다"라고 밝혀 출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민주당 시의원 역시 "두 사람은 하반기 원 구성시 의장단에서 제외되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한편 민주당은 21일 김현 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들의 한나라당 입당은 5공 시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공안통치, 정치사찰에 이어 정치공작에 의한 작품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국민 검역주권을 포기하고, 국민생명안전을 저당 잡힌 쇠고기 굴욕협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 초반대로 급락하고 있는 마당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한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이번 안산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의 한나라당 입당은 수도권 중소도시 지역정치의 소소한 모습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권 바뀌고 다수당 되면서 수적으로 우세를 보이려는 정치행태가 시작된 것 같다'는 지적처럼 정부산하 기관장 및 공기업 사장 사퇴 강요 등 일방통행 식 행태가 이어지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소속 정승현 안산시의원은 "한나라당이 인위적인 술책으로 지역 민심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며, "젊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며 안산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를 펴려 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시의회 의장 부의장 탈당에 이진동 한나라당 당협위원장과 박순자 의원 등이 깊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당 시의원들의 경우는 내부 경선을 거쳐 선출되었기에 당협위원장들의 눈치를 안 보지만 한나라당은 당협위원장이 공천권 등을 갖고 있어 위상이 다르다"라면서 "기자회견 시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모두 자리했던 것은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정승현 시의원과의 일문일답
-의장과 부의장에게 직접 해명은 들었나?
"본인들도 의장과 부의장직을 맡아 수행하게 된 배경에 민주당 도움이 컸다는 것은 인정하더라. 일단 당적 변경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의장 부의장직의 정리를 요구했다."
-이들이 한나라당 입당으로 남은 임기동안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런 게 없었으면 쉽게 옮겼겠나."
-한나라당 시의원들도 뒤늦게 알았다는 사람이 있던데 이들의 입당을 주도한 것은 누구라고 보나?
"알고 지내는 한나라당 당직자를 통해 '이진동 위원장이 주도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나라당 당협위원회 회의에서 이진동 위원장으로부터 시의회 의장 입당 건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 당직자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박순자 의원도 이 과정에서 힘을 쓴 것 같다. 최고위원에 출마할 예정인 것 같던데, 확실한 성과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진동 위원장 경우는 젊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구태를 답습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에 실망스러울 뿐이다."
-탈당한 분들이 먼저 반대급부를 제안하고 당을 옮겼을 가능성은 없나?
"그렇게 비인간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했던 적이 없다. 깔끔하고 신사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는 정치적 판단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한나라당의 유혹에 100% 넘어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