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잔치집에서
인천 동구 창영동 97번지 길. 이 골목길에 사는 ㅇ 아주머니는 동네 아이들이 당신 사는 집을 가리켜 “‘전설의 고향 집’이라고들 해”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옆지기와 함께 ㅇ 아주머니네 꽃을 구경하러 갑니다. 두 평 반쯤 되는 옛 기와집 안마당 한켠 툇마루에 꽃그릇이 소담하게 모여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이 꽃은 무슨 꽃이고 저 꽃은 무슨 꽃이고 줄줄줄 말씀하시는데, 듣는 그 자리에서는 하나하나 머리에 들어오지만, 아주머니 댁 문을 나서기 무섭게 머리에서 훌렁훌렁 달아납니다. 손으로 돌보며 함께 사는 꽃이 아닌, 구경만 하는 꽃이라서 그러한지.
저녁나절 나들이로 찾아갔기에, 지붕에 올려놓고 기르는 꽃은 달빛 받은 모습만 봅니다. 다음에 낮에 다시 오라는 말씀을 듣고, 또, 아주머니네 바로 앞집에 아주 기가 막힌 꽃잔치집이 있다며, 거기는 꼭 낮에 가서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틀 뒤, 화평동에서 ‘평안수채화의 집’을 꾸리는 그림할머니가 우리 집 쪽으로 온다며 전화를 겁니다. 옆지기가 엊그제 수채화 배우러 갔을 때, 창영동 97번지 꽃잔치집 이야기를 했다는데, 그림할머니가 그 집을 꼭 보아야겠다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찾아오신답니다. 여든여섯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도 걷기가 수월하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를 나들이하더라도 택시를 잡아탑니다.
저는 우체국에 볼일 보러 가고, 그 사이 닿은 그림할머니는, 이웃집 헌책방 아주머니가 자전거 짐칸에 앉히고는 야트막한 언덕받이를 걸어서 먼저 꽃잔치집으로 갑니다. 소포를 부치고 부랴부랴 찾아가니, 할머니와 아주머니와 옆지기도 막 꽃잔치집에 닿고는 안으로 들어갑니다.
꽃잔치집을 가꾸는 아주머니는, 이곳 뜨락을 누구나 들어와서 보고 즐기고 다리쉼을 할 수 있도록 늘 열어 놓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어 놓고 있자니, 사람들이 꽃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보따리를 싸들고 와 꽃그릇을 하나둘 훔쳐가는 바람에, 지금은 문을 잠가 놓는다고 합니다. 꽃을 얻고 싶으면, 꽃임자 아주머니한테 말을 여쭙고 한 뿌리 얻거나 꽃씨를 받아 가면 될 텐데. 고운 뜨락을 스스럼없이 열어 놓는 그 마음을 도둑 심보로 갚으면 어찌하나요.
꽃잔치집 아주머니는, 당신네 집에 기르는 개도 도둑맞았답니다. 고즈넉하고 한갓진 골목 안 집이라, 대문도 잘 안 잠그고 산다고 하셨는데, 문이 안 잠겨 있으니 슬그머니 들어와서 개를 몰래 데려갔다는군요.
(2) 고추꽃이 하얗게
옆지기가 새끼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무슨무슨 이름이 붙은 외국 종하고 길고양이하고 흘레해서 나온 고양이라고 합니다. 그 무슨무슨 외국 종끼리만 흘레했다면 비싼값으로 팔렸을 고양이라는데, 어미 한쪽이 길고양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데려가려고 하지 않는다더군요. 잠깐 이 길고양이를 기르던 분들이 아직 어린 새끼인데 길에 내놓는다고 해서 우리 집까지 오게 됩니다.
이리하여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집안 청소 하랴 옥상 청소 하랴 바쁩니다. 번거로운 일손이 많이 간다고 할 텐데, 청소를 하며 곰곰 생각해 보니, 곧 사람아기도 태어날 텐데, 새끼고양이 덕분에 일찌감치 집 청소를 말끔히 하는 셈 아니냐 싶습니다.
지난해 가을까지 다른 길고양이 열 마리가 살던 때 쓰던 낡은 고양이집과 발톱긁개를 버려야 해서 큰 쓰레기봉투를 사 와야 합니다. 먼저 동네 구멍가게로 갑니다. 동네 구멍가게에는 50리터짜리만 들여놓는답니다. 100리터짜리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그래서 송현시장으로 갑니다. 송현시장 왼쪽 들머리에 있는 가게로 들어가서 할머니한테 여쭙니다. “네, 있어요.” 하면서 안쪽에서 꺼내어 주십니다. 어차피 들른 김에 건빵 세 봉지하고 맥주 한 병을 삽니다.
가게만 들렀다가 돌아가려 했으나, 저녁에 지는 햇살이 곱습니다. 조금 둘러보고 갈까?
발걸음을 돌려 송림동 골목 안쪽을 걷습니다. ‘주차금지’ 넉 자를 흰 페인트로 그려 놓은 집 울타리에 자라는 담쟁이를 봅니다. 푸른 담쟁이잎이 무척 싱그러워 보입니다. 지난가을 잎이 붉게 물들었을 때와, 이렇게 싱그러운 푸른빛일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군요. 담쟁이가 잘 자라는 집 안쪽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시에서는 이 골목을 죄 ‘재개발’ 해서 30층이 넘는 아파트로 바꾸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한다는데, 그러면 이 아름드리나무는 어찌 되려나.
야트막한 오르막을 조금 오릅니다. 오른편에 ‘기와집에 깃든 교회’가 보입니다. 처음 한동안 이 기와집이 교회인 줄 몰랐습니다.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옆지기가 ‘저기 봐요’ 하며 가리키기에,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곳, ‘기와집에 깃든 교회(이름은 소망교회)’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집 안쪽에 조그맣게 놓았을는지 모릅니다만, 다른 예배당처럼 삐쭉 솟은 탑이 없어요. 다만,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교회 앞마당에 꽃그릇을 잔뜩 늘여놓고 있습니다. 나무로 새긴 작은 간판은 이 꽃그릇에 가리기도 하여,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예가 교회여 아니여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기와집 교회 바로 건너편 거님길에 어린나무 두 그루 자랍니다. 이 거님길은 사람이 못 다니는 거님길입니다. 끝이 막혀 있거든요. 늘 차가 대어 있고. 사람이 이 거님길을 안 다녀서 그러할 텐데, 꾹꾹 밟는 발길이 멎은 이 자리는 풀이며 꽃이녀 나무며, 저희들 자라고픈 대로 마음껏 줄기를 올립니다.
다시 송현시장 쪽으로 내려갑니다. 오른편으로 솔빛주공아파트를 끼는 골목입니다. 이제는 문을 닫고 장사를 접은 듯한 탕수육집을 지나고 구두수선 집을 지날 무렵, 왼편 작은 기와집 울타리를 따라 놓인 꽃그릇에 눈길이 갑니다. 어른 새끼손톱보다 작달막하게 자라는 흰꽃이 보입니다. 고추꽃인가, 하고 쪼그려앉습니다.
고추꽃이 맞습니다. 고놈 참 이쁘구나. 쪼그려앉은 채 사진 여러 장 박습니다.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봅니다. 그러나, 사진쟁이 아닌 고추꽃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나가는 분들 댁에도 한결같이 고추포기를 꽃그릇에 심어서 기르고 있어서, 고추꽃이야 아무 볼거리가 아니라서 그러할는지, 고추에도 이렇게 앙증맞은 흰꽃이 피는 줄 몰라서 그러할는지는.
이렇게 집식구들 먹을 만큼만 꼭 알맞게, 꽃그릇 하나에 한 포기씩 심는 고추에는 아무런 병이 들지 않을 테지, 생각합니다. 고추마름병이든 뿌리썩음병이든 찾아들 수 없을 테지, 생각합니다. 비닐을 치고 고추를 심으면 한 해 내내 넉넉히 먹을 만큼 고추를 얻을 수도 있다지만, 고추가 첫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첫 잎을 틔우는 그때에, 고추잎으로 나물을 무쳐 먹고, 잘 익은 풋고추나 빨간고추를 그때그때 따서 먹으며, 제철 고추를 맛보기만 해도 즐거우리라 봅니다.
꼭 끼니마다 먹어야 하는 고추는 아니잖아요. 꼭 모든 찌개에 넣어야 하는 고추는 아니고요. 어쩌다 한 번, 비님 오시는 날 한두 놈 똑똑 따서 송송 썰어 밀가루반죽에 섞어 지짐이로 먹어도 되고, 그냥 날된장에 푹 찍어서 소주 한 잔과 함께 먹어도 되고.
(3) 집
비가 한 줄기 뿌리면서 옥상 물청소가 저절로 됩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니 따끈따끈 햇볕을 받아 잘 마릅니다. 이불 한 채 들어서 탕탕 털고 울타리에 널어 놓습니다. 아주 말끔하지는 않지만,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사라진 너른 옥상마당에서 새끼고양이가 마음껏 뛰놉니다. 어미 없는 새끼에다가 외톨이인 고양이라 심심할 텐데. 이 녀석도 머잖아 어른고양이로 자라면 우리 집 울타리도 폴짝 뛰어넘어 이웃집 지붕을 타고 동네 길고양이로 탈바꿈하겠지.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제 살 길을 찾아가겠지.
지금처럼 올망졸망,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골목집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이 동네에서는, 고양이한테 먹이를 주는 집도 있고, 또 따뜻하게 깃들일 곳도 있고, 또 길에서 얻는 먹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너비 50미터가 훌쩍 넘는 산업도로가 들어서고, 여기에 재개발이니 재생사업이니 해서 마구마구 집 다 허물고 땅 다 헤집으면 고양이들은 갈 데가 있을라나.
아니, 고양이는 둘째치고, 이곳 서민들은 더는 밀려날 곳이 없는데. 한 평에 이삼백만 원 보상 받는다고 해 보아도, 한 평에 이삼천만 원씩 부를 아파트에 들어갈 엄두는 못 낼 테고, 어찌어찌 들어간다고 한들, 관리비 없이 느긋하게 살던 ‘내 집’에서, ‘내 집이라 해도 관리비로 적잖은 돈이 나가야 할 아파트’가 되어 버리면, 그 돈을 대려고 골목집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서 돈구멍을 터야 할는지. 아니지, 집있는 사람이야 보상을 받는다지만, 우리처럼 집없이 달삯 내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고. 보증금 백만 원 내기에도 빠듯한 골목사람이 제법 많은데, 여인숙에서 장기투숙하는 사람도 퍽 많은데, 이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깃들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신나게 뛰어노는 새끼고양이는, 지 임자랍시고 밥 주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이런 걱정을 하건, 저런 걱정을 하건, 제 무릎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워서는 새근새근 잡니다. 꿈이라도 꾸는 양, 가끔 꿈틀꿈틀. 팔을 하늘에 휘휘 젓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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