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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건반
피아노 건반 ⓒ 카피레프트

 

피아노 건반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잘 아시겠지만 건반 위에 써있는 영어는 각 음의 영어식 표현이다.

 

C(도), D(레), E(미), F(파), G(솔), A(라), B(시)

 

이 음들뿐만 아니라 음과 음 사이에 반음들이 존재하는데 이것까지 표현을 해보자.

 

C(도), C#(도#), D(레), D#(레#), E(미), F(파), F#(파#), G(솔), G#(솔#), A(라), A#(라#), B(시)

 

피아노 건반에는 이렇게 12개의 음이 살고 있다. 물론 옥타브를 건너뛴 수많은 12개의 음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이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을 계명으로 불러보자. 기억이 잘 안 난다면 아래를 참고하시라.

 

'솔솔라라 솔솔미 솔솔미미 레 / 솔솔라라 솔솔미 솔미레미 도'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을 들으면 우리가 앞으로 얘기할 쇤베르크씨가 아주 불편해 할 것이다. 왜 그런지는 조금 후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이 동요에서는 피아노 건반에 존재하는 12개의 음이 얼마나 쓰였을까? 한번 세어보자.

 

'도 1번, 레 2번, 미 6번, 솔 11번, 라 4번'

 

지독한 편식이다. 건반에 있는 12개의 음 중에서 7개 음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등장한 '도 레 미 솔 라' 음들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한 음에 편중되고 있다. 솔의 경우는 11번까지 사용되어서 나머지 음들의 사용횟수를 다 합친 것과 비슷하니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성음악' 체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필연적이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운 음악교육은 철저하게 조성체계에 기초한 것이다. 조성음악은 '도'라는 으뜸음을 중심으로 모든 음들이 배치되며 주요 3화음의 구성음들이 다른 음들에 비해 훨씬 빈번하게 사용된다. 위에서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을 계명으로 불러 확인했듯이, 조성음악은 특정한 음들을 과도할 정도로 편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보편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이런 조성음악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사람이 있다. 20세기 서양 음악계에 충격파를 던진 '12음기법'을 고안해 낸 그는 바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이다.

 

조성음악에 의문을 던진 쇤베르크

 

 아놀드 쇤베르크의 모습
아놀드 쇤베르크의 모습 ⓒ 카피레프트

 

1874년 9월13일에 오스트리아 빈의 유태계 집안에서 태어난 쇤베르크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찬 소년이었다. 그러나 1889년, 그가 1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인해 17살 때부터 은행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쇤베르크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나갔다.

 

1895년, 21세의 쇤베르크는 직장이었던 은행의 파산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쇤베르크는 궁여지책으로 공업도시 시톡헤라우의 노동자 동맹의 합창단 지휘자 생활을 시작한다. 간간이 편곡을 하는 등 부업으로 생활을 꾸려가던 쇤베르크는 1897년에 지휘자 알렉산더폰 째믈린스키와 만나게 된다. 째믈린스키는 쇤베르크에게 대위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주면서 그에게는 잊지 못할 은인이 된다. 나중에는 째믈린스키의 누이동생인 마틸데와 결혼을 하면서 아예 친인척 관계가 된다.

 

당시만 해도 쇤베르크는 당시의 조류였던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음악을 작곡했다. 그가 25세 때 작곡한 현악6중주곡 <정화된 밤>은 리하르트 데멜이라는 사람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당시에는 문학적인 인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표제음악'이 유행이었다.

 

당대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가 바로 이러한 '표제음악'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 영향을 받은 쇤베르크는 자신의 곡 <정화된 밤>에서 후기낭만주의와 표제음악의 세례를 받은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화된 밤>은 여전히 조성음악이라고 하는 튼튼한 뿌리 속에서 자라난 나무였다.

 

"답답한 조성음악은 거부하라", 12음기법

 

하지만 쇤베르크의 천재성은 그가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겨 흘러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점점 조성음악이라고 하는 '답답한' 우리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12년 벨기에 시인 알베르 지로의 시를 토대로 작곡한 <달에 홀린 피에로>는 쇤베르크가 조성음악과 결별하고 무조시대로 들어선 시기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

그리고 봄날의 조류가

지평선 위에 넘쳐 흐른다.

 

무섭고 달콤한 욕망은

수없이 물결을 가른다.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

 

기도하려는 시인은 미친듯이 기뻐하며

그 신성한 양조주에 취해 있다.

그는 취한 채로 하늘을 향해

무릎을 어지럽게 비틀거리며

눈으로 마시는 술을 거침없이 들이킨다

 

- 알베르 지로, <달에 취하여>

 

위의 시는 쇤베르크가 <달에 홀린 피에로>에서 사용한 알베르 지로의 시 중 일부이다. 의미의 조각조차 파악하기 힘든 초현실주의 시에 붙인 쇤베르크의 음악은 한층 더 '초현실적'이다. 악기들과 소프라노의 음성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협화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가락과 리듬은 기존의 조성음악에 익숙해져 있는 청중에게 불편함까지 느끼게 한다.

 

사실 당시의 서양 음악계는 적지 않은 작곡가들이 조성음악에 도전하는 일련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딱히 쇤베르크만이 그런 시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음악에서도 조성체계의 모호함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쇤베르크가 활동하던 당시에도 여러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을 표방한 다양한 실험작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쇤베르크가 무조음악의 선구자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12음기법' 때문이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여러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을 시도했지만 기존 조성음악의 화성법이나 대위법처럼 확립된 작곡방법이란 것이 없었다. 쇤베르크는 '12음기법'을 통해 '무정부주의적' 무조음악에 새로운 '십계명'을 내린 모세가 되었다.

 

쇤베르크 자신이 '12개의 서로 연관된 음만을 사용한 작곡방법'이라고 명명한 12음기법은 조성음악을 거부한 새로운 작곡방법답게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충격파를 가져왔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에서는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피아노 건반의 12개의 음이 모두 동등한 비중을 가지고 나타난다.

 

12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원형 '음렬'은 뒤집어지기도 하고 거꾸로 연주되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음도 강조되지 않고 동등한 비율로 곡에 등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조성체계에서 확립된 불협화음과 협화음 간의 기능적 구성은 12음기법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불협화음은 꼭 협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할 당위성이 사라졌다. 이를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의 해방'(Emanzipation der Dissonanzen)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 12음기법을 처음으로 전면적으로 도입한 곡이 바로 1921년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Op.25이다. 프렐류드, 가보트, 뮈제트, 인테르메쪼, 메뉴에트, 지그의 6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모음곡>은 전체 연주시간이라고 해봐야 기껏 20분도 되지 않는 소품이다. 그러나 12음기법을 구석구석까지 적용한 이 '소품'은 음악사에 자신의 이름을 거대하게 새기게 된다.

 

쇤베르크의 자화상 쇤베르크는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쇤베르크의 자화상쇤베르크는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 카피레프트

 

부르주아적 음악도 노동자를 위한 음악도 아닌 그 무엇

 

기존의 조성음악 체계를 근본부터 부정한 '혁명가' 쇤베르크는 정치적 입장에서만큼은 그의 '혁명적' 음악과는 다른 성향을 보였던 것 같다. 자신의 제자이자 12음기법을 계승한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가 사회주의자로서 노동계급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매진했던 것과는 달리 쇤베르크는 음악에서 정치색을 일절 배제했다.

 

쇤베르크는 천박한 부르주아적 음악취향에 대해 경멸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들을 위한 음악을 쓰는 것이 예술음악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치 정권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유태인 쇤베르크는 미국 망명 시절인 1947년에 나치 정권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들어있는 <바르샤바의 생존자>라는 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은 기본적으로 난해하다. 그가 작곡한 무조음악을 듣고 있으면 과연 이 곡을 계속 듣고 있어야하는지 고민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불편함의 원인이 우리가 기존의 조성음악에 너무나 '세뇌'되어 있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쇤베르크의 음악이 인간의 청각에 반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의 미각에 반하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맛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오만한' 요리사가 쇤베르크일까? 이 글을 읽고 '과연 어떤 음악이길래 이렇게까지 얘기할까?'하고 궁금증이 드는 사람은 바로 인터넷을 접속해서 <달에 홀린 피에로>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아니 백견(百見)이 불여일문(不如一聞)!!

 

어쨌든 그의 곡은 지금도 계속 연주되고 있으며 음반으로도 제작되어서 판매되고 있다. 그가 창안한 12음기법은 세계의 수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P2P 사이트에서 쇤베르크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관련된 음악파일을 발견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음악은 그만큼 대중에게서 멀다. 그의 음악을 대중들이 즐겨 듣게 되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정말로 궁금하다.


#쇤베르크#12음기법#무조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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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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