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조한국당이 자유선진당과 18대 국회에서 교섭단체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데 합의했다는 5월 23일자 언론 보도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창조한국당이 대선 이후 당 정비 과정에서 비당원임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약속을 받고 고문 및 공동체특별위원장의 직을 수락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의 그간의 행태는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그간에 국민에게 약속해온 모습과는 배치된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의 인연 나는 그간 문국현 대표가 꾸준히 주장해온 바를 믿고, 창당준비과정, 대선 및 총선을 거치는 동안 비록 비당원이기는 했지만, 고문과 공동체위원장으로서 그를 지지해왔다. 그가 총선과정에서 이한정 비례대표 문제로 곤경에 빠졌을 때, 이는 이한정씨의 경력위조 사기행위에 창조한국당이 본의 아니게 말려든 것이라는 그의 해명을 믿고, 기자회견 석상에 문 대표와 나란히 앉아있는 장면이 TV화면을 통해 전국에 방영됨으로써 내가 문국현 대표의 적극 지지자라는 사실이 전국민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나는 문국현 대표 및 경북대 김형기 교수와 공편-공저 형식으로 <사람중심의 희망의 공동체사회를 만들자>(일빛 출판사)를 대선을 앞두고 펴내기도 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문국현 대선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찬동하면서 평화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하는 당에 합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를 문 대표에게 적극 권고했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대선이 끝난 이후 후보단일화 협상에 극구 반대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당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는 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문 대표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대선에 이은 총선 과정에서도 당과의 인연을 유지해 왔고, 당이 다소나마 올바른 방향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 왔다.
그간 내가 문국현 대표를 적극 지지했던 것은 그의 평소 주장이 이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국현씨는 비교적 큰 기업의 경영자로서 많은 다른 기업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와중에서 기업과 노조의 상생을 부르짖으면서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경영철학에 입각하여 평생학습을 전제로 한 독특한 4조2교대 노무관리 방식을 창안 실시하여 각광을 받았다. 그는 “희망포럼” 등 시민운동단체를 창설하여 “사람중심의 공동체사회” 건설을 강조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조관행을 앞장서 비판하며, 정의사회 구현에 앞장섰고, 중소기업과 대기업과의 상생의 필요성과 중소기업 살리기를 강조했다. 사랑의 숲 가꾸기 사업 등, 환경친화적 경제사회를 역설했다. 이 모든 것들은 시민사회가 추구해 왔던 가치로서 21세기 희망의 등불과 같이 보였다. 나는 평생 이들 가치를 추구해 온 학자로서 문국현 대표를 통해 나의 이상을 구현해 보려고 비록 비당원 자격이지만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해왔다.
이해하기 힘든 돌출행동 그러던 문 대표가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차떼기’의 원조로 지목받고, 냉전과 반민주 등 구시대적 가치를 가장 극우적 입장에서 제창해온 이회창 씨와 손잡고 국회 내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했다는 소식은 그의 대국민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돌출행동으로 비치지기에 출분했다. 그의 본질을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하고서 이제 와서 무슨 잔소리냐고 한다면 항변할 여지가 없다. 나의 불찰을 사과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일로 공인으로서 평생 가꾸어온 위상과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이에 나는 창조한국당에 사퇴서를 냈다.
지금 오마이뉴스 정치면에서는 김갑수 시민기자와 김석수 창조한국당 대변인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침 창조한국당 대변인의 항변이 나왔음으로, 편의상 이에 대해 나의 견해를 밝히는 방법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방법일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에 이를 밑거름으로 심아 나의 소견을 밝힌다.
첫째로 우리가 직면한 한국의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상황을 놓고 볼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 대북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있을 때에는 대북정책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 당면한 남한 내의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6자회담은 지금 북미간 합의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대북 식량원조와 각종 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국교정상화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문제와 평화체제 구축 등 민감한 문제들을 북미간 협상의 탁상에 올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고유가 문제, 전세계적인 원자재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공통된 노무비 상승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의 자원과 훈련된 저렴한 노동력은 난국에 처한 한국경제의 돌파구로 기대되고 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공동성명은 한국경제의 앞날에 한 가닥 희망의 등불이 라는 측면조차 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창조적 진보라는 구호 아래, 그간 “북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대북 경협에 적극 나서야한다”라는 등, 대북문제에서 비교적 전향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에 대해 이회창 씨는 가장 수구적인 대북정책을 내걸고 북한체제의 붕괴만이 유일한 통일방안이라는 입장으로 알려져 왔다, 적어도 대북정책에 관한한 이 두 사람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여 왔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두 사람이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래서 무원칙한 공조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둘째 김석수 대변인은 의회정치에서 당 대 당의 정책연합을 위한 공동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과거 DJP연합정권 아래서 JP당에게 김대중 당이 국회의원 몇 사람을 꾸어줌으로써 JP의 국회 내 교섭단체 구성을 도와준 사례가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사실 이때에도 DJ는 정체성에 큰 손상을 입었다. 더욱이 그는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국고지원을 하는 등으로 그의 민주투사로서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다. (기자는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의 상임공동대표로서 시청 앞 1인 시위에 첫 번째로 나섰던 경험이 있다.)
DJ는 이런 무원칙한 정치행태를 보이긴 했지만, 그의 임기 초인 1990년에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냄으로써, 그의 정략적 행태에 대해 평화애호국민에게 일정부분 확실한 보상을 한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의 매우 정략적인 행태는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남북 대결상황을 대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려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이번 행태를 DJ의 선례에 빗대기 위해서는 문 대표가 추구하는 정치목적이 DJ에게 버금갈 정도로 큰 무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더욱이 정치인들 중에는 자기 소신을 지키기 위해 특정 정파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면서 무소속으로 남아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 정치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이를 포기하면 정치생명은 끝장이다. 이번 일로 창조한국당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했다.
셋째, 문국현 대표는 이회창씨 쪽과 공동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정책에 일치되는 부분에 한해서 제한적인 정책연대라고 해명했다. 대운하반대와 친환경정책, 대기업중심체제에 대한 반대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대미 쇠고기 협상과 FTA에서의 자주권의 수호정책 등에서 두 진영의 정책이 합치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회창씨의 이제까지의 행태로 미루어 볼 때, 한나라당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언제든지 태도를 표변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이회창 씨는 ‘대쪽’이라는 별명답지 않게 매우 시세에 쉽게 편승하는 행동을 보여 왔다는 평가다. 그런 면에서 위와 같은 설명은 구차스러운 변명으로 들릴 소지가 다분히 있다.
더욱이 위에 열거한 정책들에 있어, 창조한국당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당이 없지 않다. 통합민주당이나 민노당 쪽이 훨씬 더 창조한국당과 정책면에서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도 굳이 자유선진당과 공동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것은 정략적 야합의 산물이라는 비난의 소지를 지울 수가 없다.
넷째로 김석수 창조한국당 대변인은 ‘선진당’과 공동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다수당 독식의 현행 국회법의 비민주성을 타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선택은 오로지 ‘선진당’과의 공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당에 합류하는 방안도 없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을 내세우는 것은 건강부회의 궤변에 불과하다. 현행 교섭단체 구성자격에 비민주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정체성이 맞지 않는 당끼리의 연합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더욱이 문국현 대표는 ‘선진당’과의 이번 합의를 당의 합의기구를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거의 독단적으로 결정 발표했다.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우려면, 자기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하는 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
현재 한국에서 최대의 정치문제로 등장한 것은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과 관련된 들끓는 여론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우리의 검역주권을 미국 뜻에 맞춰 내팽개친 점에서 촉발되었다. 국가의 자주성을 상실한 데 대한 항의가 어린 학생들마저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근본 원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민노당의 양 진영이 자주냐 평등이냐로 서로 다투다가 재결합에 실패하고 당을 양분하게 된 것은 본말을 전도한 처사로서 어린 학생들에게 고개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민족 민주 민중 인권 환경 등 소중한 가치들을 추구하며 신명을 바쳐 앞서가신 애국애족 지사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 뜻에서 민노당의 양대 파벌의 힘만으로는 들끓는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제3지대에서 광범한 민의를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시도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창조한국당이 이 새로운 흐름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을 기대했으나, 이게 헛된 기대였음이 밝혀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급한 정치적 과제는 6.10 항쟁의 결과물로서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현행 헌법 전문의 정신과 대원칙을 되살리는 일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현행 헌법 전문에 매우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 소중한 가치들이 지금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내가 최근에 “뉴라이트, 그리고 한나라당 :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일빛출판사)을 펴낸 것도 그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뉴라이트의 반시대적 반민족적 반민주적 “대안교과서”는 앞으로 수구적 방향으로 헌법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한 전초전일 수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 평화헌법 개정운동에 앞서 극우계열이 수구적 후소샤의 교과서를 발간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현행 역사 사회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며 교과서 개편 의도를 공식화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지금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민족 민주 민중 인권 복지 환경 등 국민 모두가 소중히 여겨온 현행헌법 전문에 제시된 가치들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를 위해 이들 가치를 중심으로 하여 여러 정파가 힘을 합해야 할 시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민족과 민주의 가치가 핵심이다. 특히 민주적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며, 6.15공동선언과 10.4남북공동성명의 준수가 필요하다. 6자회담으로 북미관계가 진전되어가는 현 상황에서 그 이행을 미루면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할 위험성마저 있다. 그런 점에서 6자회담이 진전되고 있는 오늘날, 6.15공동선언과 10.4남북공동성명을 지지하느냐 아니냐는 애국과 매국,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반민주를 가름하는 결정적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한국당이 내걸어온 대운하 반대, 환경의 수호, 사람중심의 공동체사회 건설, 일자리창출 등을 통한 공동체사회 건설과 복지사회 실현 등도 소중하지만, 그것들도 민족과 민주라는 가치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오랜 군사독재시대의 체험을 통해 터득한바 있다.
따라서 남북 사이의 대결과 상극을 부채질해온 세력과의 공조는 민주공동체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현행 헌법의 정신을 부정하는 세력과의 공조를 뜻한다. 줄곧 대북 적대적 정책을 주장하면서 위와 같은 헌법적 가치들을 부정하고 지역주의에 매달려 중요한 국가정책에서 구시대적 가치를 내건 자유선진당에 대해 창조한국당이 국회 내에서 공동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다는 것은 당리당략에 매달린 처사로서 현행 헌법 전문의 가치를 추구해온 국민 대다수의 정서에 결코 맞지 않는다. 더욱이 차떼기 부정행위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씨와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줄기차게 비난하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주장해온 창조한국당에 걸맞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창조한국당의 비당원 고문직과 공동체특별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덧붙이는 글 | 주종환 기자는 동국대 명예교수,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민족화합운동연합 대표이다. 이 기사는 '평화만들기' '한림온라인', 시민사회신문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