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24일 1박2일간 진주시청의 초청으로 '진주논개제 연계 팸투어'가 진행됐다.
23일 오후 식사 후 문산읍 상곡리에 자리한 바이오21센터(www.bio21.or.kr)를 둘러본 후 논개제의 주행사가 열리는 진주성으로 향했다.
성의 정문인 공북문에는 만국기가 펄럭이며 축제를 찾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진주성 내에서는 인력거체험, 논개투신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진주성 너머 남강변에는 황포돛배가 떠다니며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촉석루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논개 표준영정 봉안 고유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신문과 방송사의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친일 작가가 그렸다는 이유로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영정을 강제로 뜯어낸 후, 진주시와 장수군이 힘을 합쳐 표준영정을 만들었다.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논개 표준영정은 충남대 교수인 윤여환 작가의 작품이다.
고유제를 마친 후 의기사에서 논개 표준영정 제막식이 있었다. 고유제 장면을 촬영한 후 주변을 둘러보다 의기사로 향했을 때는 제막식이 끝나고 영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전국민속소싸움대회가 열리는 진양호의 진주전통소싸움장에서 소싸움을 지켜보았다. 싸움소의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민속경기로 진주는 소싸움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진주 사람들은 소싸움이 청도가 더 유명해진 것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객석에서는 미국산 광우병쇠고기를 화제삼아 "미국소랑 한판 붙으면 진짜 대박날 텐테..."하는 소리도 들린다.
저녁 식사 후 다시 진주성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앞의 남강변에 세워진 수상무대 위로 올랐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논개투신 재현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먼저 개제식이 열리고 진주대첩을 비롯한 임진왜란 당시의 논개의 모습이 연극 형태로 재현되어 공연되고 있었다.
전쟁신에서는 강변에서 진주성 위로 폭죽이 쏘아올려졌다. 진주성 주변을 불야성으로 밝히며 화려한 불꽃이 터지자 관람객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2차 진주성싸움 재현이 특히 가슴뭉클하게 와닿았다. 왜군에게 6만 민관군이 죽고 성이 함락되자 의암 바위 위에서 임금이 있는 북쪽으로 절을 한 후 최경회, 고종후, 김천일 등 세 장수가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왜군이 잔치판을 벌이자 논개가 나타난다. 의암에 올라선 논개를 왜군이 껴안으려고 하는데, 논개가 몸을 피하자 왜군이 남강에 빠진다. 이때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그렇게 몇 명의 왜군이 강물에 빠진 후 왜장이 나타난다. 바위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피하던 논개는 웃저고리를 벗어 왜장을 희롱한다. 그리고는 이내 왜장을 껴안고 남강의 푸른 강물 위로 함께 뛰어내린다. 그렇게 400년 전 가슴시린 역사의 재현이 끝났다.
논개의 투신 재현이 끝난 후 6만 민관군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무가 이어졌다. 그리고 진주논개제 첫날 행사의 마지막을 수상불꽃놀이가 장식했다. 불꽃놀이를 제대로 담으려면 진주교나 진주성 위에서 촬영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진주교까지는 무리고, 진주성쪽으로 나아갔다. 성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은거 같아 의암 위쪽의 강변에 삼각대를 세우고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10컷도 채 촬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강변을 화려하게 수놓던 불꽃놀이는 끝이 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려면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숙소로 가는 길에 진주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진주교 상판 아래에 황금빛으로 동그란 링 같은 게 두 개씩 연이어져 있는데, 적장을 안고 뛰어내릴 때 손가락에 끼던 논개의 반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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