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농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5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개방 청문회'에서 "OIE(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은 권고사항이지만 강제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 뤼크 앙고 OIE 사무차장은 16일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OIE는 국제 교역에 관여하지는 않으며, 소고기의 수출입은 당사국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30개월 미만의 소고기의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OIE의 위생기준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광우병 연구 성과와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OIE 기준 마저 밑돌고 있다. 광우병 발생의 근원으로 꼽히고 있는 소 동물성 사료의 교차오염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의 사료 생산 체계가 그 단면이다.
소의 사체를 갈아서 소에게 줄 수는 없지만 개, 닭, 오리에 준 다음 그 개, 닭, 오리를 갈아 다시 소에게 먹이는 이 같은 사료 체계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가 실시하고 있다. 이 방법은 이미 1988~1990년 사이에 영국에서 실시했다가 무려 2만7천 마리가 광우병(BSE)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다.
OIE 기준에 의거한다는 우리 정부는 OIE 기준의 가장 중요한 광우병 위생조건을 지키지 않는 미국과 서둘러 조약체결을 감행한 꼴이다.
미국은 줄기차게 자국은 광우병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OIE로부터 '광우병 통제 가능국가'란 지위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우리 정부도 OIE 기준에서 슬며시 벗어나 미국 입장으로 갈아타려하고 있다.
22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기준과 부합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다"고 밝혔다. 농수산식품부는 조만간 고시를 강행할 태세다.
하지만, 이번 광우병 사태의 궁극적 목표가 미국과 동일한 위생조건에 맞추기 위함은 아니었지 않은가. 한국 소비자나 미국 소비자나 미국 소고기를 먹은 전 세계 소비자들은 일본과 유럽의 위생기준보다 느슨한 OIE 기준마저 묵살하는 미국의 광우병 위생조건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광우병 정보 통제하는 미국정부<AP통신>은 9일 부시 행정부가 연방법원에 정육업자들이 광우병 검사를 확대하지 못하도록 요청하며 광우병 검사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미 농업부는 도살된 소의 1% 미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도록 규정을 들어 광우병 검사 확대가 식품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양성 오류(false positive,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병에 걸렸다고 진단하는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육업자의 요청을 막았다.
그런데 스스로 검사 비율을 1% 미만으로 정해놓은 것은 미 농업국이었다. 스스로 낮은 검사 비율을 규정하고 정확도가 떨어지니 아예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프레스 엔터프라이즈>는 최근 "미 농무부가 2003년 워싱턴 주에서 광우병 양성반응을 보인 소가 발견된 뒤 다우너(아파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는 소)를 식용으로 쓰는 것을 금지했으나 초기 단계 검사 때 주저앉지 않은 소는 수의검역관의 승인을 거쳐 도축할 수있도록 예외조항을 두었다, 소비자단체는 물론 쇠고기 가공업계 조차도 쇠고기의 안전성 강화 조처를 촉구했으나 미 정부가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005년 유럽연합은 겉보기에 건강한 860만7051두의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한 결과 113마리의 광우병 소를 찾아냈다. 일본에서도 2001년 10월18일부터 2007년 8월4일까지 715만9909마리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한 결과 33마리의 광우병 소를 찾아냈다.(2007년 신동아 9월호 박상표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참고).
그럼에도 미 농무부는 지난 5월 21일에야 '다우너 소는 도축을 일체 금지할 것'이라는 뒤늦은 발표를 했다.
오프라 윈프리 학습효과와 켈러허 박사의 폭로첨단 과학기술의 산실 미국에서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가 이어지고 임상 사례도 속출하는 데 왜 미국 사회는 광우병에 대해 고요할까.
<오프라 윈프리쇼>의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축산업계 및 육류가공업계로부터 무려 5개의 죄목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1996년 4월 16일<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은퇴한 목장 주인으로부터 죽은 소의 사체를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주입한 목장 소의 실태를 듣고 광우병 문제를 다룬 직후였다. "무서워서 더 이상 햄버거를 못 먹겠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미국 소고기 기업들은 바로 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거금을 들여 최고 변호사를 고용했고, 2002년 9월 승소했지만 물질적, 심적 고통은 엄청 났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미국 사회에서 광우병 문제가 공론화됐어야 마땅하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광우병 문제를 꺼내는 걸 꺼리게 됐다. 광우병을 문제 삼으면 거액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오프라 윈프리 학습효과였다. 이런 여러 정황 때문에 미국은 광우병 '통제'가 아니라 대국민 정보의 '통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켈러허 박사는 미국 광우병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광범위한 과학적 근거를 집대성한 치밀함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축산관련 단체와 미국 정부의 압력을 각오한 몇 안 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는 세포학과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15년의 연구경력을 가진 생화학자다. 프리온 연구하던 중 2003년 우연히 워싱턴의 작은 도시 골든델의 한 목장에서 아무 흔적 없이 뇌가 도륙된 수많은 소를 보고 그 진상을 조사하다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가 2004년 100여명에 이르는 과학자들과 270여 편에 이르는 전문연구분야의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출간한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광우병 지식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켈러허 박사가 책에서 말하는 주요주장은 아래 두 가지다.
첫째, 광우병은 소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켈러허 박사는 "미국에서 사육중인 사슴에게 준 저급 동물성 사료를 먹고 야생으로 탈출한 사슴들이 야생동물들과 접촉하면서 야생동물에게서 프리온이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은 먹이 사슬로 인해 생태계 전반에 급격하게 광우병 위험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240-257p).
둘째, 인간 광우병이 치매로 숨겨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1979년 미국질병관리본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지난 24년 동안 알츠하이머 환자 수가 8902% 증가했다(1991년 13768명, 2002년 58785명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 영국은 알츠하이머병이 1979년 10만중 1명이었으나 1985년 인간광우병 발생 후 1996년 1900% 폭증했다(224p).
미 정부는 알츠하이머병 사망 위험이 증가했다기보다 진단방법이 개선되고 최근에야 질환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켈러허 박사를 비롯해 알츠하이머 전문가들은 이 자료마저도 매우 축소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엔 알츠하이머병의 본격적인 연구나 보고체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219-225p).
급격히 늘어난 치매환자, 정말 치매일까
위 내용은 광우병, 알츠하이머, CJD, vCJD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을 정리한 것이다. 이 4가지는 발병 시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캘러허 박사는 'CJD와 인간 광우병(vCJD)은 증상은 유사하지만 완전히 별개의 병이다'라는 원칙이 깨지고 있다고 말한다.
쥐에게 실험했더니 프리온이 산발성CJD와 vCJD(인간 광우병) 두 가지 형태로 선택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그는 미 정부가 서로 증상이 같은 알츠하이머병, CJD, 인간광우병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일대와 피츠버그대 의학팀이 발표한 "치매로 죽은 환자의 사후 부검결과 5~13%가 인간광우병"이었다는 내용도 근거로 제시했다.
물론, 미국 정부는 켈러허 박사의 이런 주장을 실험실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있다. 미국에서 CJD에 걸린 환자 수는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켈러허 박사는 미국에 CJD보고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100만분의 1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CJD는 뇌를 열어봐야만 확인할 수 있는데 체계적인 연구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온 수치를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켈러허 박사는 산발성 CJD로 알려진 사례들이 실제로는 '인간 광우병' 사례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인용한 사례를 보자.
2001년 미국, 36세 여성 스카벡은 29세의 친구가 뇌에 구멍이 뚫려 죽은 사건과 관련하여 산발성 CJD(sCJD)라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조사한 결과 경마장에서 같이 식사한 15명이 모두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아냈다. 미 정부에 조사를 의뢰했으나 미 정부는 CJD관련성에 관하여 "매우 희박하다"는 통보를 하고 끝냈다. 미 정부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조사를 거부한 것. 미국에서 sCJD가 집단 발병한 예는 1993년 펜실베이니아 주, 1994년 플로리다 주, 1996년 오리건 주, 텍사스 주, 1999년과 2000년 뉴욕, 2001년 뉴저지에서였다.
광우병 프리온이 인간 광우병으로 이전되는 기전은 아직도 연구 중이다. 소의 광우병 프리온이 인간에게 전염되어 생겨난 변형 프리온이 인간 광우병을 일으킨다는 켈러허 박사의 주장에 모든 과학계가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에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프루지너'는 섣부르게 광우병 원인 물질을 프리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바이러스 원인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더 큰 위험을 부를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접근이지만 광우병의 위험성과 그 예방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영국에서 발병한 인간 광우병이 갓 10년을 넘긴 시점에서 과학적 성과는 걸음마 수준이다. 과학적인 해결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소고기는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지금의 기준은 과학적 기준에 충실하기보다 각국의 이해에 따른 교역 통상 기준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모든 정보를 알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정보통제로, 우리 정부는 졸속협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산 소고기를 막기 위해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소개 : 르포작가. 한국불교신문 기획팀장.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축산물등급판정소에 입사하여 13년간 식육의 품질 등급판정 현장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