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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능선 연인능선이 시작되는 평화로운 길,
연인능선연인능선이 시작되는 평화로운 길, ⓒ 김선호

가평의 '연인산'(해발 1068m)은 신록이 짙어 가는 초여름에 가면 가장 아름다운 산이다. 아니, 늦봄이라고 해야 하나? 올 봄을 한마디로 단정짓기에 기후변화의 무쌍함이 올해처럼 유난스러운 적이 있었을까 싶다. 계절의 경계마저 흐릿하여 겨울인 듯, 봄인 듯 하더니 봄에서 여름으로의 경계 또한 묘하게 흐르는 중이다.

 

5월 중순을 넘겼으니, 달력으로 보자면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게 맞겠다. 그러나, 역시 기후는 오리무중이다.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하루종일 내리질 않나, 한동안 이어진 저온현상 때문에 긴 팔 옷 소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봄과 여름과 꽃샘추위가 올 봄 내내 공존했었으나, 그 현상 또한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애매하겠다.

 

그래도, 때아닌 고온현상에 화르르 피었다 빠르게 져버린 봄꽃들이 지나간 자리를 푸릇한 잎새들이 숲을 메우며 자연은 제 역할에 충실히 복무하는 중이다.

 

다투어 피어난 잎들이 더 이상 돋을 수 없을 때, 숲은 유록 에서 초록으로 짙어간다. 연인산의 아름다움이 가장 절정에 달할 때이다. 초록으로 짙어 가는 이맘때는 어느 산이고 아름다운 법이지만, 연인산은 특히, 그렇다. 섬세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산마다 다른 산 빛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되고, 저마다 다른 산 빛이 연인산에 와서 가장 아름답게 채색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월의 숲 연인산에 와서 초록의 아름다움을 안다.
오월의 숲연인산에 와서 초록의 아름다움을 안다. ⓒ 김선호

온갖 초록의 동류색깔들이 모두 모여있는 듯, 눈부신 초록빛의 향연은 연인능선을 넘어가는 길에서 만났다.

 

연인산은 크게 세 가지 능선길로 구분된다. 연인능선, 우정능선, 장수능선.

 

숲에 붙인 산길이름 치고 지나치게 '인간의 시각'이 들여다보이지만, 그중 연인능선은 참으로 그 이름이 적절해 보이는 사랑스러운 길이다. 가평군 백둔리에서 연인산을 향해 등산로 들머리를 진입하다보면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이 초입부터 꽤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다.

초장부터 진을 빼는 구나, 싶었을 때 불현듯 나타나는 너른 평야 같은 삼거리. 왼쪽으로 바투 오르면 우정능선이고, 가운데로 임도 같이 뻗은 길이 연인능선이다. 다른 길은 산으로 오르는 길과는 상관없이 마을과 연결된 산길인 모양이다.

 

우정능선은 줄곧 가파른 오르막과 급격한 내리막을 반복하는 길이다. 장수능선과 더불어 오월이 끝날 즈음엔 철쭉축제가 열리는 곳이니 만큼 철쭉꽃이 능선 길 양쪽으로 피어나 아름답다.

 

연인능선은 우정능선에 비하면 차분하게 이어지는 다정한 길이다.

 

우정과 사랑(연인) 중 어느 감정이 더 다정하냐고 묻는 질문에 연인산은 '사랑'이라고 답하는 것 같다. 그만큼 연인능선을 따라가는 길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숲이 짙고, 짙은 숲에선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계곡은 맑아서 흐르는 물소리는 더 없이 청량하다.

 

오월의 숲 유록이 초록으로 바뀔 무렵, 봄은 여름으로 건너간다.
오월의 숲유록이 초록으로 바뀔 무렵, 봄은 여름으로 건너간다. ⓒ 김선호

짙은 숲, 맑은 계곡 사이사이엔 수많은 야생화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이맘때면 홀아비바람꽃이 숲 속에 하얀 별 가루를 뿌린 듯 피어난다. 그 틈새로 피나물꽃이 노란 별점을 찍어놓은 듯 피어난 풍경은 더 없이 아름답다. 연보라색 벌깨덩굴이 한창이고, 양지꽃은 여느 산에서 보다 노랗다 못해 샛노란색을 자랑한다.

 

가파르게 오르막을 걷고 걸어 우정능선을 걸어왔거나, 잣나무 숲에서 피톤치드의 진한 향기로 샤워를 하고 숲 속에 숨바꼭질하듯 피어난 봄꽃들에 눈맞추며 느린 발걸음으로 연인능선을 걸어갔거나, 두개의 능선이 만나는 지점은 제주의 오름같이 둥근, 정상능선에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지난해에 온통 숲을 차지하고 피었던 얼레지가 겨우 몇 개 피었고, 각시둥글레와 은방울꽃 군락에서 간간이 흰꽃들이 눈에 띈다. 정상능선은 넓고도 환하다. 나무는 능선사면 한참 아래쪽으로 물러나고 훤하게 드러난 정상능선엔 전설을 간직한 둥글레와 은방울꽃들이 지천이다.

 
꽃 계곡과 인접한 연인능선을 따라가면 봄꽃들이 지천이다.
계곡과 인접한 연인능선을 따라가면 봄꽃들이 지천이다. ⓒ 김선호

여느 산이고 오월의 산에선 많은 등산객들을 만나게 마련이지만 연인산도 마찬가지다. 이 능선, 저 능선에서 만난 이들이 모두 정상능선에서 만나 갑자기 시끌벅적함으로 소란해지는 곳도 이곳에서다. 정상능선이 완만한 오름으로 보인다 하여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완만한 오름 같은 봉우리가 아마도 처음가보는 이라면 도대체 언제 끝나랴 싶게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상이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하나만 넘고 우정능선으로 하산이다.

 

연인능선을 맘껏 향유했으니 우정능선으로 산을 내려가며 '우정'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할 듯 싶었다. 늦봄의 오후 볕이 매우 따갑다. 우정능선의 철쭉도 따가운 볕에 지쳤는지, 일찌감치 꽃잎부터 떨어뜨리고 있다.

 

능선 연인산은 제주 오름같은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정상에 다다른다.
능선연인산은 제주 오름같은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정상에 다다른다. ⓒ 김선호

다른 듯 비슷한 '사랑'과 우정'처럼, 산 역시도 그러하였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음을 본다. 잣나무 숲이 아름다운가 하면, 참나무 숲은 푸르렀고, 바람꽃이 하얗게 흔들리는가 하면 둥글레 오종종 피어나 숲 속에 종소리를 선사하기도 했다.

 

숲이 품고 있는 다양함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우리는 숲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에 깊은 위로를 받고자 산으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보자면 연인산은 따스한 느낌으로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는 다정한 산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연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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