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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불참'도 이토록 미안할 줄이야...

 

26일 집회에는 가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리 건강체질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잔병치레가 잦은 편인 데다가 빨리 지치는 편이다. 24일 저녁부터 26일 자정까지 종일 길거리에서 격렬하게 움직인 데다가 돌아와서는 낮 집회의 사회를 맡은 소감을 기사로 작성했다.

 

그 이후에는 '조중동'의 사설을 비롯해 언론의 보도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이들 사이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논조의 균열을 감지한 것을 주목하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아침해가 떴기 때문이다.

 

다행히 출근은 낮 1시까지였다. 그래서 조금은 잠을 자둘 수 있었지만, 안타까운 것은 퇴근이 10시라 집회엔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생중계를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집회를 바라봐야만 했다.

 

24일과 25일에 걸쳐, 내 눈으로도 직접 본 광경이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촛불과 그 연대의식을 무기로 삼은 시민들이 폭력진압에 나선 경찰에 그렇듯 결사적이면서도 훌륭하게 저항할 수 있다는 점에, 입술이 떨리면서 울먹울먹해지는 것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요일은 내 정기휴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요일 휴가를 냈다. 만약을 대비해 하루의 시간을 더 여유롭게 비워두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은 2008년 5월 27일 화요일 새벽 3시 48분, 첫차는 5시에 출발한다.

 

과연, 일요일 오전처럼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남아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이다. 혹시, 사람들이 없다면 마침 우연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선배의 집에서 잠을 자둔 뒤에 오후에 '출격'할 생각이다.

 

미약한 힘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여건에서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애국을 위해 한 몸 불태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 움직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동참하고 싶다. 

 

고 조지훈 시인의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누던 지인께서 조지훈 시인의 시를 상기시켜 주셨다. 제목은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조지훈 시인이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던 4·19 혁명 당시, 제자들을 향해 바친 헌시라고 한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시다. 하지만 게재해보려고 한다.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의분(義憤)이 터져

노도(怒濤)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 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연구실 창턱에 기대 앉아

먼산을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두 시 거리에 나갔다가 비로소 나는 너희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물결이

의사당 앞에 넘치고 있음을 알고

늬들 옆에서 우리는 너희의 불타는 눈망울을 보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

너희들이 갑자기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쩐 까닭이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길은 무거웠다.

나의 두 뺨을 적시는 아 그것은 뉘우침이었다.

늬들 가슴 속에 그렇게 뜨거운 덩어리를 간직한 줄 알았더라면

우린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기개가 없다고

병든 선배의 썩은 풍습을 배워 불의(不義)에 팔린다고

사람이란 늙으면 썩느니라 나도 썩어가고 있는 사람

늬들도 자칫하면 썩는다고……

 

그것은 정말 우리가 몰랐던 탓이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 자라 악을 쓰며 지켜왔어도

우리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병든 그림자가 어리어 있는 것을

너희 그 청명한 하늘 같은 머리를 나무램했더란 말이다.

나라를 찾고 침략을 막아내고 그러한 자주(自主)의 피가 흘러서 젖은 땅에서

자란 늬들이 아니냐. 그 우로(雨露)에 잔뼈가 굵고 눈이 트인 늬들이 어찌

민족만대(民族萬代)의 맥맥(脈脈)한 바른 핏줄을 모를 리가 있었겠느냐.

 

사랑하는 학생들아

늬들은 너의 스승을 얼마나 원망했느냐

현실에 눈감은 학문으로 보따리장수나 한다고

너희들이 우리를 민망히 여겼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

 

사실은 너희 선배가 약했던 것이다 기개가 없었던 것이다.

매사에 쉬쉬하며 바로 말 한 마디 못한 것 그 늙은 탓 순수(純粹)의 탓

초연(超然)의 탓에 어찌 가책(苛責)이 없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꾸짖고 욕한 것은

너희를 경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처럼 되지 말라고

너희를 기대함이었다 우리가 못할 일을 할 사람은 늬들 뿐이라고-

 

사랑하는 학생들아

가르치기는 옳게 가르치고 행하기는 옳게 행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의 따귀를 때리는 것쯤은 보통인

그 무지한 깡패떼에게 정치를 맡겨놓고

원통하고 억울한 것은 늬들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럴줄 알았더면 정말

우리는 너희에게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르칠 게 없는 훈장이니

선비의 정신이나마 깨우쳐 주겠다던 것이

이제 생각하면 정말 쑥스러운 일이었구나

 

사랑하는 젊은이들아

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

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하늘도 경건히 고개 숙일 너희 빛나는 죽음 앞에

해마다 해마다 더 많은 꽃이 피리라.

 

아 자유를 정의를 진리를 염원하던

늬들 마음의 고향 여기에 이제 모두 다 모였구나.

우리 영원히 늬들과 함께 있으리라.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여를 막겠답시고 문자메시지 검열까지 지시하는 교육감, '배후'를 운운하는 교육감, 수업 도중에 형사가 학생을 데려가도 제대로 제지조차 안했을 선생님, 그렇다. 이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 자화상을 돌아보라. 조지훈 시인의 그 '뉘우침'이 48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당신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5일 일요일 아침까지 경찰과 격렬한 전쟁을 치르고 청계광장에 연좌한 200여 명의 사람들, 그속에는 학생들도 있었다. 특히, 내 머릿속에서는 어느 중2 여학생이 떠오른다. 기특할 정도로 당찬 아이였다. 그 녀석, 밤을 지새웠었다. 그랬음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발랄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말투로 지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당차게 이야기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뉘우쳐야' 한다. 48년 전, 조지훈 시인은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우린 얼굴이 뜨거워진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고 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를 탄생시켰으니, 20대 이상 모든 유권자는 책임져야 한다. 조지훈 시인의 시에서처럼 얼굴이 뜨거워지고 등골에 식은 땀이 흘러야 한다. 그게 맞다.

 

나오라 거리로, 함께 살자 대한민국

 

촛불문화제에는 많은 구호들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호를 꼽으면 2개를 들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노래, 그리고 "함께 살자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 그렇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대치하는 의경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 그렇다. 1% 부자들만 살게 만들 이명박 정부의 각종 서민 죽이기 정책에 대한 분노와 항의의 움직임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간단히 씻고 첫차를 탈 준비를 할 생각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가방 속에 넣으며 굳게 다짐한다. 이 디지털 카메라가 오늘이야말로 큰 역활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

 

함께 살자 대한민국, 촛불문화제에서 여러번 마주치며 동고동락했던 여러분들, 경찰의 폭력진압 속에서도 결연히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여러분들, 이따 다시 만나자. 여러분들과 할 이야기가, 그리고 함께 하고 싶은 목소리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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