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6시. 이른 저녁을 먹은 환자들이 속속 병원 로비로 모여든다. 저마다 링거 병들을 하나씩 걸고 이따금은 휠체어를 타고 이따금은 절룩거리며 로비로 나와 자리를 잡는다. 환자들만 로비로 모이는 게 아니다. 보호자들도, 일부러 병원을 찾은 듯한 일반인들도 더러 눈에 띈다.
오후 6시 40분. 병원 내에 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 저녁 7시. 파란하늘의 '사랑의 음악회'가 열립니다. 오늘은 파란하늘의 12번째 공연으로서 특별히 1주년 기념공연을 펼치게 됩니다. 환자분들이나 보호자들께서는 지금 곧 병원로비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로비가 분주하다. 파란하늘 멤버들이 공연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고, 앞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기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으려는 환자들로 또 분주하다.
7시 정각. 김포우리병원 로비는 통기타 소리와 그에 맞춘 신나는 노래 소리 그리고 박수소리와 그에 따른 흥겨움이 한데 어울려 '사랑의 음악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통기타 그룹 '파란하늘'은 김포에 거주하는 40대 중반 3명의 중년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파란하늘'이 만들어진 건 4년 전. 애초 음악을 좋아한 지인 8명이 모여 만들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5명이 떠나고 지금의 멤버만 남아 열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리더싱어에 김남주(46)씨,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김계중(45)씨 그리고 베이스에 경지수(45)씨. 이들은 모두 직업을 따로 갖고 있다. 그룹 '파란 하늘' 활동은 말 그대로 취미생활이다.
'파란하늘'은 2007년 5월 노동절 날. 김포시청 월례회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대외적 활동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한 지 1년이 된 셈이다. 우리병원 정기공연도 활동 1년에 발맞추어 첫 돌을 맞았으며 이젠 일반인들까지도 공연이 있는 날이면 우리병원 로비를 찾을 만큼 김포에선 꽤 유명한 통기타 그룹이다.
또 우리병원 공연을 시작하면서 여기저기 소문이 나기 시작해 한 달이면 3, 4회 정도 공연을 할 때도 있다. 1년 사이 인기가 급상승한 셈이다.
'파란하늘'을 일러 '호스피스 뮤지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환자를 위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란하늘'이 우리병원을 찾아 공연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김계중씨의 작은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몇 년 전 입원했을 당시, 대학생 연주자들이 병원을 방문하여 공연하는 것을 보고 언젠가 나도 저러한 봉사를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됐고 이것이 우리병원을 찾은 계기가 됐습니다. 처음엔 떨려서 도대체 무슨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는데 요즘은 다소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즐기며 공연합니다. 그리고 링거와 깁스를 하고도 열렬히 박수쳐주는 분들, 또 음악회 후 음료수를 전하는 분들 때문에 2시간 공연에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시작된 음악회는 연주자와 환자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매월 셋째 목요일이면 병상의 환자들을 비롯, 보호자나 일반인들까지도 파란하늘의 매력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우리병원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사랑의 음악회' 1주년 기념공연도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번 1주년 기념공연엔 가수 노고지리와 허현성씨가 함께 가세해 더 열광적이었다.
'파란하늘'이 연주하는 음악들은 주로 7080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들로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신나게 박수치며 함께 따라 부르기에 안성마춤이었다. 통기타를 신나게 쳐대는 '파란하늘'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환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하나가 되는 듯 했다.
교통사고로 다리 골절을 당해 우리병원 8병동에서 한 달 째 입원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입원하던 날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에 앉아 처음 '파란하늘' 공연을 봤는데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예전 한창 청춘일 적에 통기타를 두드리며 부르던 그 노래들을 아주 맛깔나게 부르는데… 홀딱 반해버렸지 뭡니까. 집이 인천이라 퇴원을 기다리면서도 한편 '파란하늘' 공연을 한 번 더 보고 퇴원했으면 했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행운을 잡게 되네요. 다음달엔 일부러라도 또 와야 될 것 같아요."
김포시내에 사는 송아무개씨는 공연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달 아내가 우리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아내와 함께 '파란하늘' 공연을 봤어요. 몸이 아프면 자연 마음도 우울해지는 법이잖아요. 당시 아내는 지루한 병원 생활에 무시로 짜증을 내곤 했었어요. 그런데 '파란하늘' 공연을 보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퇴원하면서 아내와 약속했었어요. 꼭 다시 보러 오자고. 오늘 그래서 다시 온 겁니다."
밤 9시쯤 공연이 끝났다. 어찌나 열성적으로 공연을 했던지 '파란하늘'의 세 남자는 땀으로 목욕을 한 듯 온몸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열성적이었던 건 멤버들뿐만이 아닌 듯 했다. 환자들도 보호자들도 아쉬움에 자리를 뜰 줄 몰랐다. 그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크면 클수록 '파란하늘'이 그들에게 준 위로도 그만큼 크고 값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파란하늘'은 언제까지나 우리병원 연주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건 매 공연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출연료(?)를 받기 때문이란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무한행복. 그게 바로 파란하늘이 받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출연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