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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임 공연자 이경열 씨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과 실뜨기를 하고 있다.
마임 공연자 이경열 씨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과 실뜨기를 하고 있다. ⓒ 윤자열

'2008 춘천 마임 축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 명동 곳곳에서는 수많은 인파의 둘러 싸여 박수와 환호성을 받으면서 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있다.

그 인파에서 떨어진 곳에 혼자 길거리를 걸으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고무신에 바바리를 걸치고 금테의 검은 선글라스를 낀 이 남자는 갑자기 바바리 속으로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낸다. 하얀 실타래를 꺼내 양팔을 뻗은 만큼 실은 자른다. 실의 양끝을 묶어 이쪽으로 저쪽으로 실을 교차하면서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성에게 다가간다.

놀란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냐고 묻자 남자는 대답대신 양손을 가까이 들이 댄다. 실뜨기를 하자는 거다. 머뭇대던 여성이 실을 잡고 다시 내밀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이 사람에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해진 장소, 형식, 준비물도 없다. 정해진 관객도 없다. 이 남자의 발길이 멈추는 곳이 무대이고,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이 관객이 된다. 이 남자의 이름은 마임 공연자 '이경열'이다.

이경열은 올해로 꼬박 10년 동안 마임을 해왔다. 처음엔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지만 매번 짜여진 공연을 단체로 해야 한다는 것에 싫증을 느꼈다. 그런 그에게 혼자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마임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경열에게 마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마임을 통해 자신과 관객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서로의 마음이 열려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짜여진 스토리는 필요 없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이야기를 관객이 이해하고, 함께 즐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했다. 자신과의 소통을 원하고, 의사소통이 폭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언제든 슈퍼맨처럼 달려갔다.

 ‘슈퍼맨이 되고 싶은 사나이’ 이경열 씨는 슈퍼맨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공연한다.
‘슈퍼맨이 되고 싶은 사나이’ 이경열 씨는 슈퍼맨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공연한다. ⓒ 윤자열

그러던 어느 날, 이경열에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줄만 한 일이 생겼다. 인천의 농아학교인 성동학교의 마임 공연 지도를 맡게 된 것. 수화도 할 줄 모르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온 몸을 움직여야 했다.

처음엔 마임 지도를 함께한 선생님이 한 분 더 계셨지만 그 분이 관두고 난 뒤 5년 동안 홀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학생들이 제법 스스로 의사소통 하는 법을 배워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졌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마임을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관객이 누가 되었든 소통하지 못한 마임은 진정한 마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준비한 성동학교 학생들은 낮도깨비(토요일, 고슴도치섬 공연)에서 '친구야 놀자'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라간다.

이번 춘천 마임축제의 이경열의 공연 시간과 무대는 '언젠가, 어디선가'이다. 정해진 레퍼토리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주변에 보이는 '무언가'를 가지고 공연을 한다. 다른 팀의 공연에 나타나서 그 주변에서 혼자 공연하기도 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관객과 어떻게 소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그의 자유분방함과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고, 관객과 함께 즐기는 공연을 한다. 그의 공연에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이 없다면 그의 공연은 완성될 수 없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과 소통할 대상을 찾아 어디든 떠나는 행위자이고 싶다고 했다.

 이경열씨가 다른 공연팀의 소품을 쓰고 시민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이경열씨가 다른 공연팀의 소품을 쓰고 시민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윤자열

길을 걷다 우연히 바바리에 고무신을 신은 아저씨가 양손에 실을 걸치고 들이밀어도 놀라지 말라. 그는 지금 당신과 실뜨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그와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통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그와 통하였다면 잠시 여유를 가지고 놀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나는 슈퍼맨, 앞으로 슈퍼맨이 열어갈 소통의 장을 기대해 본다.

 이경열씨가 횡단보도를 함께 건넌 시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경열씨가 횡단보도를 함께 건넌 시민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윤자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일보 인터넷판과 춘천마임축제 공식인터넷판 뉴스토피아에도 실렸습니다.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윤자열, 박지연, 유은주, 박민영, 사지민 학생이 같이 작성하였습니다.



#춘천마임축제#마임#이경열#마임공연자#강원대신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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