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정부는 마침내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하고 말았다. 20일 넘게 전개된 촛불집회와 200명 이상이 연행 구금 투쟁으로 맞섰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오기가 국민의 뜻을 억누르고 잠시 승자의 자리에 서 있어 보인다.
고시 강행은 그동안 우리가 가꾸고 확장시켜 온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헌법과 법령 그리고 행정적 절차를 명백히 어긴 위반 행위다.
고시 강행은 지난 10년의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와 달리 국민이 아예 없는 '이명박만의 정부'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 대목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국민 모두가 반대하는 고시 강행의 길을 정부는 왜 강행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쇠고기 고시' 강행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FTA의 조속 처리와 미국 눈치 보기다. 만약 FTA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소고기 협상을 강행했다면 이는 FTA처리와 관련해서 전략의 부재를 보여 준 것이며, 오히려 17대 국회에서 FTA처리를 막아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참여 정부에서도 쇠고기 전면개방의 요구는 있어왔고, 한미 FTA 선결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참여정부의 협상에서는 그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고 지켜 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친미 사대성이다. 소고기 협상강행과 고시 강행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또 다른 의문은 국민이 그토록 반대하고 있는 이 시기에 강행할 이유는 뭔가? 6월 3일이 되면 이명박 정권의 취임 100일이다. 우리 속담에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낮고 한꺼번에 맞고 정리하는 게 낮다는 말이 있다.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것이다.
어제 정부와 한나라당의 의도는 당정협의에서 밝혔듯이 어차피 재협상으로 변경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이상 대통령이 국내에 없을 때 고시를 강행하여 대통령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부가 뒷전으로 빠지며 당이 일정 책임을 나눠갖는 당정협의 형태로 고시가 강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왕에 물가문제, 교육 정책, 대운하 추진, 각종 정책혼선으로 고조된 국민 불만을 쇠고기로 대신 맞고 차후에 수습책을 내놓겠다는 계산이다. 국정 쇄신안을 내놓기 전에 챙길 수 있는 실리는 챙겨놓겠다는 얄팍한 수다.
이러한 분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시를 강행한 것을 보면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이명박 정부는 모르고 있거나 인지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갖고 있어 보인다. 국민이 촛불을 드는 의미와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이 촛불을 드는 단 하나의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다. 경쟁의 가치를 먼저 알고, 가족의 정과 따스함을 이해하는데 게으른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가족을 지키려는 절절한 국민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정부에게 영화 <괴물>을 다시 보길 권하고 싶다.
촛불집회가 연일 계속되면서 그 양태와 규모가 나날이 달라지고 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지혜로움이, 대중들의 실천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디지털 게릴라들'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는 빛났다
그 중의 압권은 심재철 의원의 후원 구좌에 1원 또는 18원을 보내는 '기가 막힌' 저항 운동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스스로를 닭장 차에 잡아 가두는 '나 잡아 가라' 라는 불복종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이명박 정부의 굴욕적 대외정책에 대한 거부이자 비웃음이다. 한미간의 쇠고기 협상을 넘어서서, 일본과 중국에서도 뒤통수 맞고 있는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의 비싼 댓가다.
두번째로 국민의 주권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저항이며 불복종운동이다. 1980년대의 저항은 최루탄과 백골단에 돌맹이와 화염병으로 맞선 거리의 투쟁이었다면, 지금의 국민저항은 IT 혁명의 산물인 DMB폰과 인터넷을 동원한 디지털 투쟁이다.
인터넷 아고라가 투쟁의 성지로 변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이 집회현장과 책상 앞을 쌍방향으로 연결하면서 기성언론을 대체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집회의 문화와 형태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980~1990년대의 투쟁이 지도부의 수직적 오더에 의해 이뤄졌다면, 촛불 문화제는 무 지도부와 수평적 참여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2002년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 때의 인터넷 중심에다 또 다른 DMB폰 투쟁 방식이 가미되어 신속함과 현장성이 최고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그렇게도 찾고 싶었던 이번 투쟁의 배후와 지도부는 아고라였고, 소통의 수단은 디지털 첨단기기였다.
세 번째로 국민 대중이 제도정치권과 정부, 조직화된 단체를 이끌어 가는 국민주권의 시대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이는 5월 항쟁과 6월 항쟁에서 면면히 흘러온 정신이다.
일단 고시 강행이 이뤄지면서 아무도 이 문제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되 버렸다. 이명박 정권이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무릎을 꿇거나, 미국산 소고기를 우리의 식탁에 올려놓거나 둘 중에 하나 만 남았다.
당장은 정부의 고시 강행은 국민의 자발적 저항운동, 불복종 운동의 폭과 수위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중고등학생의 참여에서 휴가서를 제출한 직장인의 참여로 전환되고, 대학생들은 휴업찬반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주부들은 강경진압의 현장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자신의 아들 딸을 보듬고 나서고 있다.
국민의 자발적 저항·불복종 운동의 결말은?
노동계는 미국산 쇠고기 운송봉쇄와 거부를 밝히는 등 투쟁이 실생활 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또 지자체는 실효성은 없으나 조례제정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민주당은 장관 고시 무효화를 위한 4대 권역의 장외투쟁 전개를 선언하면서, 원내 협상과 장외투쟁을 조화롭게 진행할 계획이다. 야 3당은 장관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는 한편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과 '광우병예방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고시를 무력화시키는 국회 입법 투쟁을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정 쇄신안 발표 등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겠지만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번 고시 강행은 이명박 정부대 반이명박 전선을 뚜렷이 구별 짓게 만들 것이며 이는 교육, 경제정책, 대운화 추진 등으로 더욱 확대 될 전망이다.
저항의 시작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가정을 지키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감히 '가족의 힘'을 이기려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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