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안개 숲을 헤치고 새벽길을 달렸다. 전남 담양 죽녹원 가는 길은 자욱한 안개세상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는 차량의 불빛들이 오간다. 신비로운 숲길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메타세쿼이아를 휘감고 있던 희부연 안개가 스르르 걷힌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금성산성과 담양리조트길, 좌회전하면 추월산과 죽녹원 가는 길이다.
향교교 건너기 직전 좌회전하여 관방제림의 천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안개에 뒤덮인 관방제림 길에는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노란꽃창포 흐드러진 천변 풀 섶에는 오리 떼가 부리로 깃털을 손질하고 있다. 냇가의 징검다리를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신비로운 대숲 죽녹원 가는 길
향교교를 건너니 왼편에 곧바로 죽녹원이 보인다. 멋스러운 돌계단을 오르니 대숲에 판다 곰이 제일 먼저 반긴다. 운치 있는 대나무 정자의 자태도 시선을 붙잡는다. 관람시간(오전 9시~저녁 7시)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른 아침에는 그냥 돌아볼 수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이곳 역시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대숲 길을 오간다.
아침에 찾은 대숲은 고요하다. 운수대통 길과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바닥에 통대나무가 놓인 죽마고우길,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는데 멧비둘기 한 마리가 죽마고우 길로 날아간다. 멧비둘기를 따라 나섰다. 대나무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 신선하다. 대숲에서 댓잎에 맺힌 이슬이 두두둑~ 떨어져 내린다.
이내 흙길로 이어진다. 움푹 파인 흙길에는 대나무 뿌리가 드러나 있다. 대나무는 올곧게 하늘로 치솟았다. 뒷산에서 이따금씩 울어대는 뻐꾸기가 안개 서린 대숲의 고요를 깨뜨린다. 이른 아침 죽녹원 왕대숲길에는 자연의 신선한 신비감이 가득 서려있다. 피부에 와 닿는 차가운 기운도 차라리 신선함으로 느껴진다.
대나무 정자에 머물며 시름 한 자락을 덜어내고
죽녹원의 대숲은 연인과 함께 걸으면 더없이 좋을 그런 곳이다. 대숲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상쾌하게 들려오는 아침이면 더욱 좋겠다. 이런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때까치 녀석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고약스럽게 우짖으며 심통을 부린다. 대숲에 지어진 대나무 정자에 잠시 머물면 시름 한 자락을 덜어낼 수도 있다.
이곳 삼거리에서 잠시 망설이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운수대통 길과 다시 이어진다. 인적 없는 이른 아침에 이 길에 서면 마음에는 절로 고요가 머문다. 때까치 한 마리가 길안내를 한다. 대나무분재 및 생태전시관도 볼거리다. 이곳으로 빠져나가면 중요무형문화재 53호인 채상장 전수 전시관도 있다. 대나무 예술의 진짜배기를 무료 관람 할 수 있다. 하지만 죽녹원에는 아직 돌아볼 것이 더 있다. 이곳은 나중에 구경하기로 하고 대숲 길을 따라간다.
대숲에는 야생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바쳤다는 대나무이슬을 먹고 자란 그 유명한 죽로차가 생산되는 곳이다. 죽향정 정자는 마른 댓잎을 한가득 이고 있다. 2004년 7월 감우성 주연의 영화 <알포인트>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주연배우 감우성이 썼던 철모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운수대통 길'
대나무 숲길은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또다시 여러 갈래 대나무길이다. '샛길',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이 있다. 산책로를 다 돌아보는 데는 총 96분이 소요됨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샛길로 빠져볼까? 아니야, 이왕이면 사랑이 변치 않는 길로 가야지" 생각하다 운수대통 길로 접어들었다. 어차피 모든 길은 서로 이어진다. 운수대통 길을 돌아 사랑이 변치 않는 길로 돌아 나왔다.
예향정 뒤편의 맨 땅에서 맹종죽의 죽순이 땅을 뚫고 나온다. 대숲 여기저기에도 죽순이 삐쭉삐쭉 올라오고 있다. 이곳에서 잠깐 흙길이 나타났다 다시 포장길로 이어진다. 숲에는 개망초, 지칭개 꽃이 피어나고 빨간 뱀딸기 열매가 익어간다.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은 내리막길 계단이다. 걸을수록 신이 난다. 대숲 길은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간간이 만나는 비포장 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이 길을 가다보면 죽향 체험마을 가는 길과 성인산 오름길도 만난다.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이 이채롭다. 대숲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방죽가에 핀 노란꽃창포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방죽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비단잉어가 마음의 시름마저 잊게 한다. 죽림욕장 죽녹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청량감이 가득한 대나무의 기를 듬뿍 받아서인지 마음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광주- 24번국도 순천방면- 담양읍 사거리 29번국도- 용면방향 5분 왼쪽- 죽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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