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
정부에서 들여오겠다고 하는 ‘미친소 고기’ 때문에 온나라 사람들이 들썩입니다. 이 들썩임이 우리 밥상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는 ‘미친소 고기’로 그치지 않고, 밥상 다른 자리를 차지하는 ‘유전자 바꾼 곡식’에도, 또 ‘갖은 농약과 비표와 항생제를 쓴 먹을거리’에도 가 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또한, ‘고시철폐’라는 외침이 ‘대학 서열 없애기’로 이어지고, ‘대학이 참되게 학문을 갈고닦는 곳’이 되도록 하자는 외침으로 이어지는 한편, 초중고등학교 교육이 ‘입시지옥’이 아니라, ‘참사람이 되어 사랑과 믿음으로 함께 즐거울 길찾기’가 되도록 하자는 외침으로까지 번지면 얼마나 반가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모든 따돌림과 푸대접이 사라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 개성과 창조를 살리면서 북돋울 수 있도록, 법이 사람을 옭아매거나 억누르는 틀거리가 아니라, 법이 없이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꺼이 돕고 나누고 베푸는 문화가 자리할 수 있도록 눈길을 쏟아 주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 4월 22일, 책방 〈풀무질〉 아저씨가 쪽글을 하나 썼습니다. 올들어 거의 처음으로 쓴 글이라고 합니다. 워낙 바빠서 못 쓰고 있다가, 요사이 겪고 있는 ‘책방 사찰’ 때문에 글을 하나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집회와 결사와 출판과 보도를 하는 자유’가 또렷이 적혀 있고, 헌법보다 높은 법이 없습니다. 집회든 결사든 출판이든 보도든 ‘허가나 검열을 받을 수 없음’이 굵직하게 적혀 있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러한 자유와 권리는 짓밟혀서는 안 된다고 못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 있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특별법’과 ‘나쁜법’ 때문에, 우리 삶은 고단합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민은 없는 가운데 저희끼리 ‘특별법’을 만들어서 고시를 해 놓으면, ‘내 고향에서 내가 살아갈 권리(주거권)’를 누릴 수 없이 쫓겨나고 재개발이 되어야 합니다. 잘못이니까 잘못이라고 말을 해도 명예훼손이 되고, 잘못을 따지는 집회를 해도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더구나,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겨레를 짓밟고 괴롭히려고 만든 몹쓸 법임에도, 아직까지도 이 도깨비가 고스란히 살아남아서 우리 목을 죄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헌책방 일꾼 몇 사람을 구속한다면서 들쑤시고 다니더니, 올해에는 인문사회과학책방 일꾼을 잡아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책방 일꾼이 책 파는 일이 무어 죄가 된다고? 그리고 헌책방이나 인문사회과학 책방에서 파는 책은,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반디앤루니스에서 버젓이 ‘베스트셀러’로 잘 팔고 있는 책인데. ‘정치 사찰’을 하려면 교보문고 사장을 먼저 할 일이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사장’을 먼저 할 일입니다. 한길사, 창비, 해냄, 동녘, 돌베개 출판사 사장을 먼저 붙잡아야 올바릅니다. 국가보안법 잣대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정보과 형사들 말에 따른다면.
풀무질 일꾼 글 : 난 다시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갈 수 있다 |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가 일하는 책방으로 사복 경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그들은 내게 말을 걸지도 않고 30분 가까이 책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실천연구소에서 내는 《실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노동자》, ‘다함께’ 기관지 《맞불》,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을 찾았다.
난 1993년 봄부터 책방을 꾸려 오고 있다. 그때는 김영삼이 대통령이었는데, 그땐 이런 경찰들이 일 주일에 서너 번은 왔다. 스스로 어디서 일하는지 밝히기도 했다. 책방에서 가까운 경찰서를 비롯해서 국가정보원(당시 안전기획부), 군기무사 사람들도 왔다. 그들이 사 가는 책들은 사회주의 생각이 들어 있는 책들이 많았지만, 책방에서 책을 파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 난 1997년 4월 15일에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 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때 문제가 됐던 책들은 《전태일 평전》, 《월간 말》, 《철학에세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책들이다. 그 책들은 지금도 큰 책방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하지만 큰 책방 대표들이 잡혀 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날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대표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끌려갔다. 그 뒤로 조직 사건이 예닐곱 개 터졌다. 그렇게 공안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해 대통령에는 김대중이 뽑혔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면서 책방에 뜸하게 오던 공안 경찰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활개를 친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치안유지법이 그 어머니다. 그 법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만들어졌다. 그 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이승만이 다시 고쳐 만들었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60년이 된다. 그동안 그 법으로 죽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러운 정권을 지키려고 만든 법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수없이 잡아가두고 죽이는 일에 쓰였다.
난 ‘국가보안법 제 7조 1항과 5항’에 따라서 벌을 받았다. 내가 ‘국가 존립, 안전, 자유 민주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책을 팔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모두 공산당원이 돼서 총을 들고 나가 이 나라를 뒤집어 엎을까. 그렇게 쉽게 세상이 바뀐다면 진짜 살맛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 돈에 눈먼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좋다고 떠든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끽소리도 안 하고 살까.
아무튼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오히려 대운하를 만들어 자연과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고, 백성들이 먹고 죽을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미국 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마구 들여오겠다는 이명박 정권이 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뿌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또다시 끌려가서 양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좋겠다.
헌법에도 보장되었듯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상과 양심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한다. 먹을거리를 일구는 농사꾼과 이 땅 목숨붙이들이 사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사회주의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지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핀다. 그런 날을 앞당기는 데 내가 꾸리는 작은 책방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2008년 4월 22일 화요일, 새벽을 지나 아침이 환하게 밝은 무렵,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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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잘 살려서 쓴 대목
책방 〈풀무질〉 아저씨가 쓴 쪽글에서 잘 살려서 썼다고 보이는 대목을 하나씩 들어 보겠습니다.
―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 ‘당선(當選)’이나 ‘선출(選出)’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기글처럼 ‘되다’를 쓰거나 ‘뽑히다’를 쓰면 넉넉합니다.
― 경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 ‘들락거리다’와 ‘드나들다’ 같은 말을 쓰면 됩니다. ‘출입(出入)’은 일본말입니다. ‘출입구’와 ‘출입문’도 일본말입니다. 우리 말은 ‘문’이거나 ‘나들문’입니다.
― 책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 ‘수색(搜索)’을 하거나 ‘조사(調査)’를 한다지요. 이 자리에서 보듯이 ‘살피다’를 넣거나 ‘살펴보다’나 ‘찾다’를 넣어 줍니다.
―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책
: 책은 ‘발간(發刊)’을 하거나 ‘발행(發行)’을 하지 않습니다. ‘내’거나 ‘펴냅’니다.
― 책방을 꾸려 오고 있다
: 책방도 꾸리고 가게도 꾸리고 회사도 꾸립니다만, 가게나 회사 사장님들은 으레 ‘운영(運營)’이나 ‘경영(經營)’이라는 말만 쓰고 있습니다.
― 스스로 어디서 일하는지 밝히기도
: ‘스스로’라는 말이 있으니, ‘자진(自進)해서’나 ‘자발적(自發的)으로’ 같은 말은 안 써도 됩니다. ‘밝히다’라 하고 ‘공개(公開)’라 하지 않으니 반갑습니다.
― 그들이 사가는 책들은
: 우리들은 저잣거리에 가서 물건을 ‘삽’니다. ‘사들이’기도 하고, ‘장만’도 하며 ‘마련’도 합니다. ‘구입(購入)’이나 ‘구매(購買)’는 아닙니다.
― 사회주의 생각이 들어 있는 책들
: 흔히 ‘사상(思想)’을 말합니다. ‘철학(哲學)’을 말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말을 써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생각’ 한 마디로도 우리 마음을 담아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 큰 책방에서
: 거의 모두 ‘대형(大型) 서점’이라고 하지요. 말 그대로 크니까 ‘큰’ 책방입니다. 작으니 ‘소형(小型) 서점’이 아니라 ‘작은’ 책방입니다.
― 잡혀 갔다는 얘기
: 법률에 따르는 말은 ‘구속(拘束)되었다’나 ‘체포(逮捕)되었다’라 하는데, 우리들은 ‘잡히다’나 ‘붙잡히다’로도 법률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세 사람이 한꺼번에 끌려갔다
: ‘삼 인(三 人)’이 아니라 ‘세 사람’입니다. ‘동시(同時)에’가 아니라 ‘한꺼번에’입니다.
― 공안 바람을 일으켰지만
: 치마바람이 불고, 영어바람이 붑니다. 이와 같은 ‘바람’입니다. ‘열풍(烈風)’은 아닙니다.
― 치안유지법이 그 어머니다
: ‘모태(母胎)’라는 말을 곧잘 듣는데, ‘모태’란 “어머니 뱃속”이라는 소리입니다. 이 대목처럼 ‘어머니’라 하면 한결 낫습니다. 또는 ‘뿌리’나 ‘바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 일제에 맞서 싸웠던
: 우리들은 옳지 않은 무리와 맞서서 ‘저항(抵抗)’을 하고 ‘항거(抗拒)’도 하고 ‘대항(對抗)’도 합니다. 이 ‘저항-항거-대항’이란, 우리 말로 ‘맞서다’나 ‘맞서 싸우다’입니다.
― 이승만이 다시 고쳐 만들었다
: 법을 고칠 때, 정치꾼들은 ‘개정(改定)’이라는 말을 쓰는데, 고치는 일이니 ‘고친다’고 하면 됩니다.
―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 자꾸 법 이야기가 나오는데, 법을 만드는 일을 한자말로 ‘제정(制定)된’으로 적기보다는, 말 그대로 ‘만들다’나 ‘세우다’라고 적어 주면 됩니다.
― 더러운 정권을 지키려고
: 더러우니 ‘더럽다’고 하고, 지저분하니 ‘지저분하다’고 합니다. ‘추악(醜惡)한’은 ‘더럽다’나 ‘지저분하다’를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
― 끽소리도 안 하고 살까
: 사람들은 ‘불평(不平) 불만(不滿)’을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토박이말 ‘투덜거리다’가 있고, 이 자리에서 쓰듯 ‘끽소리도 안 하다’도 있습니다.
― 마구 들여오겠다는
: 물건을 파는 일을 ‘수출(輸出)’이라 하고, 물건을 사는 일을 ‘수입(輸入)’이라고 하는데, 파니까 ‘판다’고 하고, 사들이니까 ‘들여온다’고 해 줍니다.
― 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 ‘지옥(地獄)’과 ‘나락(那落)’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만, ‘구렁텅이’나 ‘낭떠러지’를 넣어 보아도 괜찮습니다.
―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일조(一助)’라는 말은 차츰 쓰임새가 줄지만, 지식인들 입에서는 아직 안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말 ‘도움’이 있습니다.
(3) 아쉬운 대목
잘 살려서 쓴 대목이 이렇게 있는 한편, 몇 가지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번 쪽글에서는 세 가지가 보입니다.
― 만들어진 지 60년이 된다
→ 만들어진 지 예순 해가 된다
― 일 주일에 서너 번은
→ 한 주에 서너 번은
―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가
→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가
아쉽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고, 아쉽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숫자를 헤아릴 때 ‘오십 년-육십 년-칠십 년’처럼 말해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다만, ‘쉰 해-예순 해-일흔 해’처럼 말하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일 주일’이라는 말도 그래요. ‘한 주’로 적어 주면 더 반갑지만, ‘일 주일’이라고 쓰는 일이 잘못은 아닙니다.
‘위태(危殆)롭다’ 같은 말도 쓰고 싶으면 얼마든지 쓸 일입니다. 그저, 글흐름을 살피면, 이 대목에서는 ‘흔들다’를 넣어도 어울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4) 촛불집회로 바쁜
공안경찰이 책방 〈풀무질〉을 드나든 지 어느덧 한 달 남짓. 요즈음은 어떠한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 여쭈어 봅니다. “요사이는 안 와요.”
하긴, 요즘 같은 때에 공안경찰들이 한갓지게 책방에 가서 ‘꼬투리 잡기 책 사기’에 시간을 보낼 만하지 않을 테지요. 촛불집회를 하는 광화문에 가서 누구를 잡아갈까 하고 눈을 번득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책방 〈풀무질〉 아저씨도 날마다 촛불집회 자리에 나간다고 합니다. 책방 일 하랴 집회에 나가랴, 몸뚱이 몇이라도 모자랄 판일 텐데, 집회터에서 아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반갑고 힘을 얻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나가서 움직여야 바꿀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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