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3시간 반만에 장성에 내렸다. 여느 때처럼 나는 무심코 내 차를 주차해 뒀던 성당에 올라갔다. 그런데 오늘 마침 성모의 밤 행사를 성당 마당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그만 깜박 잊고 있었던 거다. 행사가 이미 시작되었기에 나는 말석에 아무 소리없이 주저앉았다. 모두들 성모님께 바치는 천주교식 촛불을 들고 있었고 이 촛불은 그대로 성모상 앞에 봉헌되었다. 한 시간 남짓 행사를 진행하고 나서 아마 한 300여 명의 신자들은 다시 촛불을 바꾸어 드는 것이었다.
바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시작하려는 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 그것이었다. 왜 이들 종교인들이 촛불을 들어야만 했을까? 나는 이 고을에서 시위하는 것을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 4.19시위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촛불을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것도 종교인들이 성당을 박차고 고요한 작은 고을 시내를 묵주의 기도를 올리며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다. 왤까? 누가 이들을 거리로 끌어낸 것일까?
시위란 대부분이 대도시에서 이루어지고, 그 효과도 대도시여야 크다. 청계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2일째 계속되는 촛불 시위. 그날 이 작은 고을에서도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조용히 촛불에 담은 것이다.
"우리의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우리의 생명을 내줄 수 없다."
그들은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주인을 섬기겠다던 머슴들은 마이동풍, 우이독경격이다. 아무 문제 없으니 그냥 먹으란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괜찮단다. 그러니 먹으란다.
우리 사회의 구성상, 그 값싸다는 쇠고기. 가장 먼저 먹을 사람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다. 열악한 학교 급식에 제일 먼저 오를 건 뻔한 게 아닌가!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그 고기를 먹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말인즉슨 맞다. 그래 안 먹으면 그만이다. 누가 강제로 먹으랬나! 미국산 쇠고기 들어와도 국민들이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그럼 수입할 일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어느 수입업자가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수입한단 말인가! 잘난 책임자는 그러란다.
광우병 쇠고기 대책치고는 완벽하지 않은가! 안 먹는데 어떻게 병에 걸리겠는가!
저 촛불을 높이 든 아이는 뭐라고 했을까?
저 우리 옷을 곱게 차려 입으신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는 그 촛불에 무슨 염원을 담으셨을까?
저 반백의 할아버지는 또 그 촛불에 뭘 담으셨을까?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서로 믿고 의지하고 서로 돕는 사회는 왜 만들 수 없는 것일까? 하느님은 우리 인간 사회를 그렇게 만드신 것일까?
기자는 이 작은 고을의 촛불시위를 취재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던 그들의 말이 왜 지금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반만 년만에 찾은 10년이었다는 것을 정권이 바뀐 지 100일도 안 되어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 10년이 어느 때 다시 찾아올까? 가난한 서민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