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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교통과 통신이 차단되었고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들은 봉쇄되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티베트에 평화를'이라는 주제로 '티베트평화연대'에서 마련한 릴레이 기고를 싣습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국제문제전문가, 문인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기고로 티베트 사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티베트 깃발이 보인다. 이 사진은 폰카로 찍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 사천성 라브랑에서의 시위 티베트 깃발이 보인다. 이 사진은 폰카로 찍어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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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은 티베트인들의 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절규도 함께 묻어버렸다. 최악의 대재난을 맞은 중국을 향해 다시 티베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동안 생업을 밀쳐놓고 시위를 벌여온 망명 티베트인들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티베트 망명정부 역시 지진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세계에 흩어져 있는 15만 망명 티베트인들, 티베트 지원단체들에 5월 말까지 시위 자제를 당부했다. 대신 지진 피해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많은 티베트 사원에서 열리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의 대화도 시작되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티베트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중국 정부는 이런 흐름에 편승해 어떻게든 티베트 문제가 다시 부상하지 않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 정부의 일방적 희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지난봄 티베트에서 벌어진 학살과 고문, 인권유린의 참상이 언론통제와 봉쇄로 덮어 버리기에는 너무 심각했다.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진실은 또 다른 저항을 티베트 안팎에서 부를 것이다. 더구나 중국정부는 60년간 이어 온 티베트 강압 정책을 바꿀 의사가 거의 없어 보인다. 지진 발생 후에도 티베트 내에서 대규모 검거작전을 조용히 진행하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대규모 한족 이주정책도 지속적으로 준비 중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최근 중국정부가 올림픽 후 1백만명 정도의 한족을 추가 이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래서 많은 티베트인들이 올림픽이 끝난 후 몰아칠 더욱 광폭해진 탄압을 더 걱정하고 있다.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였을 때 티베트 내에서 항쟁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오히려 달라이 라마가 경고한 대로 더 폭력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달라이 집단의 사주를 받은 소수 독립분자들의 폭동'이라고?

대체 지난봄 티베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진실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항쟁을 '달라이 집단의 사주를 받은 소수 독립분자들의 폭동'이라고 강변했다.

차를 뒤집고 방화를 하고…. 2008년 봄, 화면에 나타난 모습만 보자면 티베트인들은 영락없는 폭도들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중국정부가 가혹한 탄압과 폭력으로 티베트인들의 폭력을 유발하였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80년 광주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평화적 시위'가 어떻게 무장 항쟁으로 발전하는지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는 3월 10일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수일 전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3월 7일 라싸 드레풍 사원의 스님 수십 명이 공안청(경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지난해 가을 중국 경찰의 애국훈련에 항의하다 잡혀간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애국훈련은 중국 경찰이 승려들을 모아놓고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을 강요하는 매우 악명 높은 식민 동화정책의 하나다. 말이 시위지 수십 명이 항의 방문을 했던 정도였는데, 중국공안은 이들에게 살벌한 폭력을 퍼부었다. 현장에 있던 몇 사람이 체포되었다.

중국 정부의 악명높은 애국훈련으로 잡혀간 스님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라싸 드레풍 사원 스님들의 시위
 중국 정부의 악명높은 애국훈련으로 잡혀간 스님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라싸 드레풍 사원 스님들의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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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3월 10일 동료승려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드레풍 사원의  승려 4백명 정도가 시위를 벌였다. 이날은 마침 1959년 티베트 민중들이 중국의 강점에 맞서 봉기했던 날이다. 이날 시위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니 마치 소풍가듯 행진하는 승려들의 모습에는 어떤 긴장감도 찾을 수 없었다. 티베트를 상징하는 깃발(설산사자기)도 흔한 플래카드도 하나 없었다.

그런 이들에게 중국 공안은 최루탄과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수십 명이 부상당하고 투옥되었다. 그러자 3월 11일에는 간덴 사원의 스님들 6백명이 라싸 도심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평화로웠지만 폭력적인 진압은 또다시 반복되었다. 연이틀 스님들이 구타당하는 처참한 장면은 라싸 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공분을 불렀다.

휴일을 보낸 14일 월요일, 이번에는 시민들이 가세해 경찰에 항의하였다. 그때도 시위는 매우 평화로웠다. 그런데 이날 오후 늦게부터 시위는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했다. 우리가 중국관영매체를 통해 본 화면들처럼 성난 시위대들은 상점과 차량에 방화를 하기도 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평화스럽던 시위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폭력으로 치달았던 것일까?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였다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우리는 하나둘 외부로 공개되는 정황들을 통해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날 오후까지도 시위는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왜 갑자기 폭동수준으로 발전하였을까, 중국정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 3월14일 라싸 풍경 이날 오후까지도 시위는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왜 갑자기 폭동수준으로 발전하였을까, 중국정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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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와 유사했던 라싸 시위

3월 14일 라싸 시위에 가담했다가 탈출한 한 티베트인은 중국정부가 시위대에 발포함으로써 시위대의 행동도 과격해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체포되면 군인들이 죽일 것 같아 가족을 놔두고 탈출했다고 한다. 군의 발포에 의한 시위대의 과격화. 이것은 우리가 80년 광주에서 목격했던 것과 유사하다.

몇 가지 의혹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첫째, 라싸에는 중국 공안들만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리칭이라는 양심적 중국 지식인은 티베트 내 중국 경찰과 군대만 150만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소 10만 이상의 공안이 있는 경찰도시가 라싸다. 그런데 기껏 수 백명에 불과한, 그것도 비무장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었고, 군대는 투입되자마자 바로 발포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둘째, 중국 공안들이 시위대의 폭력을 부추기기 위해 티베트 전통복장을 갈아입고 방화와 약탈 등 폭력을 유발하였다는 의혹이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화교 여성의 증언으로 영국 BBC에도 방영되었다. 셋째, 3월 16일 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라싸의 소식통을 근거로 "14일 탱크가 시위대를 향하여 돌진하였고, 이를 본 군중들이 흥분하여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탱크에 깔려 사망한 수 십구의 시체를 군인들이 싣고 외곽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3월 14일 오후 중국 정부는 과격해진 티베트인들이 차량과 상점에 방화하도록 몇 시간을 허용(?)하면서 티베트 지배와 탄압의 정당성을 선전할 수 있는 자료들을 대거 수집하였다. 따라서 이 몇 시간의 화면만으로 이번 항쟁이 티베트인들의 계획된 폭동이었다는 중국정부의 주장을 믿기는 어렵다. 실제 티베트 현지에서 이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얼마 전 라싸에 있다 온 한 조선족으로부터 "중국군인이 일부러 폭력시위를 유발했음이 분명하고, 라싸 시민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오래 전부터 눈엣가시로 여겨온 티베트 독립 분자들을 색출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가 그물을 쳤고, 각본대로 그들 대부분은 잡혔다고 한다. 판결 이유도 밝히지 않고, 무기징역 등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는 뉴스 보도가 중국정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이번 티베트항쟁이 중국 정부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소수민족의 폭동을 유도한 뒤 그것을 진압함으로써 55개 소수민족에게 엄포를 놓고, 아울러 티베트 독립분자(?)들도 잡아들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려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이라면…, 이런 해석이 풍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중요한 판단 착오를 하였다. 라싸에서의 시위는 바로 진압이 되었지만 오히려 티베트 동북부 캄과 암도 지방(쓰촨성, 윈난성, 감숙성 등)으로 시위가 급속히 확대되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4월 집계한 바로 티베트에서 시위가 발생한 50여곳 가운데 80% 이상이 동부 유목지대였다.

이때부터 꼭꼭 숨겨놓았던 깃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3월 17일 청해성 시위 이때부터 꼭꼭 숨겨놓았던 깃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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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수 티베트인들과 달리 차별과 빈곤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은 시위가 벌어지지 마자 집안 깊숙이 감춰두었던 티베트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이번에 지진 진앙과 가까운 쓰촨성 아바현 등에서 일어난 시위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지역들은 한족화가 덜 진행된 곳이고 거주민의 다수가 티베트인이다. 여전히 시위가 재발할 개연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중국관영매체는 사태 초기 라싸에서 발생한 소수의 폭동 운운하면서 시위를 애써 축소하려 했지만, 이미 3월 중순 시위는 티베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 자치구의 간부들을 대거 해임하였다.

50여곳 이상에서 벌어진 시위의 양상 역시 대부분 라싸의 경우와 비슷하다. 중국 공안이 애국훈련에 항의하는 스님들을 잡아가면 동료 스님들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공안청을 항의방문하고, 그 스님들을 폭력진압하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목격되면서 시민이 가세해 시위가 확산된다.

시위대 규모가 늘자마자 군대를 투입하여 총을 쏘고 시위가 격해지고…. 이런 확대과정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과 2, 3일 사이에 이뤄졌다. 이런 유도된 폭동을 중국정부가 너무 순진해서 반복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것이 뻔한데도 티베트인들을 이런 상황으로 토끼 몰듯이 몰고갔다는 진단이 정확할 것이다.

군의 발포가 시위대를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3월 16일 촬영된 커티 사원의 희생자들 군의 발포가 시위대를 자극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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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들의 종교적인 정서를 건드린 것이 도화선

물론 이번 시위에는 여러 구조적 원인이 있다. 독립 혹은 자치라는 정치적 요구 외에도 경제적 차별, 인권침해, 종교를 비롯한 언어와 문화의 탄압 등 여러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1951년 중국의 강점 이후 계속된 것들이다. 한족화된 소수의 티베트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티베트인들이 받고있는 고통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것과 비슷하므로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크고 작은 저항은 지난 60년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처럼 대규모 항쟁이 벌어진 것은 60년 식민사를 통틀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리고 세 번 모두 대규모 항쟁으로 번진 데는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중국 정부가 티베트인들의 종교적인 정서를 건드린 것이 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1959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그 해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때 시위의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은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암살하려고 달라이 라마를 초대했다고 믿은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지키자'며 맨 손으로 총칼에 맞선 것이었다. 이때 라싸에서만 12만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89년 라사에서 10만이 봉기하던 때도 이유는 매우 종교적인 데서 촉발하였다. 티베트 본토에 남아 티베트인들을 이끌던 10대 판첸 라마가 51세로 갑자기 서거하자, 중국이 그를 암살했다고 생각한 스님 수 십명이 평화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올해 사태 확산과 마찬가지로 전민중적인 항쟁으로 발전했다. 중국 정부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사찰에 군대를 투입하여 엄청난 살인과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우연히 촬영된 중국군의 야만적인 진압 장면은 외부로 유출되어 세계인들의 공분을 샀다.

그렇다면, 티베트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시위대가 외치는 '프리티벳' 구호나 '설산사자기'만 보면 독립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 티베트인들 가운데 독립을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다. 본토의 티베트인들조차 대부분 달라이 라마의 '자치' 주장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위에서 티베트인들은 '인권 보호, 종교의 문화 자치'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 더. 시위 때마다 늘 앞서 등장하는 것이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결정된 2001년을 전후하여 티베트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난 수년간 티베트 망명정부 대표단이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 들어가 중국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거듭 양보의 뜻을 천명했다. "나라 운영은 모두 중국이 맡아라. 대신 티베트인들이 종교와 문화 쪽만 자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독립 포기라는 일부의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종교활동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자치활동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였지만, 중국은 결국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그것이 지난해 9월이다. 사실 중국정부는 애초부터 협상할 뜻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2년 전부터 사찰에 대한 애국훈련을 강화하는 등, 인권탄압과 감시를 더 강화해 대다수 티베트인들조차 협상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 제스처를 한 것에 불과함을 모르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달라이 라마가 귀국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던 티베트인들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했다. 중국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에 대한 분노, 이런 것들이 이번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진 주요한 하나의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애국훈련은 '문화 학살'

이렇게 티베트 내에서 벌어진 세 번의 대규모 항쟁은 대부분 그들이 존경하는 종교지도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최소한 티베트인들이 지구 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민족임을 아는 이라면 필자의 이러한 분석에 충분히 동의할 것이다. 지금도 대다수 티베트인들에게 종교는 삶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다. 한때 6백만 인구 가운데 60만명이 출가승려였을 정도로 티베트인들에게 출가는 가장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승려를 보물로 여기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그 정점에 '달라이 라마'가 있다.

중국 정부는 이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티베트, 특히 사찰에서 강압적으로 애국훈련을 행하고 있다. 애국훈련은 사찰에서 승려들을 모아놓고, 달라이 라마에 대한 비난을 돌아가며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바닥에 놓고 차례로 밟고 지나가게 하기도 한다.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믿는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지녔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것조차 마다 않는 티벳인들에게, 이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이다.

티베트를 여행하거나, 티베트인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중국 정부의 강압이 티베트인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걸 알면서 이런 정책을 일삼는 중국정부의 행태는 교활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를 거부하면 체포되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징역을 산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최근 수년 사이 이와 같은 애국훈련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런 소식을 듣고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에게 "나를 비난하고 사진을 밟고 다녀도 좋으니, 그것을 이유로 잡혀가거나 고통을 받지 마라"고 특별한 부탁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최근 달라이 라마가 중국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 학살'이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이유다.

어쨌든 이걸 중국 정부와 상당수 중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깟 비난 한마디하면 되고 사진 밟으면 되지, 달라이 라마가 밥을 주는가 떡을 주는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티베트인 입장에서는 이런식으로 중국의 식민통치가 악랄해질수록 더 달라이 라마에 의지한다. 그래서 시위마다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가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이다.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티베트 망명정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야만적 탄압으로 2008년 4월 말 현재 티베트인 최소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4천명 이상이 구금되었다. 애초 사원으로 피신했던 시위대는 사원에 난입하여 항의하는 승려들까지 잡아가는 중국경찰과 군대에 떠밀려 대부분 산악지대로 다시 몸을 피한 상태라고 한다. 얼마 전 산악지대에 피신한 시위대를 쫓던 한 티베트인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중국 경찰에 고용되었던, 우리식으로 말하면 매국노로 비난받던 그는 티베트인들 두 사람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언제든 무장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만큼 급박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이번 티베트인들의 시위는 중국정부의 주장처럼, 애초부터 과격한 폭동으로 기획된 것도 아니고, 달라이 라마의 사주를 받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진압, 특히 티베트인들이 존경하는 승려들을 매우 폭력적으로 탄압한 데서 촉발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피압박 식민지 민중이 처음부터 제국주의 국가의 경찰을 공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60년간 철저히 비폭력 독립운동을 고수해 온 티베트인들로서는 억울하고 기가 막힐 일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눈으로만 티베트를 바라보려 한다. 농노를 해방시킨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이도 적지 않고, 일제치하의 경험을 벌써 잊은 것인지 중국의 강압적인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며 손을 들어주는 이도 있다. 심지어 진보운동,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조차 미국의 적수가 될만한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티베트 문제에 손사래를 친다.

그들에게 역지사지를 권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60년간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이야기만을 들어보았을 뿐, 티베트 민중들의 고통과 주장을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 '라마교'라는 중국 정부의 말도 안되는 왜곡만 들었을 뿐, 티베트 불교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접해본 적도 없다.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 50년대 식민지 이전의 티베트가 노예와 같은 끔찍한 삶을 산 지옥과 같은 곳이었는지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의 말을 들어보아야 한다.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는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적 사고로 우리가 티베트인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우리 안의 정의와 양심을 외면하는 또 하나의 야만에 다름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이 기사는 티베트평화연대 정웅인 대변인의 글입니다. 그는 6월 10일 저녁 7시 30분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2008년 봄 티베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문의 02-336-5642 티베트평화연대 홈페이지 www.peacetibet.com



태그:#티베트, #달라이 라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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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항의하고 한국인들의 지원과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시민,평화,종교,인권단체등이 모여 3월25일에 결성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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