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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물질문명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개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다. 나보다는 남을  남보다는 소외된 이웃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 기자 주

 정택숙
정택숙 ⓒ 이민선

<한무리 나눔의 집>(경기도 군포시 당정동)에 도착했을 때 정택숙(42)씨는 돼지 저금통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난치병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정씨가 한무리 나눔의 집에 온 것은 지난 2006년, 난치병 어린이 돕기 운동본부에서 간사를 모집할 때다.

"2년 전에 난치병 어린이 돕기 운동본부에서 간사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요. 복지사업을 하고 싶어서 성결대(안양8동)에서 사회복지 공부하던 중 그 소식을 알게 됐죠. 그 전에는 안산 <동산교회>에서 다운 증후군(유전병 일종, '천사병'이라고도) 아이들 보살펴 주는 일을 했어요."

정씨가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돼지 저금통은 단순한 저금통이 아니다.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줄 희망이 깃들어 있는 저금통이다. 스티커를 붙인 저금통은 약국 병원 식당 등에 배포된다. 이 저금통이 다시 정씨에게 돌아올 때는 뜻있는 시민들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복돼지'로 변신되어 있다. 돼지 저금통에는 "우리 아이들 꿈을 키워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전화 오면 제가 직접 배달해 줍니다. 저금통에 동전이 가득차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발품 파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동전이 가득차면 저금통 들고 직접 찾아오는 분도 있어요. 돼지 저금통을 통해서 모금되는 돈은 1년에 약 300만원입니다"

정씨가 돌보고 있는 난치병 어린이는 103명이다. 운동본부에서는 이들에게 의료비와 생활 보조비 등을 지원해주고 자활을 돕기 위해 미술치료, 운동요법 등의 교육도 진행한다. 교육은 일주일에 두 번(토요일, 일요일) 진행한다.

"토요일에는 근육병 아이들을 위해 근육강화 훈련과 미술치료 등을 합니다. 금요일에는 발달장애, 희귀 난치병 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레크레이션 등 통합예술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구요."

돼지 저금통에 희망이 가득 "우리 아이들 꿈을 키워 주세요"

 난치병 어린이들
난치병 어린이들 ⓒ 이민선

난치병 종류는 발표된 것만 현재 115가지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근육병이다. 근육병은 근육이 굳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대부분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정씨가 돌보는 어린이도 대부분 근육병을 앓고 있다. 정씨는 두 아이가 모두  근육병에 걸려 누워있는데 엄마 혼자 돌보는 가정도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일하다 보면 정말 속상한 일이 많아요. 처음에는 남자들 욕도 많이  했어요. 난치병 환자 가정은 해체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아빠들이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엄마 혼자 발을 동동 구르죠. 정열(가명)이네가 대표적인 경우죠. 정열이 주열이(가명) 모두 중증 근육병이라 누워 있어요. 아빠는 지쳐서 그런지 오래전에 집 나갔고 지금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

근육병에 걸린 이후 '앉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누군가 곁에서 돌봐 줘야 한다. 하반신 근육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대·소변도 혼자서는 해결 하지 못한다.

"앉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굉장히 힘들어요. 대·소변 다 받아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해요. 누군가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이런 일 하는 사람은 '불쌍하다'는 말 하면 안되는데… 그래도 불쌍해요. 의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아직까지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이 서운해요."

정씨 마음을 가장 많이 아프게 하는 아이는 현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무균실에 누워있는 열네 살 소년 '진영(가명)'이다. 진영이 때문에 정씨는 요즘 잠을 편하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진영이는 생후 8개월부터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부모들이 할머니에게 핏덩이를 떠맡겼던 것.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가서 검사해본 결과 '혈액암' 말기 판정이 내려졌다. 또, 진영이 담당 의사는 '예후불량'이란 소견을 내놨다. '예후불명'은 치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진영이 아빠는 진영이 곁에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난치병 환자 둘, 혼자 돌보는 엄마, 가정 해체 대표적 사례

 난치병 어린이들
난치병 어린이들 ⓒ 이민선

인터뷰에 응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정씨는 한사코 마다했다. 이유는 이야기하다보면 자꾸 마음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정씨가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도 이것이다. 마음이 아파서 자기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는 점.

난치병 어린이 가정 부모들은 오랜 병수발에 지쳐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대할 때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때문에 정씨는 난치병 어린이 부모들을 상대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또, 해체된 가정을 보는 일도 힘겨운 일이다. 난치병 어린이가 있는 집은 오랜 병수발 때문에 집안이 거덜 난 경우가 많다.

"부모들 상대하다가 가끔 저도 상처 받아요. 지쳐서 그런지 퉁명스럽기 그지없죠. 여기 오 기 전에는 해체된 가정을 별로 보지 못했어요. 난치병 아이 있는 집은 가정이 해체된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남자들이 견디지 못하죠. 도박에 빠진 분도 있고, 가족 내팽개치고 집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는 이런 사정을 이해할 수 없어서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도 적응은 했지만 속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고… 이런 이야기 하다보면 자꾸 우울해져서…."

난치병 아이들에는 현재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등급에 따라 일정 정도 지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그럭저럭' 맘에 든다고 정씨는 말한다. 하지만 난치병 아이들에게는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료 공부방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아이들이 학교 공부 못 따라가거든요. 그렇다고 사교육비 들여서 가르칠 수도 없고.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줄 프로그램도 공부방에서 해야 합니다. 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에 처음 오는 아이들은 서로 말도 안해요. 물론 저에게도 마음을 쉽사리 열지 않고요. 1년 정도는 지나야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 합니다."

아이들 마음 다독여 줄 프로그램 필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왜 인터뷰를 거절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정택숙씨 감정 상태에 따라 나 또한 감정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우울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듣고 있는 사람 기분이 이 정도니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죽했겠는가!

난치병은 아무리 잘 치료해도 낫기가 힘든 병이다. 그래서 쉽게 절망할 수밖에 없다. 난치병 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환자가 절망할 때 함께 절망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택숙씨는 이것을 가장 힘들어 했다. 난치병 어린이와 부모들이 아무리 절망해도 절대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인터뷰를 마치면서 물었다. 정택숙씨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힘들 때도 많지만 아이들 눈망울 보면 피로가 싹 가셔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힘들다고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제 욕심은 몸이 굳어가는 아이들 잘 보살펴서 고통 덜어주고 세상 몇 년이라도 더 보게 하는 것이에요."

천사(난치병 어린이들)들을 지키고 있는 '천사' 정택숙씨에게서 우리시대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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