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일 의원총회를 통해 농림수산식품부 '쇠고기 고시'의 관보 게재를 연기해달라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행정안전부는 농림부의 요청에 따라 이미 쇠고기 고시를 포함한 관보 3250부의 인쇄를 마무리한 상태인데, 3일로 예정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 방침이 철회될지 주목된다.
임태희 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당 의원들의 연기 요청이 많자 정운천 농림수산부 장관에게 이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3시간 가량 이어진 의총에서 재협상 불가피론과 관보 게재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뤄 이같은 요청을 했다는 얘기다.
재선의 공성진 의원(서울 강남을)은 의총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재협상이 국제 관례에 어긋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국제간의 신의 문제보다 정권과 국민들 간의 신뢰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선의 윤상현 의원(인천 남구을)도 "이런 식으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해도 미국 축산업자에게도 득될 게 없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말했고, 이명박 직계로 분류되는 정태근 의원(서울 성북갑)도 "당에서 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서라도 현실을 설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쇠고기 정국 정면돌파 요구 목소리도
그러나 쇠고기 문제의 정면 돌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서울 노원갑의 현경병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나부터 우리 가족에게 먹이겠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자는 당 차원의 결의문을 채택할 필요도 있다"고 말해 동료 의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재선의 권경석 의원(경남 창원갑)도 "농림부가 관보 게재를 이미 요청했는데 어떻게 되돌리겠나? 나는 지난번 농림부 발표로 보완책이 충분히 마련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므로 보다 포괄적인 국정쇄신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봇물 터지듯 나왔다.
초선의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을)은 당·정이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소통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옛날처럼 수직적 구조의 관점에서 촛불문화제를 지켜본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시국수습방안이 나오겠나? 장관 몇 명 교체가 아니라 신뢰 회복을 위해 국민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대운하나 공기업 민영화를 섣부르게 추진해서 지금의 위기를 넘기려는 시도를 해서도 안 된다."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도 "삼성이 비자금 특검 받은 후에 국민들의 요구수준보다 높은 쇄신안을 내니 그런대로 수긍해주지 않았느냐?"며 "이런 식으로 국민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70~80년대 학생운동 출신 의원들도 여권의 고루한 인식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3선의 원희룡 의원(서울 양천갑)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붉은 악마 수준의 시민·학생·주부들인데 이를 강제진압하면 수습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5공식 발상"이라고 지적했고, 초선의 김성식 의원(서울 관악갑)도 "국민들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위기정국의 본질"이라며 "효율만 따지면 사회적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초선의 강석호 의원(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도 "여당이 옛날처럼 예스맨 식으로 나가면 안된다. 대통령이 혹시나 착각하는 게 있다면 우리가 그런 인식을 직접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쓴소리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적 청산을 통한 국정쇄신론이 대두됐다.
4선의 남경필 의원(경기 수원팔달)은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포함한 광폭의 인사쇄신을 주장했고, 초선의 김효재 의원(서울 성북을)은 "정치적 상상력이 부족하니 한계를 넘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며 "한나라당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등용하는 인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총에서 "촛불시위를 즐기는 세력들을 엄단해야 한다"는 '공안파'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초선의 김동성 의원(서울 성동을)의 얘기다.
"촛불시위의 의도와 본질을 파악해야 된다. 내가 시위 현장에 가서 유인물들을 봤는데 '이명박 아웃', '독재 타도'라고 적혀있더라. 이런 걸 뿌린 집단이 반정부투쟁 기구처럼 움직이는데, 이런 사람들과 국민들을 분리시켜야 한다."
김영우 의원(경기 연천·포천)도 "진실한 마음으로 시위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상황을 정권 공격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다"며 양자의 분리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한 참석자는 "비공개로 회의를 하니 초선의원들이 의외로 낡은 사고방식을 표출하더라. 당이 민심을 제대로 받아안지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인사쇄신의 경우 의원들의 요구가 100% 관철되도록 청와대에 전달하겠다. 강도 높은 고유가 대책도 세우겠다"며 3시간의 의총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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