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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옛집 - 고건축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책은 우리 나라에서 여러 가지로 옮겨졌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다기보다, 얼마만큼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번역이 나오곤 합니다.

 ┌ 바야흐로 행해지려고 하는 동양고건축의 무익한 파괴에 대해서..   (1974)
 └ 바야흐로 행해지려고 하는 동양 옛 건축의 무익한 파괴에 대해서.. (1989)

1989년에 옮겨진 책을 읽다가 ‘옛 건축’이라는 말이 보일 때 잠깐 책을 덮습니다. 그러고는 1974년에 옮겨진 책을 뒤적여 봅니다. 1974년에 옮겨진 책에는 ‘고건축’이라고 적힙니다.

 ┌ 고건축(古建築) : 옛 시대의 건축. 또는 오래된 건축
 │
 ├ 옛건축
 └ 옛집

오래된 책이나 낡은 책, 예전에 나온 책을 가리켜 흔히 ‘헌책’이라고 하지만, ‘고서(高書)’라고 하는 분도 제법 됩니다.

 ┌ 옛 + (무엇)
 ├ 헌 + (무엇)
 │
 └ 고(古) + (무엇)

퍽 오래되었으면 ‘옛-’을 붙이거나 ‘오랜-/오래된-’을 붙이면 됩니다. ‘옛집’, ‘옛옷’, ‘옛말’, ‘옛사람’, ‘옛책’, ‘옛일’처럼.

‘고가/고옥/고건축’, ‘고의’, ‘고어’, ‘고인/고대인’, ‘고서’, ‘고사’처럼 말하고픈 분도 틀림없이 있을 텐데, 우리들이 두루 쓰기에 한결 나은 말은 어느 쪽일까요. 우리들은 앞으로 어느 쪽 말로 우리 삶을 담아내고 간직하고 보듬으면 한결 나을까요.

ㄴ. ㅅㄱㅇ대학

대학교 학벌을 말하는 자리에서 으레 ‘하늘’을 이야기합니다. 미국말로 하면 ‘스카이(sky)’인데, 우리 말로 하면 하늘입니다.

 ― 서고연 / 고연서 / 연고서

‘하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알파벳으로 ‘s’, ‘k’, ‘y’를 따서 ‘스카이’라 하지 말고, 한글 닿소리 ‘서’, ‘고’, ‘연’을 따서 ‘서고연’으로 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 그러던 내가 고1이 되면서부터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하게 되었어요. 문제는 ‘대학’이라는 것에서 발단되었지요. ㅅ대학, ㄱ대학, ㅇ대학 아니면 안 보내겠다고 주장하시는 부모님과 거기에 가기에는 너무 미흡한 내 성적 사이에서 야기되는 갈등 ..

<홀로 앓는 풀잎들의 이야기>(남녘,1989)라는 책에 실린 어느 고등학생 편지를 읽다가 “ㅅ대학, ㄱ대학, ㅇ대학”이라는 말을 봅니다. 옳거니, 그렇구나, 알파벳으로 말하고 글쓰는 사람들한테는 자연스럽게 ‘sky’가 되겠지만, 한글로 글을 쓰는 한국사람들한테는 ‘ㅅㄱㅇ’이 되겠다고.

 ┌ ㅅㄱㅇ대학
 ├ ㄱㅇㅅ대학
 └ ㅇㄱㅅ대학

경희대학교도 ‘ㄱ대학’입니다. 단국대학교는 ‘ㄷ대학’입니다. 인하대학교도 ‘ㅇ대학’입니다. 제주대학교는 ‘ㅈ대학’입니다. 호서대학교는 ‘ㅎ대학’입니다. 경북대학교도 ‘ㄱ대학’입니다.

 ┌ SKKU
 └ ㅅㄱㄱㄷ

성균관대학교에서 만든 옷이나 가방을 보면 ‘skku’라고 새깁니다. 한글로 ‘ㅅㄱㄱㄷ’이라고 새긴 모습은 본 일이 없습니다. 다른 대학교에서도, 학교이름을 새긴 옷이나 가방을 만들면서, 또 학교무늬를 찍으면서, 또 기념품 들을 만들면서 오로지 알파벳 머리글자만을 따고 있습니다.

한글 머리글자를 따서 쓰기보다는 알파벳 머리글자를 따서 쓸 때가 한결 멋들어지고 더 ‘있어’ 보인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태껏 한글 머리글자를 따서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기 이름을 적는 자리에서도 알파벳으로 ‘C.J.G.’라고 적지, 한글로 ‘ㅊ.ㅈ.ㄱ.’처럼 적는 일이란 몹시 드뭅니다.

문학을 하는 분도, 사진을 하는 분도, 그림을 하는 분도, 노래를 하는 분도, 한결같이 알파벳 사랑으로만 나아갑니다.

 ┌ 하늘 / 스카이 / sky (x)
 └ 서고연 / ㅅㄱㅇ (o)

생각해 보니, ‘하늘’이라고 해 보았자, 알파벳으로 적은 ‘sky’를 우리 말로 뜻풀이만 한 셈입니다. 제멋이나 제맛이 없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한다는 대학교로 이 세 군데만 있을까 싶고, 또 나라안에서 내로라한다는 값이나 뜻이 무엇인가도 헤아릴 일입니다만, 꼭 이 세 대학교 이름을 따서 밝혀야 하는 자리라 한다면, 어떤 말을 어떻게 지어서 써야 한결 나을까, 한결 돋보일까, 한결 걸맞을까, 한결 알뜰할까 하는 대목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살려쓰기#우리말#우리 말#토박이말#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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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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