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출범 100일을 맞은 6월 3일, 정운천 농림식품수산부 장관이 국민 앞에 섰다. 핵심은 "30개월 이상 된 미국소의 수출을 하지 말도록 미국에 요청 하겠다"는 거였다. 전면재협상을 요구했던 국민들의 반응은 '지금 장난하고 있나'이다.
다른 수많은 독소조항들은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미국 측이 30개월 이상인지 이하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과학성 없는 '치아감별법'이라는 것은 차치해 두자.
굴욕협상 때문에, 30개월 미만 중 2006년까지는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으로 분류됐던 뇌·눈·척수·머리뼈도 수입해야 한다. 수출용 소의 도축도 전에는 한국이 승인한 31곳에 국한됐지만, 이제는 미국의 800여개 작업장에서 이뤄진다.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SRM 발견 시에도 우리 측에 의한 전수조사는 이뤄질 수 없다. 미국 측에 의해 '대표성 있는 표본'에만 국한된다.
국민들이 전면 재협상을 요구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협상이 통째로 부실협상, 굴욕협상이었기 때문이다.
정운천 장관은 이 발표를 단 3분 만에 마쳤다. 기자들의 질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을 반성하고 있다더니 전혀 그런 자세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독자가 댓글에 달았듯이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런 미봉책으로는 이 정권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힘들다.
촛불의 노래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들어라출범 100일 만인 이명박 정권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토요일(5월31일) 밤 10만의 촛불이 청와대를 W형으로 포위했다. 그들은 합창했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또 외쳐댔다. "이명박 나와라, 이명박 나와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있는 청와대로 향하는 앞길이 성난 시민들에 의해 장악된 것은 4.19 이후 처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순간 무얼 생각하고 있었을까? 안국동 쪽 언덕길에서 효자동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50대 시민은 말했다. "참 아름답네, 장관이네…." 국민의 80% 정도가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니 "물러가라"는 그 한밤의 외침도 그 시민의 눈에는 "아름답게"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현 상황은 대통령으로서의 '통치행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수준이다. 여중학생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최대 치적이라는 '다시 만든 청계천'의 광장에 모여 "명박아, 물러가라"고 외치던 5월초부터 이미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민심 속의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는 식물인간이 되었다.
해법이 뭘까? 청와대 수석들이 연일 '근본적 해법'을 찾느라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직접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했다고 하니 처방이 궁금하다.
국민의 요구는 간결하다. 토요일, 청와대를 포위한 촛불들은 노래 <헌법1조>를 합창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 촛불이 요구하는 것의 핵심이다.
이러한 요구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적 있는 '머슴 정부론'과 일치한다. 그런데 촛불들은 미국수입소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주인이 되고 국민이 머슴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이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주인들이 촛불이 되어 일어났다. 진짜 주인은 어떻게 해서 그런 졸속협상, 굴욕협상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어 한다, 전면 재협상을 원한다.
무엇보다 촛불들은 '내가 진짜 주인'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비단 미국 쇠고기 협상에서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 100일 동안 있었던 '국민이 무시된 즉흥 정책'들을 보면서 '주인은 나'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이 이 나라의 주인인가, 우리 국민이 주인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이 진짜 주인들의 성난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면, 남은 1700여일을 계속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30개월 이상 미국 소 수입 금지만으로는 턱도 없다. 소고기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초중고생들에게까지 조롱대상이 되는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경제가 안정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식물대통령의 장기화는 피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정치적 생존을 위한다면, 모든 것을 걸고 미국 쇠고기에 대한 전면 재협상 선언을 시작으로 하여, '전면 재탄생'을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면 재탄생을 위한 7가지 제언그렇다면 무엇이 전면 재탄생의 전제조건인가? 다음 일곱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① 굴욕협상·졸속협상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가감 없이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특히 4월18일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까지 서둘러 협상을 종결할 것을 대통령이 지시했는지, 최종 협상타결 전의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에서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소상히 스스로 밝혀야 한다.
② 미국 쇠고기 문제에 대해 전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 협상 팀을 완전히 새로 바꾸고 협상안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내놓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필요하면 국민대책회의가 추천하는 협상전문가들을 '특별채용' 형식으로 협상팀에 넣거나 아니면 '영향력 있는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③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 모든 장관과 수석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새 진용을 짤 때 '고소영' '강부자'에 해당되는 이들을 제외하고, 보수에서 진보까지 폭넓게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
④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 어설픈 실용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의 추진을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실용이, 철저히 준비되지 않는 실용이, 단기간의 성과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이번 미국 쇠고기 협상에서 여실히 체험하지 않았는가?
⑤ 지금까지의 여론장악정책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이명박 캠프 출신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구본홍 YTN 사장 내정자를 그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게 해야 한다. KBS 정연주 사장의 사퇴압력도 중단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이번 촛불정국에서 조중동 등 전통적 보수언론에 기대어 여론을 장악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지금은 시민 모두가 미디어인 시대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조중동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미디어가 된 국민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
⑥ 촛불 강제진압과 관련된 어청수 청장 등 경찰 책임자를 모두 파면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가 선행된다면, 가장 중요한 일곱 번째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전면 재탄생'의 핵심이다.
⑦ 촛불의 힘을 대한민국의 힘, 이명박 대통령의 힘으로 활용해야 한다.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한 외신에 의해 '한국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힘'의 상징에 포함됐다. 그때 외신은 서울시장 이명박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등으로 대표되는 '행동하는 네티즌'을 나란히 소개하면서 '한국을 이끄는 긍정적 에너지'로 묘사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이 '행동하는 네티즌'과 등을 지고 있다. 그들은 촛불이 되어 거리로 나왔고, 이명박의 청와대를 포위하기도 한다.
이명박, 10대 촛불세대가 주도한 5·6촛불항쟁 에너지 흡수해야5월초부터 6월로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는 촛불에 이름을 붙인다면 5·6촛불항쟁이 될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몸부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80년 5월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5·6촛불항쟁을 초기에 주도한 10대들은 촛불세대라 부를만하다. 보수 세력은 물론 386세대와 기존 진보 운동권들까지 '경악'하게 만든 이 촛불세대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그 굴욕적인, 그 졸속적인 쇠고기 협상안에 따라 수입된 미국소를 먹고 있을 것이다. 촛불세대는 촛불문화제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계획과 무계획이, 다양성과 연대성이, 창의성과 집중성이, 오락성과 투쟁성이 어떻게 생산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대한민국은 촛불세대를 우리의 보배로 보듬어야 한다. 촛불세대는 가녀린 촛불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촛불세대는 '검증되지 않은 실용주의'라는 어두운 터널을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국민들을 자각시켰다. '세상이 이 방향으로 가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신자유주의 터널로 이끌려가려는 386세대 등 진보세력에게도 다시 뒤를 돌아보게 했다. 토플 책에 고개를 파묻고 '나의 길'을 찾는데 매몰돼 있던 대학생들에게 '우리의 길'을 생각하게 했다.
5,6월 촛불항쟁은 10대 촛불세대가 주도 되어 다시 한 번 우리사회의 에너지를 분출시킨 민주주의의 축제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에너지를 대한민국의 힘으로 만드는 일을 적극적으로 할 때 그의 '전면 재탄생'의 길은 열릴 것이다.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들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그렇게 말했다고 <조선>이 보도한 적 있다. 촛불들이 다 알고 있는 그 답을 이 대통령이 스스로 찾을 수 있을 때, 촛불들과 진심어린 포옹을 할 때, 대통령의 '전면 재탄생'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