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행된 지난 일요일 새벽(6월1일), 스크럼을 짠 시민들 앞으로 거대한 살수차가 몇 대나 서 있었다. 경찰은 불법시위를 중단하라며 계속해서 해산 권고를 했다. 나도 시민들 사이에서 언제 쏟아질지 모를 물폭탄을 기다리며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서 있었다.
사실 앞에 나가 물대포를 맞을 생각은 없었다. 거대한 살수차로부터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생각보다 거세서 '악'소리가 절로 나왔고, 초여름이지만 새벽에 맞는 물은 너무도 차가웠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무서웠다.
다만, 뒤에 있는 시민들이 나오지 않으면 앞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을 맞게 되니까, 그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앞으로 나갔다. 물론 최전선은 아니었지만.
물대포를 기다리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양복 입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도 나도 씩 웃어보였다. "그냥 빨리 쐈으면 좋겠어요. 무서워요"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뭐, 계속 맞다보면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하다니 신기했다.
잠시 후, 몸이 흠뻑 젖어 있는데 역시나 물폭탄 세례를 맞은 친구를 부축해 가는 어떤 사람이 내게 커다란 점퍼를 건네주었다. 내가 추워 보였나보다. 놀라긴 했지만 정말로 추웠기에 감사하다 말하고 급히 점퍼를 입었다. 그 후에도 살수는 계속되었다.
'나만 나간다고 뭐 달라지나'... 행동하지 못하는 '관성'에 걸리다
어릴 때부터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내가 대학생이 되면 소위 '운동권'이 될 줄 알았다. 커다란 깃발 아래 시위현장에 참석하고, 투쟁하고, 그러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내가 꿈꾸던 '대학생'은 거대권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와 같은 존재였다.
허나, 현실은 달랐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학만 졸업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과 운동권은 대학생 중에서도 아주 소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잘 살 수 있는 건 일부일 뿐,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그 일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래서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행동하는 동안 누군가는 토익공부를 하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지도 모른다는 '죄수의 딜레마'는 늘 나를 옭아맸다. '내가 행동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행동하지 못하는 건 '관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촛불시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하나 나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어차피 정부가 힘없는 국민들의 말을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내 자신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촛불의 불길이 점점 더 거세지면서 시민들이 하나 둘 연행되고, 부상당하는 걸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패배주의자' 대학생, 촛불 통해 '참여와 연대'배우다
몇 번의 시위를 다녀 온 후, 나는 희망을 보고 있다. 이제는 '나만 가면 뭐해. 남들은 안 가는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나도 가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위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인터넷 생중계를 챙겨보며 마음으로 응원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 행진을 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김밥과 물을 건네받고, 물대포에 맞아 추워하는 시민들을 위해 신문과 박스로 불을 피우며 '평화시장에 가서 모포를 사와야 겠다'는 사람을 만난 경험은 나를 '이타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이래봤자 달라질 것 없다'는 생각도 바뀌고 있다. 6월3일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관보게재를 전격유보하고 미국 정부에 미 수출업자들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출자율규제를 요청했다. 한 달여간의 촛불시위 후 정부가 '국민들의 힘'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위해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말이다.
10대들이 촛불시위를 시작했을 때, 시위현장에 보이지 않았던 대학생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10대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는 동안, 학교축제에 온 원더걸스를 보러 간 대학생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저조한 투표율과 함께 '개념 없는 집단', '희망이 없는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사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20대들은 행동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관철시켜본 경험도 없고, '무한경쟁'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야만 했다. '참여'가 무엇인지 '연대'가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 남을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내가 밟혀야 했다.
그런데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패배주의와 냉소가 어느덧 관성이 되어버린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인 나는 이제서야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학점과 취업에만 관심 있던 대학생들이 광장으로 나가고, 동맹휴업을 결의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신문광고를 내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대학생들은 머리가 아닌 몸이 움직이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촛불'이 고맙다. 몸에 아로새겨진 '참여와 연대'의 경험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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