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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 장면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 장면 ⓒ 김영조

 

서울시의 수돗물인 '아리수'가 중국 지진 피해 지역에 지원됐다고 한다. 서울시는 6월 5일 지진으로 식수난을 겪는 중국 쓰촨성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500㎖짜리 아리수 10만 병을 보냈다. 서울시가 이렇게 수돗물의 이름으로 쓰는 '아리수'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에서 나온 국어사전에서 보면 "아리수(阿利水) : '한강(漢江)'의 옛 이름"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에 광개토대왕이 '아리수'를 건너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왕이 남녀노예 1천 명과 가는 삼베 옷 1천 필을 바치고 영원히 신하가 되어 고구려를 섬기겠다'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서 아리수는 순 우리말이며, 한강의 옛 이름으로 보는 것이 학계 중론이다"라고 말한다.

 

단재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옛날에는 강을 끼지 않고선 나라가 발전할 수 없었기에 '강 = 나라'를 의미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오백 년 역사의 서울인 한양 가운데를 흐르던 한강 곧 아리수는 우리 겨레의 정체성이요, 젖줄이라고들 한다.

 

지난 6월 4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세종M씨어터(구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왜 영어이름으로 바꿨을까?)에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단장 박상진, 이하 악단) 제294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 기념공연인데 국악 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이란 제목을 달았다.

 

무용부분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의 무용부분
무용부분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의 무용부분 ⓒ 김영조

 

칸타타(cantata)는 독창·중창·합창과 기악 반주로 이루어지는 짧은 오라토리오(oratorio, 오페라 요소를 가미한 종교적 악극) 형식의 성악곡인데 제목에 '아리수'가 붙은 까닭이 무엇일까? 서울을 소재로 한 공연 콘텐츠 개발과 확산에 노력하는 악단의 이번 작품은 한강을 그 소재로 삼았다. 악단은 말한다.

 

"한강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강으로서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품고 흘러왔다. 또 한강은 수도 서울의 중심부를 관통하며 서울의 발전과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에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은 한강이 가진 상징성을 음악으로 담아내고자 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모티브는 지난해 서울시립예술단이 국악당 개관 기념으로 공연한 바 있는 '그림 손님'으로 하였다.

 

'그림 손님'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를 그리는 과정과 평생 친구인 사천(김삿갓)과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 영상소리극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악 칸타타에서는 그 이야기 중 한강을 중심으로 줄거리만을 선택하여 재구성하였으며, 한강의 역사성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담아내려고 이근배 시인의 '한강은 솟아오른다'라는 시를 일부 빌려 가사에 반영하였다."

 

이병욱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작곡자 이병욱
이병욱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작곡자 이병욱 ⓒ 김영조

여기에 작곡자 이병욱은 "이제 한강이 새롭게 생명과 환경의 강으로 재탄생하고 있음을 음악에 담으려 했다. 또 음악과 영상과 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메마른 현대인의 정서회복을 위해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마음으로 작곡했다"고 말한다.

 

또 연출자 최현묵은 선입감과 고정관념은 나쁜 것인데 그 나쁜 선입감과 고정관념이 국악에도 있다면서 "아름다운 우리들의 장단과 선율, 그리고 만나서 반가운 사람들, 그리고 의미 있는 소재와 이야기들… 진정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나는 말할 수 있다. '참 아름다워라, 국악의 세계는…"이라고 연출의 변을 푼다.

 

공연을 시작하자 먼저 한강을 통해 바라본 역사의 의미와 밝고 힘찬 내일에 대한 희망을 묘사하는 관현악 서곡이 울려 퍼지고, 서울시립합창단의 "밝아온 새 아침 눈부신 얼굴이여 / 바람 어둠 씻고 솟아오른 역사일레 / 한겨레 이어온 핏줄 한강은 더욱 푸르다 / 두둥실 사랑 싣고 한강 흐른다”라는 이근배 시인의 시 '한강의 노래' 합창이 무대를 꽉 채운다.

 

합창이 끝난 뒤 영조임금이 나타나 "겸재가 나이 들었으니 더 늦기 전에 한양의 풍광을 두루 그리도록 하는 게 좋겠다. 물산 풍부하고 업무 한가로운 곳에 현령으로 보내자"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겸재가 한강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겸재의 노래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에서 겸재가 노래를 하고 있다.
겸재의 노래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에서 겸재가 노래를 하고 있다. ⓒ 김영조

 

이어서 구수한 바리톤 목소리로 메나리조 동살풀이 장단의 여유로움을 사천 김삿갓이 서정적으로 노래한다. 그러자 칸타타의 주역 겸재 정선이 시와 그림의 세계를 상호교감의 경지에 견주어 힘차고 청아한 테너 목소리로 표현한다. 그리곤 남성 4중창의 "아침이 열린다"가 불리고 동아와 여성 합창으로 '한강은 여자' 노래가 흥겹다.

 

"한강은 여자 / 넉넉한 여자 / 성내는 여자 / 때로는 외로워하는 여자 / 남자는 경치나 읊지 한강을 몰라 / 남자는 고기나 잡지 한강을 몰라 / 계절마다 날마다 변하는 한강 / 우리네 마음처럼 변하는 한강"

 

맛깔스러운 여성합창단의 합창에서 과연 한강은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넉넉하기도 하고 가끔은 성도 내며, 때로는 외로워하는 그런 한강이어라. 정말 남자는 고기만 잡을 줄밖에 모를까?

 

동아의 노래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 중 동아가 노래를 하고 있다.
동아의 노래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 중 동아가 노래를 하고 있다. ⓒ 김영조

 

이후 공연은 무용과 국악 그리고 노래의 향연이 어우러진다. 무대를 꽉 채우는 연출에 청중은 숨을 죽인다. 시작한 뒤 끝을 가늠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이어짐이다.

 

마지막에 겸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강은 다시 태어났다. 생채기를 주고 마구 더럽히던 그 아들과 딸들의 손으로 맑고 환한 피가 뛰는 숨결을 살려냈다. 바다로 몰려나갔던 물고기 떼가 돌아오고, 제 고향으로 날아갔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뗏목이 흘러오던 그 물이랑에 오늘 한가로운 (번영의 배가) 떴다."

 

이번 공연은 국악 장단과 국악기의 맛깔스러운 음색에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한마당이었다. 예전에도 간간이 국악과 벨칸토 창법 성악이 같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국악관현악단과 합창, 중창, 독창은 물론 무용과 극이 함께하는 본격적인 시도는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청중을 사로잡을 만큼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지 않았을까?

 

박상진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을 지휘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박상진 단장
박상진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을 지휘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박상진 단장 ⓒ 김영조

 

이날 청중으로 자리를 한 'EBM열린포럼' 전병화 사무국장은 "공연 시작 전 지휘자가 노랑․빨강․파랑이 합쳐지면 검정이 되는데 이 검정 곧 묵에는 우리 선조의 원색 삶이 내포되어있다며 겸재 정선과 진경에 대한 뜻풀이를 해줘 연주 내내 한강의 진수가 와 닿게 해주었다. 다른 공연에 견주면 오히려 짧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공연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같이 연주를 들은 한 분은 그림을 하는 분이었는데 공연 내내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했고, 또 다른 한 분은 그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대단한 격조가 느껴졌다는 평을 해주었다. 청중에게 입체감을 주려 노력하고 국악과 양악을 하나로 모으는 새로운 시도는 크게 손뼉을 쳐주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휘를 마친 악단 박상진 단장의 말도 들어보았다. 그는 "기막힌 곡을 작곡해 준 이병욱 교수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의 작은 노력으로 국악과 서양음악의 하나 됨이 또 한 번 새롭게 이루어지고 동시에 한강의 의미를 모두가 되새긴 좋은 기회가 된듯하다. 국악과 벨칸토 창법의 만남은 아직 시작 단계여서 많이 모자랐겠지만 같이 해준 모든 분들 특히 청중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공연 소감을 말했다.

 

태평소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에서 한 연주자가 태평소를 불고 있다.
태평소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에서 한 연주자가 태평소를 불고 있다. ⓒ 김영조

 

이날 출연은 겸재 역에 서울시립합창단원 테너 한상희, 동아 역에 서울시립합창단원 정주연, 사천 역에 서울시립합창단원 바리톤 권상원, 관리 역에 서울시립합창단원 베이스 최병광, 기생 역에 서울시립합창단원 앨토 남혜덕, 무용솔로 서울시립무용단원 박현민, 영조 역에 서울시극단원 김신기가 열창, 열연했다.

 

예술감독과 지휘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박상진 단장이 맡았고, 작곡은 서원대학교 음악교육과 이병욱 교수, 대본․연출은 대구가톨릭대 무용공연학과 최현묵 교수, 안무는 서울시무용단 임이조 단장이 맡았다. 연주에는 서울시립합창단, 서울시립무용단. 서울시극단이 함께 하여 무대가 무척 좁아 보였다.

 

이 공연은 63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좁은 자리가 꽉 차 객석에 앉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이 많았다. 악단이 많은 사람과 함께 온갖 정성을 다해 마련한 귀중한 공연인데 대극장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이웃 세종대극장에선 '세계발레스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물론 세계최고의 발레스타들을 한 자리에 초청하여 국내에 선보이고 발레의 진수를 국내 팬들에게 선사하는 특별한 기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악이 서양 문화보다 푸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아리수 진경 연주 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에서 연주를 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아리수 진경 연주국악칸타타 “2008 아리수 진경” 공연에서 연주를 하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 김영조

 

이 공연에도 나는 여전히 옥에 티를 잡아본다. 먼저 공연 전 지휘자의 설명엔 분명한 철학이 담겨 있음은 물론 공연의 성격이 잘 드러나 훌륭했지만 진경과 아리수와의 관계, 그리고 현대에 던지는 의미가 덧붙여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나친 욕심일까? 그리고 색깔이 있는 막에 영상을 비추어 뚜렷한 영상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이었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칭찬받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특히 벨칸토 창법을 국악 장단과 국악기의 맛깔스러운 음색에 화학적 융합이 되도록 한 작곡은 기막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국악을 양악에 접목하려 노력해온 이병욱 교수만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어느 청중도 악단과 지휘자를 비롯한 합창단, 무용단, 극단 그리고 작곡자, 연출자가 모두 하나가 되었음을 인정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술이 옛것에 안주한다면 발전이란 없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옛것에 바탕을 둔 새로움의 시도 곧 '법고창신'은 절대 필요한 발전의 조건일 텐데 이 공연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음이며, 박상진 단장의 철학이 반영된 역작이었다.

 

공연은 칸타타가 가지는 웅장함과 장엄함을 잘 드러냈으며 마지막 절정을 충분히 극대화했고, 중간마다 다양한 곡의 구성을 시도한 것과 무용을 위한 춤곡풍의 합창을 삽입한 것도 청중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이제 우리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크게 손뼉을 쳐주고 사랑을 쏟아주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리수 진경#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국악칸타타#박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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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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