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오월 초닷새를 단오(端午) 또는 수릿날이라 한다. 일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때이다. 조상들은 이날부터 건강관리와 질병 예방을 위해 수리 취나 쑥떡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창포의 독특한 향과 색깔로 사악한 귀신이 몸에 붙지 않도록 액막이 행사를 했다.
단오 날, 여자들은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아 기름기를 빼 윤기를 내고, 창포 향 내움으론 벼룩과 이 같은 벌레를 퇴치했다. 또 창포 뿌리에 붉은 글씨로 '수복'(壽福) 두 글자를 새겨 머리에 꽂고, 남자는 허리에 차고 다녔다.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한다. 붉은 색은 벌레 퇴치뿐 아니라, 귀신을 쫓고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되기도 했다. 창포로 염색을 해 베옷이나 책에 좀이 스는 것을 방지했으니, 별난 향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단오 날엔 창포연못을 찾아간다. 6월 청자 빛 하늘 아래, 창포 잎들이 연못 가득 차올라 감미로운 첫 여름을 열고 있다. 창포 잎들은 벼 포기와 비슷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긴 칼을 닮은 모습이기도 하다. 창포는 부들과 비슷한 수생식물로 천남성과이다. 이맘 때 작은 옥수수 모양의 갈색 꽃이 핀다.
창포가 연못 가득 차오르면 못가에 앉아 창포 향을 맡다가 하늘을 보고, 먼먼 산골짝을 넘어오는 꿩 소리를 들으며 노천명의 ‘푸른 오월’을 읽는다.
청자(靑磁)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당 창포잎에-여인네 행주치마에-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풀 냄새가 물큰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활나물 홋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노천명 <푸른 오월 1-3연>중에서
연못 창포 속에서 추억을 반추하다가 창포비녀(이를 ‘궁갱’이라 한다)나 만들어 볼 양으로 삽과 괭이를 들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연못 깊이가 겉에서 볼 때완 사뭇 다르다. 물이 허리께까지 차올라 배꼽이 시려오고, 발을 헛디디면 미끄러져 목까지 차온다.
뿌리들마다 잔털이 진흙에 찰싹 달라붙어 뽑힐 줄 모른다. 흙탕물 속에 풍덩거리고 미끄러지며 뿌리를 잡아당겨도 툭툭 끊겨 단단히 애를 먹인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쓸 만한 뿌리 하나를 건져냈다.
뿌리를 맑은 물에 씻어 비녀를 깎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재주와 눈썰미가 모자라 모양새가 제대로 잡히질 않는다. 뿌리 돌기둘레를 따라 총천연색 줄무늬가 색색이다. 비녀 위로 알록달록한 띠가 배어나 몸을 비틀고 있다.
뿌리에 감돌고 있는 무늬들을 어찌 알고 비녀와 노리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조상들이 찾아낸 멋에 새삼 놀랄 뿐이다. 이 정도 색상의 비녀라면 어느 아녀자의 쪽진 머리에 꼽아놓아도 품위와 맵시가 솟아나올 듯싶다.
비녀마저 사라진 지 오랜 지금, 창포비녀를 만들어 놓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단오날 아침, 치렁치렁한 머리 결을 창포 물감에 헹궈낸, 쪽진 머리에 비녀를 살포시 꼽은, 잎가에 향긋한 창포 냄새가 일렁이던 내 어머니가 울컥 보고 싶은 오늘이다.
나날이 푸르러가는 유월 하늘 아래 따사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창포는 옛날 모습 그대로 연못을 지키고, 세월 앞에 창포 꽃 매무새 곱기만 한 데, 가슴 한 구석이 자꾸만 허전해 옴은 어인 일일까.
덧붙이는 글 | - 내일(6.8), 단오를 맞이하여 그동안 내 못난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단오장을 선물합니다. 여성 독자들은 단오물로 머리를 감고, 남성 독자들은 단오장을 허리에 차 이 여름동안 '액'을 예방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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