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언어 없는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종교적 수행의 목적으로 일정 기간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만 봐도 언어 없는 세상은 참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말과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호모 로쿠엔스라 불리는 언어적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세 명의 이주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해 의사소통의 일차적 수단인 '언어'를 갖고 음성이든 문자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그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지 사흘 됐다는 세 사람을 만난 것은 그들을 고용하기로 하고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근로계약을 작성했던 회사의 관리자를 통해서였다. 그 회사는 사흘간의 이주노동자 국내 적응 교육이 끝나 세 사람을 인수하자마자 근로계약을 파기한 상태였다.
세 사람의 입국 수속 기간에 고용 환경이 변했다는 게 일방적으로 이주노동자들과의 근로계약을 파기한 이유였지만, 단 한 시간도 안 돼서 회사를 그만두게 할 사람들을 굳이 데리고 갔던 이유는 인수인계를 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외국인력 고용제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는 부당해고를 당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회사측 관리자에 의하면, 고용지원센터에서 세 사람을 쉼터로 데려가라고 했다고 한다. 관리자라는 사람은 미안한 게 있어서 그런지 사무실로 들어오지도 않고, 자신의 입장만 빠르게 전달하고 자리를 뜨려했다.
말 한 마디 못하고 일방적으로 해고된 세 사람의 형편에 대해 사측의 변명을 듣는 동안, 세 명은 부동자세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민망한데,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어 괜한 부담이 되어 우리말로 편하게 앉아 쉬라고 했지만, 통할 리가 만무했다.
결국 우즈베키스탄에서 해외봉사활동도 하고, 주재원 생활도 했던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세 사람이 처한 형편을 설명하게 하고, 쉼터에 있을 동안 편하게 지내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전화로 한참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핸드폰을 받아들었던 셋 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며, 반복적으로 뭔가를 묻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자신들이 와 있는 곳이 앞으로 일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확인한 듯했다. 그러자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던 젊은 사람이 한국어 책자를 꺼내들더니, 한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마 자신들이 일도 해 보지 않고 해고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화가 끝나자 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수첩에서 전화번호 하나를 꺼내들고 전화를 해 달라는 시늉을 했다. 부탁받은 전화로 전화를 걸자, 그는 뭔가를 급하게 말하더니 곧바로 나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한국에 먼저 온 우즈베키스탄 사람으로 김해에서 일한다고 밝힌 상대방은 어눌하지만 또박또박한 말씨로 "그 사람들 도와주세요"라고 말을 하였다.
그렇게 핸드폰이 몇 번 오가는 사이, 회사에서 왔던 사람은 자리를 떴고, 중국에서 온 환갑을 넘긴 강씨 아저씨가 나타났다. 체불임금 문제가 있다며 벌써 며칠째 쉼터를 이용하던 사람이었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짓발짓한다고 하지만, 그마저 눈치가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헛수고가 될 터. 먼저 쉼터를 이용하던 강씨에게 두 사람의 형편을 설명하고, 며칠 같은 방을 쓰게 됐으니 편하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가기 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부탁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비록 전화였지만 수차례 통화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부동자세로 있던 긴장된 모습들이 다소간 사라지고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언어적 존재의 고통'.
세 사람의 한국생활 첫 단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문도 모르고, 부당해고되었지만, 말 한 마디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 했던 그들도 조만간 일할 직장을 찾고 말을 배우며 한국생활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때쯤이면, 굳이 책자를 펼치거나 전화로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지 않아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제발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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