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늦게까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과연 오늘 날씨는 맑게 갤 수 있을까. 이렇게 비가 오시는데. 참 신기하게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은 맑음, 햇볕은 쨍쨍,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이런 햇볕이라면 어제 진종일 비 내리고 새벽 늦게까지 비가 왔다 하여도 뽀송뽀송하게 말릴 만하다.
양산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온천장에서 내려서 203번 산성버스를 타고 금정산 동문 입구에 당도했다. 등산복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내렸다. 11시 55분, 햇발이 고와 햇볕 잘 드는 땅도 말라 있었다. 이번 금정산행은 동문에서 시작해 금정산성 길을 따라 북문, 고당봉, 그리고 범어사로 내려갈 생각이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1971.2.9)로 길이는 1만7337미터, 성벽높이 1.5~3미터, 총면적 약 2512천평의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이다. 행정구역상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장전동 구서동, 북구 금곡동 화명동 만덕동까지 이르고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년)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삼국시대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성은 1701년(숙종 27년)에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착공하여 이듬해에 준공하였으며 그 후 1807년(순조 7년)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 이듬해에는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1974년까지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한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용이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 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어제 비가 온 탓일까. 산 들머리서부터 찔레꽃 그 짙은 향기가 먼저 반겼다. 금정산은 망루가 4개, 문이 동서남북으로 4개다. 우리는 동문을 지나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걷는 넓은 산책로를 버리고 동래산성 좁은 성벽 길을 따라 걸었다. 이른 새벽까지 비가 온 뒤라 땅은 바짝 말라 있진 않았지만 고운 햇살에 어느새 보송보송해진 길이 걸을만 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희귀한 모양의 크고 작은 암봉들을 만났다. 이 거대한 바위들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산길을 따라 걷다가 지쳐 힘들 때 쉼을 주기도 하는데, 크고 넓은 바위 위에 앉아서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도 하고, 또 길게 누워 쉬어 가기도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깎여서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있기보다는 둥글게 마모되어 있는 모습들이다.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정산을 찾은 것일까. 성벽 길을 따라 걷노라니 숲 속에서 사람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숲 속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 낮 1시 10분, 제3망루에 도착했다. 제3망루는 산성 성벽길 끝 쪽으로 나 있어서 흔히 사람들이 걷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놓치기가 쉬울 것 같았다. 제3망루는 큰 바위들 뒤 끄트머리에 있어서 자세히 봐야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제3망루에선 회동 수원지가 산자락 끝에 만져질 듯 보이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잠시 망중한, 다시 길을 걸었다. 곳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맛난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흥겨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바위 그늘에 앉아 집에서 삶아 온 감자를 먹는 시간,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도 하다. 금정산성을 걷는 길엔 바위도 많고 사람도 많다. 제4망루에 도착, 2시 10분이었다.
금정산성 길을 산보하듯 걸었다. 금정산성은 언제 다시 와도 또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사람의 얼굴을 앞에서 보는 것과 뒤에서 보는 것이 다르고, 왼쪽 오른쪽에서 보는 것이 또 다르듯이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기에 보고 또 보아도 다 알 수 없다. 금정산성은 또 웅장하고 남성적인 위용도 있지만, 언제라도 응석을 다 받아 줄 것처럼 하염없이 넓고 편안해 어머니 품속 같다.
의상봉에 도착, 2시 20분이다. 의상봉에 올라 우리가 걸어온 성벽길과 가야 할 금정산 고당봉 쪽으로 난 성벽길을 내려다보았다. 구불구불 길게 뻗어 있는 산성길은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것이 과히 실감날 정도로 길고 또한 멋스러웠다. 여기서는 동서남북으로 조망이 되었다. 우리가 지나 온 제3망루, 낙동강, 고당봉, 원효봉, 파리봉, 상계봉 등이 두루두루 보였다. 산성 성벽길을 따라 계속 걷는 길은 사방이 확 트여 있어 좋았다. 특히 동문에서 북문까지 가는 성벽길은 탁월했다.
원효봉을 지나 북문에 도착했을 땐 3시 20분, 예전엔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지금은 새롭게 단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문 넓은 안부에서 약수 물을 마시기도 하고 숲 속 바위에서 쉬기도 하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물을 마시고 잠시 숲 속 바위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초록이 짙어가는 울창한 숲 속 그늘에 넓은 바위 하나를 골라 자리를 깔고 길게 누웠다. 한참을 누워 있으니 바위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등이 시렸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숲 속에서 쉬어가는 시간은 빨리도 흘러가는 것 같았다. 4시 정각, 북문에서 고당봉까지 걷기 시작했다. 금정산 고당봉에 이르렀을 땐 4시 35분, 성벽 길을 따라 걸으며 멀리서 보았을 땐 많은 사람들이 금정산 고당봉에 보였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내려가고 없었다. 아니 저 꼬마들은 이 꼭대기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젊은 아빠와 함께 사발면을 먹고 있는 세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빠와 함께 산행을 온 것 같았다.
젊은 아빠가 만들어 준 사발면을 먹고 난 뒤엔 금정산 최고봉 고당봉 꼭대기에 있는 바위, 그다지 넓지도 않은 바위 위에서 왔다갔다가 움직이는데 내 마음이 불안했다. 아이들은 바위 끄트머리까지 걸어가더니 무릎을 꿇고 바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바위 밑에는 벼랑인데 어쩌자고 저럴까. 내 마음이 불안해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애들아, 거기 끝에 가면 안돼!”
내 목소리를 들은 꼬마 아이들의 젊은 아빠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 표정은 편안한데다가 아이들 걱정이 전혀 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고당봉에서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자꾸만 나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고당봉에서 북문(5시 20분), 북문에서 범어사로 내려왔다. 저녁 6시였다. 범어사 계곡에 앉아서 지친 발을 흐르는 물에 담그고 피로를 풀었다.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금정산은 벌써 네 번째다. 처음엔 양산 동면에서 장군봉, 금정산 정상 고당봉, 그리고 두 번째는 범어사 매표소 100미터 밑에 있는 상마마을에서 4망루, 의상봉, 금정산 정상, 금샘, 그리고 상마마을, 세 번째는 화명동에서 금정산 상계봉, 파리봉, 남문, 케이블카를 타고 온천동, 그리고 이번엔 동문에서 북문, 금정산 고당봉, 범어사로 내려가는 네 번째 산행이다.
금정산 그 품새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아직도 그 면면을 다 모를 지경이다. 금정산성 주능선은 아무래도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산성을 끼고 걷는 능선길엔 사방이 확 트여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있고, 길을 걷다가 돌아보거나 앞을 보면 쭉 길게 이어진 산성 길의 특이함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과연 부산을 넉넉히 품고도 남는 산이다. 어머니 품속처럼 넓디넓은 금정산에 올라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즐겁게 쉬어가는 하루였다.
금정산 등반:동문-북무-금정산 고당봉-범어사진행: 양산 12번 버스-온천장역-203번 산성버스-동문입구(11:55)-제3망루(1:10)-제4망루(2:10)-의상봉(2:20)-휴식후 출발-원효봉(3시)-북문(3:20)-간식먹고 휴식후 출발(4시)-금정산 고당봉(4:35)-북문(5:20)-범어사(6시)총 산행시간 :6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