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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대만 출장을 가서 국제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국제회의라고는 하지만 참석한 사람들 국적이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이렇게 네 나라여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국적이 다르다는 걸 의식하기 어려웠습니다. 서로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지 회의가 순조롭게 끝났고, 그 자리를 주관한 일본 기업가가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해서 '대판야끼'라는 일본식 철판구이 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미스터 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으니..."

 

 6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 밤샘 농성장에서 최고로 인기를 끈 견공. 광우병 쇠고기 반대 피켓을 매달고 집회 참가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한몸에 받았다.
6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 밤샘 농성장에서 최고로 인기를 끈 견공. 광우병 쇠고기 반대 피켓을 매달고 집회 참가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한몸에 받았다. ⓒ 남소연

 

철판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요리사가 그 자리에서 구워주는 음식을 먹는 형식이었는데, 음식이 나오는 순서대로 선택해야 하는 게 꽤 많았습니다. 수프부터 시작해서 이것 저것 고르다가 주메뉴로 스테이크를 고르는 순간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미스터 리는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으니 일본산 쇠고기로 골라야겠네."

 

함께 일하는 싱가포르 동료의 이 한 마디에 주변의 시선이 모두 제게 쏠렸습니다. 모두들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의문을 잔뜩 담아 쳐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우려가 있어 안 먹는다고 해야 하나? 광우병이 영어로 뭐더라. 왜 한국 사람만 유난스럽게 그러느냐고 되물으면 30개월 월령과 SRM(광우병 특정위험 물질) 부위에 대한 설명까지 해야 하는 건가. 차라리 미국산 쇠고기가 맛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안 먹는 것뿐이라고 할까.'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일본 기업가는 일본은 안전하다고 확인된 부위만 수입하기 때문에 그런 걱정 없다고 이야기 할 것만 같았습니다. 대만 고객이나 싱가포르 동료 역시 아무리 설명을 해 봐야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수입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게 뻔했습니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든 그 동료만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절 구해 준 건 다름아닌 그 동료였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국민들이 시위하는 걸 여러분들도 다 보지 않았느냐?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광우병(Mad Cow Disease) 위험이 있는 소까지 수입하라고 해서 한국 국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그 때문에 미스터 리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 먹고 있다."

 

광우병이 영어로 'Mad Cow Disease'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압력만 이야기하고, 한국 정부가 한미FTA 체결을 위해 굴욕적인 조건마저 다 수용하는 바람에 국민들이 한국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은 빼놓은 그 동료가 고마웠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내 자식이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한국 정부의 무능을 이야기 하는 건 속 상하는 일이니까요.

 

동료의 추가 설명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했습니다.

 

"나도 신문에서 사진으로 봤다. 한국 국민들 대단하더라. 정부도 국민들 목소리에 힘을 얻어 미국과 협상할 때 강하게 나갈 수 있겠더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건 일본에서 본 일이 없다."

 

"싱가포르에서는 정부가 한 번 정하면 국민들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두 명 이상만 모여서 시위를 해도 경찰이 잡아 가니까 시위를 할 수도 없다. 대신 정부가 제대로 해 줄 거라는 믿음은 있다."

 

"대만도 미국과 쇠고기 문제로 협상을 하는 걸로 아는데, 한국이 잘 됐으면 좋겠다. 대만도 광우병 걱정 안 하고 쇠고기 먹을 수 있게."

 

한국의 촛불 시위는 이미 전세계의 '관심'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둘째날인 6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둘째날인 6일 저녁 촛불문화제가 서울 시청앞 덕수궁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학생과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 유성호

 

조금 전의 당황스러운 순간은 지나가고 전 조금 으쓱해져서 한 마디 더 했습니다.

 

"한국은 군인이 세운 독재정권도 시위를 통해 물러나게 한 나라야. 촛불시위를 하는 국민들 때문에 광우병이 우려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에 발도 못 붙이게 될 거야.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니까."

 

제가 한 말을 그들이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짧은 영어가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저의 말투와 표정을 통해 한국 사람의 자신감 같은 건 전해졌을 겁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 말입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서 있던 직원은 그 식당에서는 일본산과 호주산만 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자리에 앉은 여섯 명 모두 일본산을 골랐습니다.

 

"미국산 가지고 오면 안 돼요. 맛을 보면 알아요."

 

일본 기업가의 진담 섞인 농담이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촛불 시위는 이미 외신을 타고 일본, 대만, 싱가포르 국민들 눈과 귀에도 전해져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를 넘어 온 세계가 이미 한국 국민의 촛불을 관심 있게 지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연일 이어지는 한국의 촛불시위로 인해 누가 가장 곤란을 겪게 될까요? 10%대 지지율의 이명박 정부가? 아닙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었더라도 취임 이후 이어진 실정에 의해 10% 지지율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간의 민심을 확인하고도 촛불시위가 '친북 좌파 세력'의 부추김 때문이라는 그의 상황 판단은, 그가 민생과 관련된 다른 부분에서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소나기 그치고 '태풍' 오지 말란 법 없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사흘째인 7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세종로 사거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대형태극기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사흘째인 7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를 마친 학생과 시민들이 세종로 사거리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대형태극기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대통령은 전국에서 일어나는 촛불시위를 '소나기'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곧 그칠 '소나기' 말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국민의 분노가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인이 해소되기 전까진 그치지 않을 '장마' 말입니다. 끝내 '태풍'마저 불어 저들 모두를 날려버리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한국의 촛불을 가장 뜨겁게 느끼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 정부와 미국의 쇠고기 업자들입니다. 한국의 촛불로 인해 이미 세계인이 미국산 쇠고기와 그들의 축산물 관리 체계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자국민에게 먹이지 못하는 위험한 부위마저 타국민에게는 먹이고 말겠다는 그들의 경제논리에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촛불이 이어질수록 미국의 치부는 온 세계에 밝게 드러날 테고, 온 세계 시민이 함께 분노하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 쇠고기 시장을 넓히려다 다른 나라 시장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말로나마 대책을 마련하자고 대응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은 미국 역시 한국의 촛불을 염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앞뒤 안 가리고 주는 대로 넙죽 받아 온 이명박 정부로 인해 한동안 들지 못했던 고개를 촛불로 저항하는 국민들로 인해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계시민들이 저희를 두고 촛불이라 합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촛불#이명박#광우병#미국산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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