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6월 8일 <주간조선>(2009호)에 이른바 '특별기고'를 했다. (원문 : 촛불 시위 vs 1인 시위)
그의 글이 언제나 그랬듯 '원론적으로는'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고, 자사(조선일보)에 대한 광고거부운동과 같은 것은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배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감싸고픈 핵심은 촛불시위 반대 1인시위자나 김문수 지사가 아닌 자신의 오랜 직장이었던 조선일보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과거 독재시절 정치권력은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도록 협박해서 동아일보를 죽이려 했었다. 그런 현상이 30여년이 지난 언필칭 민주화된 나라에서 국가권력이 아닌 언필칭 '시민권력'에 의해 또다시 복기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슬프고 놀라운 시대착오의 표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특성이다. 다른 견해를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속성이다. 우리는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은 차치하고 그것을 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시대를 산 경험이 있다. 그 시대를 독재시대라고 했다. 우리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이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자부해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광고주에게 광고를 주지 말도록 협박해서 어느 언론을 죽이려 한' '슬프고 놀라운 시대착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동아일보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 먼 과거가 아닌 불과 2년여 남짓한 일이고, 그 때에도 정권이 아닌 시민들에 의한 압력, 혹은 협박이었다.
연세가 꽤 되신 김대중 고문이 잊으셨을 듯 싶어 상기시켜 드리면 바로 '황우석 사태' 당시 MBC <PD수첩> 사태였다. 당시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의 융단폭격 속에 여론은 PD수첩에 극히 불리하게 돌아갔고, 수많은 성난 시민들이 MBC PD수첩 광고주들에게 전화를 해 광고 12개 중 11개가 떨어져 나갔었다. 그 때 김대중 컬럼은 뭐라고 했을까? 그는 이렇게 썼다.
"오마이뉴스의 한 기자는 PD수첩에 대한 비난을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제국주의에 빗대어 '과거 독재에 의해 강요된 전체주의'로 풀고 있다. 이런 말들은 그 자체로 이견에 대한 관용을 허용치 않고 극단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김대중 칼럼] '보통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 (2005년 12월 6일자) 중에서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황우석 사건 당시에는 PD수첩에 압력을 가하는 대중을 비판하는 것이 '이견에 대한 불관용'이고, 쇠고기 사건에서는 조선일보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이견에 대한 불관용'이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괴상한 자기 모순이 발생한다. 황우석 사건 당시의 김 고문의 논리대로라면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대중을 비난하는 김대중씨 자신이 바로 '이견에 대한 불관용, 극단적 매도'가 되어 버린다!
그러한 논리적 모순과는 별개로, 황우석 사건 당시 그가 그렇게 비난했던 MBC와 MBC를 옹호했던 진보언론들은 결국 진실을 말하는 이들로 드러났고, 그 반대편에서 좌파의 음모 운운하면서 황우석을 감싸던 조선일보(와 김대중 고문)는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반면, 쇠고기 사태에서는 MBC와 진보언론들이 진실을 말할 때 끝까지 좌파의 음모 운운하면서 사태를 호도하려고 애쓰던 조선일보는 현재까지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그저 정부만 탓할 뿐이다. 그리고는 반성없는 자신들에 대한 분노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되자 기껏 내놓는 것이 이런 궁색한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관용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자에게나 허용될 수 있는 덕목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을지언정 반성 없는 그들에 대한 광고거부운동에 반대하지 않는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이 신문은 관용의 대상이 아닌 징벌의 대상이고, 그 자유를 지켜줘야 할 언론이 아닌 리콜되어야 할 불량상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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