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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을 따라 구비구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욕지도 일주도로. 지나오고 나니 저런 길을 어떻게 달려 왔을까 싶네요.
해안을 따라 구비구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욕지도 일주도로. 지나오고 나니 저런 길을 어떻게 달려 왔을까 싶네요. ⓒ 김종성

욕지도(慾知島)라는 섬은 한국말로는 어감이 좋진 않지만 한자말로는 "알고자 한다"라는 뜻이 조금은 철학적인 이름의 섬입니다. 한 스님이 "알고자 한다면 사람의 마음속 성품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설법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합니다.

섬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무념무상의 편안한 섬이라고 추천하는 여행지인지라 어떤 면이 그렇게 편안한지 궁금하기도 하고 좀 다른 방법으로 여행하고 싶기도 해서 애마인 자전거를 데리고 섬 여행을 가보았습니다.

남해안의 섬들 중에는 비진도, 매물도, 한산도, 사량도, 거제도, 외도 등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욕지도라는 섬은 그리 많이 알려진 섬은 아닙니다. 이번에 욕지도 여행을 해보니 그건 아마도 외지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굳이 섬을 홍보할 필요가 없는 섬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삶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네요.

욕지도는 약 15Km의 일주도로에 5개리로 이루어진 작은 섬입니다. 천황봉, 대기봉같은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는 300m급의 산들도 있지요. 통영의 여객선 터미널이나 삼덕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여를 가다 보면 바다 위에 많은 무인도들이 보입니다(주변에 약 27개의 무인도가 있다고 합니다).

지도상에서도 작아 보이고 통영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차로는 몇 시간, 자전거로는 반나절이면 섬을 일주할 수 있다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며 욕지도를 향해 갔습니다. 배 위에서 보이는 크고 작은 섬들의 경치가 남색의 남해바다와 어울려 참 좋습니다.

 통영에서 삼덕항을 향해 가는 관문인 해저터널. 주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길입니다.
통영에서 삼덕항을 향해 가는 관문인 해저터널. 주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길입니다. ⓒ 김종성


 어디를 가는지 소 모자와 같이 배를 탔습니다. 욕지도 가는 배는 자전거 비용을 따로 더 받지 않네요.
어디를 가는지 소 모자와 같이 배를 탔습니다. 욕지도 가는 배는 자전거 비용을 따로 더 받지 않네요. ⓒ 김종성

 욕지도를 향해 가는 바닷길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무인도들이 보입니다.
욕지도를 향해 가는 바닷길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무인도들이 보입니다. ⓒ 김종성

 빨갛고 노란 예쁜 등대가 1시간여를 달려온 여행객을 맞아주네요.
빨갛고 노란 예쁜 등대가 1시간여를 달려온 여행객을 맞아주네요. ⓒ 김종성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이 있는 섬 입구에 빨갛고 노란색의 예쁜 등대가 맞아줍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애마를 데리고 내리자니 선착장 입구에 작은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주민들을 태우고 섬을 일주하는 유일한 버스로 섬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마을버스 같은 것이니 한 번 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선착장에서 보이는 일주도로를 따라 달리자니 관광 온 자가용이나 승합차들도 합세하네요.

사실 저같은 자전거 여행자나 도보여행자에게 욕지도는 섬을 쉽게 알려다가 욕 보는 섬이기도 합니다. 일주도로가 시작되자마자 나타나는 오르막 언덕길이 예고도 없이 계속됩니다. 당연히 '끌바'(자전거를 끌고 다닌다는 자전거 용어)를 하고 걸어 오르다 이제 경사가 완만하다 싶어 한숨 돌리며 자전거에 올라타면 다시 또 나타나는 '업힐'(경사진 언덕길을 지칭하는 자전거 용어).

급하게 섬을 일주할 생각은 없기에 천천히 오르막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걸어 올랐으나 길가 숲속의 청명한 새소리들과 여유있게 풀을 뜯는 소들과 염소들의 응원이 아니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 같네요.

왜 이렇게 오르막 언덕길이 계속되나 했더니 어느새 눈 앞에 펼쳐진 진한 남색의 남해바다와 절벽의 기암괴석들이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저는 자전거와 함께 섬의 높은 꼭대기로 구불구불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보통의 섬들이 바닷가를 따라 일주 도로가 난 것과는 다르게 욕지도의 일주도로는 절벽을 타고 기암괴석들 주변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섬을 한바퀴 도는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을 자전거를 끌다가 타다가 하며 가자니 도시속에서 쌓인 만가지 번뇌가 싹 사라지네요.

 일주도로 중간중간에 전망대 겸 휴식처가 있어 좋습니다. 일단 고지에 오르면 넓고도 푸른 다도해 바다를 실컷 감상할 수 있지요.
일주도로 중간중간에 전망대 겸 휴식처가 있어 좋습니다. 일단 고지에 오르면 넓고도 푸른 다도해 바다를 실컷 감상할 수 있지요. ⓒ 김종성


 오르막 길을 오른 피로가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는 풍광입니다.
오르막 길을 오른 피로가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는 풍광입니다. ⓒ 김종성


 길가에서 풀을 맛나게 뜯어먹으며 쳐다보는 소들이 마치 저를 응원하는 것 같아 더 힘을 냈습니다.
길가에서 풀을 맛나게 뜯어먹으며 쳐다보는 소들이 마치 저를 응원하는 것 같아 더 힘을 냈습니다. ⓒ 김종성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힘든 여정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어느 마을이 까마득히 작게 보이는 고갯길 위에서 배도 고프고 물도 떨어져 더 이상 가지도 못하고 있다가, 대구에서 단체로 놀러오신 인정많은 아주머니들에게 물은 물론 밥에 제육볶음과 수박까지 실컷 얻어 먹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가까운 민가라도 들어가 물과 밥 좀 달라고(?) 애원했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지요.

힘들게 오른 만큼 멀리 다도해가 연이어 보이는 남도의 멋진 풍광이 뇌리 속에 깊이 남습니다. 작은 마을의 소박한 교회와 학교와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이름도 독특한 월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웃음이 많고 장난기 많은 섬마을 아이들의 순수한 심성이 제게도 전이되는 것 같았습니다.

자전거로 반나절 코스라는 욕지도를 KBS 예능방송의 '1박 2일'처럼 정신없이 보냈지만 이런 섬을 차로 몇시간 혹은 자전거로 반나절 삼아 휙 돌아보면 별 의미없는 섬 여행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주민이 알려 주었지만 체력이 달려 못 가본 욕지도 최고의 전망대라는 미사일 기지 근처의 무인등대와 천왕봉 그리고 고인돌을 보러 꼭 다시 가봐야 겠습니다.      

 끌고 올라온 애마를 이제야 탈 수 있는 내리막길이 반갑습니다. 내리막길에는 꼭 저런 작고 푸근한 마을이 있어 발길을 돌리게 하지요.
끌고 올라온 애마를 이제야 탈 수 있는 내리막길이 반갑습니다. 내리막길에는 꼭 저런 작고 푸근한 마을이 있어 발길을 돌리게 하지요. ⓒ 김종성


 월량초등학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합니다. 아이들을 찍은 사진들은 학교 선생님을 통해 전해 주었는데 사진을 보며 또 까르르 웃겠지요.
월량초등학교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합니다. 아이들을 찍은 사진들은 학교 선생님을 통해 전해 주었는데 사진을 보며 또 까르르 웃겠지요.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욕지도는 통영의 여객선 터미널이나 삼덕항에서 배를 타고 가면 1시간여가 걸립니다. 자전거 여행자라면 통영의 해저터널을 지나 산양해안도로를 따라 삼덕항까지 가서 배를 타길 추천합니다.



#욕지도#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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