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북 전주 관통로 사거리는 촛불과 붉은 종이 피켓의 바다를 이루었다. 학생과 시민들이 6차선 도로와 인도를 가득 메웠다. 전북 도민 1만 촛불대회에 참가한 사람마다 서로의 눈을 의심케 하는 1만 5천여 명의 학생, 시민들이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벅찬 감동과 환희의 촛불은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며, 21년 전 군사독재로 회귀한 듯한 이명박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맹렬히 성토했다. 시민들의 손에 손에 든 촛불과 피켓, 그리고 함성은 권력의 독선과 오만을 국민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이었다.
10일 저녁 전주 시내 일원에서 펼쳐진 노동자, 여성, 대학생, 농민, 교사, 성직자, 중고생들, 진보정당 당원 등의 촛불대행진 참여자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결의대회를 마치고 사거리로 집결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온 중고등학생들과 가족 단위로 참석한 시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결의대회를 마친 대학생들도 관통로 사거리로 모였다. 모처럼 전북지역대학 총학생회도 함께해 청년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특히 동맹휴업을 결의하고 참여한 전주교대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전주시청 옆에서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결의대회를 한 민주노총 전북본부 소속 2천여 명의 노동자들도 촛불의 광장에 합류했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현장 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결의한 2천여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열받았다. 이명박을 심판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광우병 쇠고기 재협상, 물가폭등 기름값 인하, 공공부문 사유화, 한미FTA 저지" 등 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농민들 역시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다가공원에서 결의대회를 마쳤다. 부시와 MB를 체포해서 나무로 만든 감옥에 압송해서 국민 심판대에 세우는 퍼포먼스 트럭 행진을 관통로 사거리까지 펼쳐 주목을 받았다.
여성들도 객사 차 없는 거리에 모였다. 특히 생협 회원 여성들은 아이들과 함께 모여 '정의의 고깔모자'를 쓰고 한손에는 페트병에 모래를 넣어 흔들며 재협상을 촉구했다. 여성단체는 객사 주변에 걸개 글씨 그림을 걸어 놓아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 손에 종이 피켓과 풍선을 든 한 생협 회원은 "아이의 미래가 너무 걱정돼서 나왔다. 빨리 재협상해서 아이들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재협상을 실시하라, 미친소를 막아내자"를 외치며 거리를 촛불의 바다로 만들었다. 이들은 촛불파도 타기로 87년 6월의 항쟁을 기념하고 2008년 6월 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분신 사망한 이병렬 민주시민 열사의 추모시 등으로 고인의 넋을 기렸다. 도립국립악단의 무대공연으로 촛불들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고등학생은 "우리가 미친 쇠고기 수입하라고 대통령 뽑은 것 아니다. 0교시, 우열반, 자립형 사립고 등 셀 수 없이 많은 학교자율화로 교육 양극화을 심화시키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수도 전기 철도 의료까지 민영화하라고 뽑아준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성토를 하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환호하며 "이명박은 물러가라! 냉큼!"이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또 한 학생은 "정부는 저희들을 알 수 없는 사탄의 무리라고 한다"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데 이명박은 권력을 자기 맘대로, 그것도 쥐새끼처럼 몰래몰래 숨어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밤 9시 40분쯤에는 사거리광장에서 공설운동장까지 6Km의 촛불행진이 시작됐다. 인도에는 집에서 시민들의 함성을 듣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최명순(71) 할머니는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서민들 다 죽이려고 작정한 대통령 같다. 늙은이 대신 젊은이들이 열심히 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정신 차리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고등학생 두 명은 전동 휠체어로 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에게 도너츠를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가던 최선희씨는 "어린이 도서연구회에서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보장받기 위해 가족이 함께 나왔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학생도 "단지 광우병 때문만은 아니다. 10% 부자만을 위한 이명박 정권의 100일 동안의 정책인 광우병, 대운하, 학교자율화, 모든 민영화, 한미FTA 등 모두를 반대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한 학생은 "광우병 소가 들어오면 학교급식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내가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아빠 엄마 졸라서 촛불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다"라고 말했고, 부모의 입가에는 대견하다는 미소가 피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인 한 학생은 "고 3인데 야자하는 것보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해야 하기에 나왔다. 나라가 이 모양인데 나만 책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라가 바로 서야 내가 하는 공부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라며 강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김아무개(56)씨는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이 16%로 떨어진 대통령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기네스북에 올라갈 일이다. 쥐새끼 한 마리가 나라 망신 다 시키고 있다. 이에 동조한 조선과 동아와 중앙일보에 전화해서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쳤다. 쓰레기만 생산하는 조중동이 문을 닫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너무 좋다"며 대통령과 보수언론을 맹렬히 비판했다.
밤 11시쯤 공설운동장 4거리 전북일보 앞에서 촛불행진 마무리 집회가 있었다.
자유발언대에 나온 옥현씨는 "두 학생을 둔 가장이다. 노점상을 해서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입만 열면 CEO라고 한다. 국가를 기업으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이 주주이기에 이명박 대통령을 CEO에서 해고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시민들 속에서 화산처럼 폭발했다.
5천여 명의 학생시민들은 한 시간 반 정도 행진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면 국민이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촛불로 항쟁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한 전국 100만 촛불대행진을 벌인 것이다.
전북도민 1만 촛불대회, 촛불의 시민불복종 항쟁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만세삼창으로 촛불행진을 마치고 삼삼오오 친구들과 가족들과 무리를 지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희망이 가득하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날까지 시민불복종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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