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나팔꽃이 활짝 피었다. 새벽에 더욱 꽃을 활짝 피우는 나팔꽃의 기상나팔 소리에 깨 새벽 산책을 나왔다. 미국 속담에 '동이 틀 때의 한때는 하루의 열쇠다'는 말이 있다면, 한국에는 '새벽 바람 사초롱(매우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이란 뜻)'이란 말과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다' 등 새벽에 관한 속담이 있다.
새벽길을 산책하며 도심 속 텃밭과 그곳을 가꾸는 농부들을 만나는 때가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순간이다. 매일 지나는 동네 산책길의 텃밭 주인 아저씨는 내가 산책 나오는 새벽 5시보다 일찍 나와서 텃밭을 가꾸고 계신다. 요즘은 해가 일찍 떠서 새벽 5시라도 그리 어둡지 않다.
"아저씨, 오늘도 아침 일찍 나오셨네요?""그럼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 법이라네…."늘 듣는 속담이지만, 실천하는 아저씨의 모습 때문인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텃밭에 나와, 상추과 쑥갓, 콩 밭 등을 가꾸고 계신다. 채소의 어느 것 하나, 시장에서 사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도시생활이다. 아저씨가 새벽 일찍 집에서 가지고 나오신 등지게가 오늘 따라 너무 정겹다. 그리 멀지 않는 옛날 고향에서 등지게도 메고, 똥 지게도 메고 집안 일을 도왔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침 운동은 뒤로 미루고 나도 상추를 다듬어 드리겠다고 하니, 아저씨가 말씀 하신다.
"손에 흙 묻히는 일이란 아무나 할 것 같아도, 하던 사람이 해야 하는기라…."
"아저씨 상추 좀 사도 되나요?"
"먹을 거면 그냥 몇 뿌리 가져 가시게나."
"아닙니다. 그냥은 절대 안됩니다. 아저씨, 그럼 2천원어치만 파세요."
아저씨는 망설이시다가, 큰 비닐 봉투에 상추 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까지 가득 채워 주셨다. 나는 지폐를 건네드리기가 너무 미안해서 지폐 한 장 더 드리니, 절대 안된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난 가격만큼 주는 거여. 더도 덜도 준게 아닌거여."
식구가 없어서 이 거 다 가지고 가도 먹을 수 없다고 조금만 주라고 해도 기어이 안된다고 냉장도에 넣어 두고 먹으면 일주일 이상은 아무 걱정이 없다고 고집하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받아 돌아섰다.
세상의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손에 흙을 묻히고 살아가는 농부들은 마음이 이토록 선량하고 착한 것인가. 나는 너무 감동을 먹었다. 세상에 2천원어치 상추를 이렇게 많이 주는 채소장수는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묵직한 상추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서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새벽도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달리하고 있다. 봄의 새벽은 준엄한 정결성보다는 식물성적인 윤기를 간직하고 있다. 말하자면 복숭아꽃이나 오얏꽃 가지 사이로 열리는 새벽은 부드러우면서도 찬란하다. 하지만 여름은 부드러움보다는 시원하게 찬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벽은 식물성적인 그것이기보다는 광물성적인 것으로서 냉혹할 만큼 정결한 광휘와 찬란함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겨울새벽>- '박목월'
도심 속이지만, 아직도 옛날 골목길에는 대문 없는 집이 많다. 대문이 없는 집 마당 안쪽엔 수국도 활짝 피어 있었다. 빈 빨랫줄에 빨래집게들도 고개를 흔들며 인사한다. 손을 좀 씻겠다고, 설거지 소리나는 부엌쪽으로 외치니, 외지의 나그네인줄 아는지, 물은 얼마든지 쓰라고 한다. 정말 이렇게 인심이 좋은 사람이 다 있나. 야박한 도시 생활 도심 속이지만, 옛날 골목길의 인가들은, 우리네 그 옛날 인심 그대로인 것 같다. 나는 그 푸근한 인정에 아침 세수까지 했다. 맑은 우물가에 온 것처럼 마음이 너무 상쾌했다.
새벽의 공기는 투명한 은빛 같다. 안개마저 끼인 도심 속 허름한 골목길에서 출근을 서두는 이웃들이 하나 둘 걸어 나오고, 마을버스도 바삐 지나다닌다. '그래 아저씨 말씀처럼 ,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많이 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