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아파트는 13평으로 30년 가까이 됐으며 재개발 시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뒤편의 오솔길 가로수들 사이로는 금정산 끝자락인 삼학산(604m)이 보이고, 정상에 오르면 김해공항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에 올라 바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면 성냥갑을 세워놓은 것 같은 아파트단지와 일개미들의 행렬을 연상시키는 낙동대교 위의 차들, 그리고 경부선 열차의 육중한 굉음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멀리도 가깝게도 느껴지면서 낭만을 더해줍니다.
귀가 따갑도록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과 청설모 부부가 소나무 숲으로 신혼여행 가는 소리, 그리고 울창한 숲은 산을 좋아하는 저에게 형용하기 어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데요. 그 아름다운 그림도 밤이 되면 새카맣게 변해버리고, 소쩍새까지 울어대면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소쩍새가 찾아오는데, 망월동 묘역에 잠든 영령들 중에 부산에 친구를 둔 혼이 소쩍새가 되어 이곳으로 날아와 울부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소쩍새 소리가 고요를 깨뜨리고, 실루엣 사진처럼 검게 변한 금정산 자락을 도깨비가 무서워 화장실에도 못 가던 철부지 시절에 봤다면 무섭다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여름방학 때 외가에 갔다가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무서워 밤잠을 설친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도 자연이 주는 풍요와 정서는 생활에 소중한 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만든 '스티로폼' 정원
부산으로 이사 오던 2002년 가을이었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까 마음도 스산해지더군요. 다가올 겨울밤의 방 안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쓸쓸한 겨울밤에 아내를 제외한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뒷산의 소나무와 흙을 집으로 가져와 정원처럼 꾸미는 아이템을 개발해냈습니다. 위대한 개발이었지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초록색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춥고 기나긴 겨울밤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는 나뭇잎을 상상하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창문을 열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요. 제 의견에 아내도 좋겠다며 선뜻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산에 올라 소나무 세 그루와 붉게 물들기 시작한 떡갈나무, 그리고 근처의 흙을 비닐봉지 몇 개에 담아왔습니다. 가지치기를 해줘야 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니까 자연을 훼손했다는 죄의식도 들지 않더라고요.
산에서 가져온 흙은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베란다 밖으로 내놓고, 떡갈나무와 소나무는 창가에 놓고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이파리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싱그럽게 다가오는 초록색 나뭇잎을 사시사철 가까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외우는 시(詩)는 한 수도 없으면서 시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지나자 심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힘이 없어지면서 붉게 변하더니 손을 대면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거름도 주지 않고 물만 주었거든요. 결국, 소나무는 얼마 가지 않아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나무 가꾸기 경험이라고 해봐야, 코흘리개 시절 막내 누님과 샘가 화단에 봉숭아와 채송화, 맨드라미 씨를 뿌려놓고 아침에 일어나면 달려가 싹이 돋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게 고작이었으니 소나무가 몇 달도 버티지 못할 수밖에요.
내 욕심만 채우려고 산에서 잘 자라는 어린 소나무들을 옮겨다 죽여 놓았으니 큰 죄를 지은 것이지요. 소나무는 정월에 옮겨 심고, 대나무는 오월에 옮겨 심어야 잘 자란다는 정송오죽(正松五竹)의 의미도 모르면서 무작정 옮겨 심은 저의 무지가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잡초들그래도 산에서 가져온 흙을 담아놓은 스티로폼 상자에서는 해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나옵니다. 이름도 모르는 잡초들 줄기에서 잎이 나오고 꽃을 피우고 지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소나무가 말라죽은 충격 때문인지 잘 자라는 잡초들이 자식처럼 귀하고 사랑스러웠고 이제는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건드리기도 아까운 떡잎이 하나씩 나오는 모습은 그렇게 신비스러울 수가 없으며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런데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집에 있을 때는 2~3일에 한 번씩만 물을 줘도 잘 자라니까 괜찮은데, 며칠씩 비워둘 때는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닙니다. 명절 때 고향에 다녀와서도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스티로폼 상자이니까요.
일주일이 넘도록 수분을 공급받지 못했는데도 살아있는 잡초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상자 안에서 힘없이 말라가는 잡초들을 보면 어쩔 수 없는 형편이었음에도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물을 주고 다음날 아침에 보면 줄기가 뻣뻣하게 서고 잎에서 윤기가 흘러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예쁜 꽃으로 즐겁게 해주는 잡초들을 대할 때마다,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말라죽은 소나무가 생각나면서 자연 앞에서는 절대 겸손해야 한다는 진리를 재차 확인해봅니다.
베란다에 놓인 스티로폼 상자들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작은 정원이 되었고, 상자 안에서 꽃을 피우는 잡초들은, 고고한 향을 풍기는 난이나 고급 저택의 정원에서 자라는 잔디보다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좁은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해마다 새로운 생명으로 희망을 주고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잡초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의 편지를 띄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