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등을 자꾸 떠밀며 내려가라고 하는 것 같은 오늘(6월 15일) 형님과 금정산 파리봉에 올랐다. 나이 육십을 넘긴 형님이지만 나보다 걸음이 빠르시다. 나의 형님은 누구신가. 그 옛날 귀신도 때려 잡는다는 해병, 월남참전 용사로서, 국가보훈 유공자이시다. 그래서 늘 난 형님을 마음으로 존경한다. 고엽제로 고생하고 계시지만 정신력으로 이겨온 형님의 세월이다. 등산에 관한한 또 나보다 정보가 너무 많은 형님이시다. 그래도 등산길에서는 아무리 친형제간이라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없다'는 것이 등산의 불문율이다. 가다가 지쳐도 절대 남을 도울 수 없고, 도와 줄 수도 없는 산행이다. 나는 지친 발걸음을 재촉하며 형님 따라가기 힘들지만, 결코 등산에는 아우인 나도 지지 않으려고 입술을 문다.
오늘의 등산 목표는 파리봉으로 세웠다. 워낙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오늘은 파리봉 정상까지 오르는 이는 그리 많지는 않았다. 파리봉은 불교의 7보 중의 하나인 '수정'을 상징한다. 이 정상의 바위들은 기암괴석이 수정 같이 생겼다. 햇빛이 좋은 날은 바위에 반사되는 빛에 의해 영롱한 유리알처럼 빛나는 기적을 이룬다고 한다.
이 '파리봉'은,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멀리서 보면 바위 생김새가 코끼리가 낙동강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봉우리를 불명으로 '파리봉'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외도 그 옛날 천지개벽시 산정에 파리 크기만큼만 물에 잠기지 않아 '파리봉'이라 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금정산은 금정산의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계명봉', 파리봉 등 산봉우리의 명칭이 불교적인 불명을 가지고 있다. 파리봉 주위의 '상계봉(638m)은 금정산성 제 1망루에서 보면 산정은 화강암류로 노출되어 바위의 생김새가 닭 머리의 벼슬처럼 닮아, 이를 닭 계(鷄)자를 붙여, 상계봉이란 이름이 되었다 한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김소월'
금정산은 아득한 옛날 '신의 샘'이란 뜻에서 '검얼뫼'라고 불리웠다고도 한다. 금정산은 매번 오지만 올 때마다 그 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리고 산을 타고 올라오는 등산로에 의해서, 몇 수십번 올라와도 전혀 한번도 와 보지 않는 산처럼 그렇게 낯설고 신비한 부산의 대표적 명산임을 확인한다.
한평생 같이 한 가족으로 살아왔지만, 항상 뵐 때마다 존경스러움을 일게 하는 형님의 숨겨진 모습처럼. 새삼 형님의 얼굴에 하얀 소금꽃처럼 부슬부슬 일어나는 고엽제의 휴유증세의 마른 버짐이 오늘은 왠지 천년 바위의 얼굴처럼 성스럽다. 단 한번도 이런 말을 해 본 적은 없으나, '형님! 당신의 성실한 생애를 정말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의 형님이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 속으로 되새겨 본다. 그러나 거센 바람은 자꾸 산을 내려가라고 등을 떠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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