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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는 허약한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제도를 넘어서는 어떤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

 

"이제 거리의 정치를 일탈적이라고만 여기기는 어렵다. 정상적인 현상으로 인정하고 그 자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  

 

2008년의 오뉴월을 뜨겁게 달궈 온 '촛불'에 대한 분석에 나선 학자들은 '촛불 문화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상태를 구한 '구원투수'라는 점에는 입장을 같이했다. 그러나 '거리의 정치'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보학자들 사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16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진행된 긴급시국대토론회에 나선 10여명의 학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촛불집회와 한국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 등 10여명의 토론자들이 참여했다.

 

"거리 정치만으론 한계...  대의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개회사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의 조건에서 운동(촛불집회 등)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한 지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오늘의 촛불집회는 한마디로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의 결과"라며 "정당-의회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집행부에 아무런 견제력을 갖지 못하고 정부구조 내에서 삼권분립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한 뒤, "하지만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운동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기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운동은 광범한 대중의 강렬한 에너지 동원을 통해서 권위주의적 권력에 대응할 수 있게 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조직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에 그것은 찬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구체적인 대안을 형성하거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는 지난하다."

 

최 교수는 "하나의 정책이슈를 운동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쇠고기 문제가 끝나면 민영화, 교육 등 이슈가 출현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와 운동 간의 충돌로 일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특히 운동이 헤게모니를 불러들이게 될 때 위험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자율적결사체를 통해 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데 몰두하는 반면 제도정치 내에서 정당을 강화하는데 무관심하다면, 반대편에서는 파시즘을 불러드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운동이 낭만주의적인 정치관을 확산시켜 반정치주의적인 정치관을 강화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최장집 교수는 또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가 대의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또는 대통령소환제의 요구와 같은 현실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현코자 하는 논리와 정조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방법은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충고했다.

 

이어 최 교수는 "지난날 혁명과 무력사용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했던 방법이 종이로 된 투표권의 행사로 대체되면서 평화적으로 제도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처리하게 된 것"이라며 "촛불집회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제도를 넘어서는 어떤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다"라고 주장했다.    

 

"거리의 정치, 일탈이 아니라 정상으로 만들어야"

 

반면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무역학부)는 "촛불 시위를 자제해야 한다거나 거리의 정치는 그쳐야 한다면서 정치를 제도권 정치로 등치시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광장의 토론과 더 많은 저항과 학습, 그리고 공유된 경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교수는 "특히 생태와 평화, 그리고 전지구적인 문제에서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정당민주주의보다 더 높은 '공공적 성찰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반드시 제도 민주주의와 광장의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이중 민주주의'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의 정치가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반영하며 정당정치로 수렴되지 않을 경우 한국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일탈적 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러나 거리의 정치는 이미 한국의 정치변화에 계속해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7년 6월 항쟁,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집회, 그리고 2004년 탄핵반대 운동, 2008년의 광우병 쇠고기 촛불 문화제가 그 사례라는 것.

 

이 교수는 "이를 일탈적 현상으로 보기 보다는 정상적 현상으로 인정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거리의 정치도 일상적 정치과정의 하나로 보고 이것이 정치발전에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더 나아가 "거리의 정치가 갖는 해방적 기능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현시키기 위해 정치행위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 '거리의 정치'를 정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자. 한국 현대사의 면면히 내려오는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정치행동을 정치축제라는 형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축제를 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도 많다. 서울의 시청, 명동, 청계천, 광주의 금난로, 부산의 서면 로터리 등.

 

- '거리의 정치'의 일상화는 어떨까. 거리의 정치를 생활정치로 설명하는 경우는 많으나 현재의 거리의 정치가 구체적인 생활공간과의 결합정도는 매우 낮다.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공간, 시청, 청계천이라는 상징적 지역만이 아니라 생활정치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의제와 형식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제도 정치와 거리 정치가 생산적인 긴장 및 협력 이뤄야"

 

한편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정당정치가 제 자리를 찾지 않는 한 거리의 정치는 계속 분출할 것이며, 제 역할을 한다 하더라도 거리의 정치는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며 "제도의 정치와 거리의 정치가 생산적인 긴장 및 협력을 이룰 수 있는 쌍선적 심의정치를 어떻게 달성하느냐에 우리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며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김 교수는 "현대적 정치와 탈현대적 정치의 공존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며 "서구의 신사회운동의 등장에서 볼 수 있듯이 탈현대적 정치의 등장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적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 시대가 20년이 지난 최근에도 정당 정치의 제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상황에 따라 탈현대적 정치가 현대적 정치를 압도할 수 있으며, 현재가 바로 이런 상황"이라며 "정당정치와 탈현대적 정치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공존시킬 것인가가 현재 우리 정치에 부여된 최대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촛불 집회#민주주의#최장집#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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