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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명의 <국어>와 유향의 <전국책>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당시 패자가 되려는 열국의 치열한 외교전을 기록한 역사서다. 특히 두 책에 등장하는 합종연횡가들은 복잡다단한 외교관계를 통찰하여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예컨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한몸을 움직임으로써 월나라를 패자가 되게 하였고 오나라는 망하게 하였고, 제나라의 국력을 현저히 떨어뜨렸으며 스승의 고국인 노나라를 멸망으로부터 구했다. (오월춘추, 사기열전에 자세한 내용이 기록됨) 이처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조국의 명운을 짊어지고 치밀한 두뇌싸움을 전개한 이야기인 <전국책>과 <국어>의 내용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최근 대북 정책을 분석해 보았다. - 기자 주

 

순망치한을 잊고 망한 나라들

 

 유향의 전국책은 전국시대에 나라의 명운 건 영웅과 천재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전개되었다. 외교의 기본적인 개념이 총망라된 역사서로 전략도 없고 원칙도 없고 이명박 정부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유향의 전국책은 전국시대에 나라의 명운 건 영웅과 천재들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전개되었다. 외교의 기본적인 개념이 총망라된 역사서로 전략도 없고 원칙도 없고 이명박 정부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 인간사랑

춘추시대 말엽, 오패의 한 사람인 진나라 문공의 아버지 헌공이 괵나라를 치기로 결심했다. 헌공은 통과국인 우나라의 우공에게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보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우공이 이를 수락하려 하자 중신 궁지기가 간한다.

 

"전하,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란 말이 있사온데, 이는 곧 괵나라와 우나라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런 가까운 사이인 괵나라를 치려는 진나라에 길을 빌려 준다는 것은 언어도단 이옵니다." 

 

그러나 우공은 끝내 진 헌공의 계략에 말려들어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순망치한의 교훈을 잊어버려 화를 입은 나라는 비단 우나라만이 아니다.

 

기원전 313년 제나라가 초나라를 도와 진(秦)나라를 공격해 곡옥의 땅을 빼앗았는데 진나라는 제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초나라에게 땅을 주기로 거짓 약속을 해 초나라로 하여금 제나라와 국교를 끊게 만들었다. 사자의 거짓을 뒤늦게 깨달은 초나라가 진노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번에는 진나라가 제나라와 연합해서 맞섰고 한나라까지 가세하니 초나라는 다시 영토와 백성을 엄청나게 잃고 말았고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후원국을 믿고 멸망에 이른 나라들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서주의 대부 궁타가 서주군에게 건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원나라는 진(秦)나라를 믿고 진(晉)나라를 무시했다가 진(秦)나라가 기근에 빠지자 이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정나라는 위나라를 믿고 한나라를 무시했다가 위나라가 채나라를 공격하자 이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주나라와 거나라는 제나라에게 망하고, 진나라와 채나라는 초나라에게 망했습니다. 이는 모두 후원국만 믿고 가까이 있는 적을 가벼이 여겼기 때문입니다."

 

순망치한을 잊은 이명박 정부

 

안타깝게도 이 말은 이명박 정부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남북합의서를 부정하고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는 북한측이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존엄’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으로 해석돼 북한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거기다가 한반도 비핵화니, 인도적 지원에서의 상호주의니, 납북자와 국군포로, 지금까지 대북 협상 자세를 바꿔야 한다느니, 통일부 없다고 통일이 안 되는 것 아니라는 식의 말들이 이어지면서 남북 양국은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가 돼 버렸다.

 

러시아와는 자원 외교 운운 하는 발언으로 반발을 샀다. 러시아가 한갓 자원외교 대상에 불과하냐며 지난해부터 모스크바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러시아는 현재까지 친미국가에는 자원을 팔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더 심각하다. 후진타오 주석이 박근혜 특사를 만난 그 즈음만 해도 중국은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당근을 제시했다. 전략적 관계로의 격상 외에도 한·중 관계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의 반응이 냉담하자 점차 한-중관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 후로 중국을 일본 다음으로 방문함으로써 중국 지도부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방미 기간 중에는 한·미 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자고 거듭 제안하면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미동맹의 격상이란 중국으로서는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설정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쓰촨성 지진 때 중국 언론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호오를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일본 소방대원이 시신 앞에서 묵념하는 사진을 올려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한 반면, 한국은 악플러들이 중국의 불행을 기뻐하고 있다는 보도를 크게 해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했다.

 

사실 한중일의 악플러들은 시끄럽기로 유명해 그런 발언을 한 것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를 부각시킴으로써 '특별한 문제'로 만든 것이다.

 

결정적으로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 기간 중에 중국 외교부의 친강 대변인은 ‘한·미 동맹은 지나간 역사적 산물’이라는  논평을 함으로써 외교적 결례를 '의도적'으로 하게 되었다. 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최근 한국의 행보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시사IN>의 남문희 한반도 전문기자에 따르면 대미외교에서 우리가 북한·중국·러시아와도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한국을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두려워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 복원에만 몰입한 결과, 한국은 이제 미국에 아주 ‘편한’ 상대가 되었다고 남 기자는 우려했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강화를 외교의 최우선 의제로 설정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11일(현지시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내 시위의 반미성향이 짙어진다면 부시 대통령의 한국방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쇠고기 문제로 글로벌 파트너십의 구체화를 비롯한 양국간 현안이 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향신문 6월 13일자, "李정부, 스스로 ‘한미동맹 약화’…부시 방한 연기론도")

 

이명박 정부의 숭미는 결과적으로 반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명백해지고 있다.

 

원교근공은 강자의 외교 문법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유하자면 '원교근공(遠交近攻 )'이라 할 수 있다. '원교근공'이란 먼 나라와 친(親)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領土)를 넓히는 전략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한 외교(外交) 정책(政策)을 말한다.

 

진나라가 열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앙의 신법으로 인한 체제 개혁과 원교근공이라는 외교전략, 장의의 연횡책 등 많은 인재들의 기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량을 갖추고 진나라는 서서히 통일을 완성해 갔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멀리 있는 미국과 교류함으로써 가까이 있는 북한을 때리는 전형적인 원교근공책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같은 강대국이나 쓸 수 있는 전략이다. 얼핏 보면 순망치한과 원교근공이 서로 모순인 듯 보이지만, 순망치한은 약자의 수세적 외교 문법이며 원교근공은 강자의 공세적 외교 문법이므로 모순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을 등에 엎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셈이지만 영광은 너무도 빨리 끝나고 말았다.

 

강자의 틈바구니에 있는 약자는 매우 기민하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원전 308년 동주의 안솔이 진나라에게 썼던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난왕 7년(기원전 308년) 진나라가 천자의 보물인 구정(九鼎)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주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안솔은 이웃 나라인 제나라로 가서 자신들을 구해주면 구정을 내놓겠다고 회유했다. 제나라는 이 말을 믿고 군사 5만을 출동시켜 주나라의 위기를 구해 주었다.

 

안솔은 나라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구정이라는 보물도 지킬 수 있었다. 구정의 이동 경로를 문제삼은 것이다. 양나라의 길을 빌리면 양나라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고, 초나라의 길을 빌리자니 초나라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보물이기 때문에 제나라는 맥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안솔은 제나라 왕에게 "어찌 감히 대국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어떻게 옮길 것인지 속히 결정키 바랍니다. 우리는 구정을 옮길 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시치미를 뗐다. 약자가 살아남는 방법은 이와 같아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욕망만 채워주고 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국책》 중 <동주책>)

 

전국시대에 진나라와 대항하던 열국의 유세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의 땅은 한정돼 있지만, 진나라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땅은 다 없어질 것입니다." 이 말에서 '진나라'를 '미국'과 바꿔 쓰면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전국책

유향 지음, 여설하 엮음, 학술편수관(2014)


#이명박 외교#전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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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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