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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된 평택항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전국의 주요 항구와 컨테이너 기지는 사실상 마비됐다.
마비된 평택항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전국의 주요 항구와 컨테이너 기지는 사실상 마비됐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화물연대의 요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곽인섭 국토해양부 물류정책관)

"더 얘기할 게 있느냐." (심동진 화물연대 사무국장)

 

마치 서로를 향해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 같았다. 지난 17일 저녁, 정부와 화물연대 간의 11번째 간담회가 열린 서울 방배동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화련회관. 간담회 시작 전 양쪽은 얼굴까지 시뻘게지며 설전을 벌였다.

 

곽 물류정책관은 표준요율제 연내 법제화, 유가보조 확대, 노동기본권 확대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서 "얘기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심동진 사무국장은 "파업의 장기화만 가져오는 무책임한 태도"라며 "내일 전 조합원 동원령을 내리고 조직을 재정비해 강력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 사무국장은 협상 전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얼굴을 붉히고 나가지 않겠느냐"고 했었다. 그의 말처럼 이날 간담회는 시작부터 파국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취재진이 정부와 화물연대 쪽에 "오늘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느냐, 간담회를 하긴 하느냐?"고 질의할 정도였다.

 

결국 이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지 30분 만에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추후 협상 날짜도 잡지 못했다. 심 사무국장은 "곧 앞으로 더 협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론을 내려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 없는 정부의 파업 대응... 신뢰 잃은 대화 뒤엔?

 

 화물연대는 지난 9일 저녁 서울 대림동 화물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1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지난 9일 저녁 서울 대림동 화물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1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정부-화물연대 간의 협상 결렬은 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른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금껏 대화로 화물연대 파업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7일 오후 5시 5개 부처 장관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협상 내용을 공개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핵심 쟁점에 대해 대화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화물연대는 노동기본권 보장, 금년 중 표준운임제 법제화, 유가보조금 지급기준 인하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며 집단행동을 장기화하려고 하고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

 

정부 협상대표인 곽인섭 물류정책관이 가장 자주하는 말 중의 하나는 "협상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 담화문의 내용은 이러한 협상의 원칙을 뒤집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쟁점들이 이미 양쪽의 공감대를 이룬 사안이라는 것이다. 핵심 쟁점인 표준요율제와 관련,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이뤄진 지난 16일 한나라당-화물연대 만남에서 한나라당은 "표준요율제를 조속히 실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당시 한나라당은 올해 9월 법제화, 내년 7월 시행 등 화물연대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껏 화물연대는 처벌조항을 넣은 표준요율제의 2009년 7월 시행을 요구해왔고, 지난 정부에선 표준요율제 실시에 공감을 이뤘다.

 

하지만 현 정부가 이를 깼다. 곽 물류정책관은 17일 저녁 11차 간담회에 앞서 "선법제화는 불가능하다, 표준요율제에 대해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시범 운영을 거쳐, 그 때 가서 필요한 법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요율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화물연대에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오승석 화물연대 수석부본부장은 "대형 화주에 대한 눈치 보기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부, 강경 대응 선택... "결국 파국 맞을 듯"

 

 화물연대는 "비조합원들도 물류를 멈추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비조합원들도 물류를 멈추었다"고 밝혔다. ⓒ 윤성효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대화 대신 강경 대응을 선택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 16일 업무개시명령제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화물연대를 압박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업무개시명령제를 발동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경한 법무부장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합동담화문을 발표하면서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는 집단적으로 화물운송 업무를 방해하는 불법행위"라며 "정부로서는 이런 불법행위가 지속된다면 부득이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승석 화물연대 수석부본부장은 "현 상황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화물연대에 대한 탄압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수경찰서장의 빨갱이 발언 등으로 화물노동자를 국민과 분리시키고 이후 탄압하려는 이명박 정부는 현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16일 화물연대가 요구한 노동기본권의 경우, 정부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가보조 확대 등도 추가 재정 부담 때문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화물연대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강경 대응 선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양쪽의 줄다리기를 통해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우리의 요구는 먹고살게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번 사태가 정부의 약속 불이행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정부의 강경대응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호근 전북대 법대 교수는 "정부가 5년 전처럼 말로만 하면 안 된다"며 "표준요율제, 유가보조 확대 등에 대해 정부가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는 이론에 갇히지 말고 현실의 사태 해결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생계 문제는 강경한 대응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물리적으로 대응하면 화물연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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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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