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작지·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로, 여기에는 목본식물까지도 포함시키는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병균과 벌레의 서식처 또는 번식처가 되고 작물의 종자에 섞일 때는 작물의 품질을 저하시킨다. (두산백과사전 encyber)
분명히 '잡초'라고 불리는 식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반가운 존재이기보다는 번거롭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그것을 무서운 칼과 낫으로 베어 내고 제초제를 이용 성장을 억제해 죽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쓸모없어 '잡초'라 부르는 식물들은 다시 굳건하게 살아나 자신들의 존재감을 더욱 뽐내곤 한다.
민들레, 쑥, 냉이풀, 큰개불알꽃, 뚝새풀, 별꽃, 하눌타리, 털여뀌, 광대나물, 꿀풀, 앉은 주름잎, 부들, 띠, 큰도꼬마리, 나도물통이, 달맞이 꽃, 닭의 장풀 등 모두가 각각의 이름이 있음에도 우리는 통칭 그것을 '잡초'라고 부른다.
각각의 소중한 이름이 있음에도 '잡초'라 불리는 유쾌하지 않은 숙명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잡초>들의 이야기가 17일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영되었다. EBS교육방송의 창사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잡초>는 그 제목에서 느껴지는 '불필요한 존재'의 이미지와는 달리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가지는 그것 나름대로의 필요성과 개체의 다양성, 그리고 환경적 역할 등에 관한 이야기를 미속촬영 등 특수촬영기법을 활용해 신비롭게 소개했다.
그동안 국내 방송에서는 수차례 <잡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8년 1월에 MBC가 신년 특집으로 2부작 <잡초>를 방영했으며, 그 이듬해인 1999년에는 KNN부산방송(당시PBS)가 <콘크리트 생명보고서 "잡초">라는 제목으로, 또 2006년 충주MBC가 <잡초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인간과 잡초의 상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왜 각 방송에서는 그리 별다를 것 없는 '잡초'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그저 잘라버리고 뽑아내며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잡초'에 대해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어떠한 매력을 느꼈던 것일까?
EBS 창사특집 <잡초>를 연출한 이의호 감독은 EBS 사보 <한> 6월호의 관련 기사에서 잡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2005년, <흙>을 제작하면서 '흙'이 '잡초'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잡초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생명체 중에서 가장 하층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경이로움까지 느꼈죠." (EBS <한> 6월호 인터뷰 중)그리고 <잡초>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 프로그램을 취재 촬영 편집 작업까지를 담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의호 감독은 카메듀서(카메라맨 + 프로듀서)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이의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처럼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내가 아닌 주변으로 눈을 돌리고, 또 나의 발밑에 밟히는 작은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이야 말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가져야 할 많은 제작의식 중 한 가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잡초'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의 완성이 감독의 <잡초>에서 인간의 모습은 그저 배경의 순간으로 스쳐 지날 뿐이다. 약 45분간의 프로그램 길이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주체는 역시 '잡초' 일색이다. 프로그램의 제목 그대로 '잡초'가 주인공인 셈이다.
그동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경험했던 ○○대학 교수님의 인터뷰나 식물 전문가 혹은 연구원들의 '뻔한 인터뷰' 같은 것은 일절 배재됐다. 그럼에도 내용이 구태의연하거나 지극히 일반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잡초를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기만 하다.
이는 아마도 이 감독과 제작진들의 '잡초'에 관한 오랜 학습의 결과인 듯하다. 실제 이 감독은 EBS 사보 <한> 인터뷰에서 "잡초의 생태에 대한 연구 자료가 부족해서 혼자 생태연구를 하면서 초단위로 관찰하고 촬영해야 했어요"라면서 "때문에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큽니다"라고 토로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있어서 전문가 인터뷰는 최소 10초에서 30초, 길게는 1분까지도 프로그램 시간을 소위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반드시 시간을 메우는 방법으로 이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인터뷰 내용이 프로그램 구성에서 차지하는 역할 즉 구성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편으로도 이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잡초>는 프로그램 길이를 벌고,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 할 수 있는, 이러한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오직 '잡초'에게만 포커스를 집중했다.
미속촬영을 통한 자연의 변화 볼 만인간이 그렇게도 심하게 편애하는 '잡초'가 척박한 환경에서 굳건히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땅(흙)이 원하고 곤충과 동물이 원하며 우리 지구가 원하기 때문이라고 프로그램은 말한다.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작은 꽃이 만약 튤립이나 장미와 같이 큰 꽃 봉오리와 진한 꽃향기를 가졌다면 그것은 이미 잡초가 아닌 아름다운 한 송이의 고유한 이름을 가진 꽃이 된다. 그러나 '잡초'라 불리는 작은 꽃과 풀들에게 있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작물을 기르는 데 처치 곤란한 불필요한 개체의 하나일 뿐 그 존재는 철저히 외면된다.
그래서인지 잡초는 대부분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칼로 베어 내고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어도, 그리고 제초제로 성장을 억제 시켜도 굴하지 않고 또 자라 생명력을 이어간다. 다큐멘터리 <잡초>는 이러한 잡초의 성장과 사멸 그리고 세대를 잇기 위한 불굴의 노력을 미속촬영 기법을 활용해 신비롭게 전하고 있다.
낮과 밤의 변화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식물들이 적응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미속촬영의 기법과 컴퓨터 그래픽을 합성해 매우 사실적으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평소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연변화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제초제 살포에 따라 독(毒)을 뒤집어 쓴 채로 생명을 다해가는 논두렁의 잡초 모습은 미속촬영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더불어 동일한 지역을 오랜 시차를 두고 촬영한 후 계절의 변화를 단번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디졸브 등의 편집을 통해 자연다큐멘터리는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어느 제작자의 말을 상기하게 한다.
흙과 자연 그리고 잡초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보호되어야 하나 인간의 과욕으로 결국 그것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산업화가 지속되면서 자연환경은 그 범위가 축소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은 점차 감소하며, 심지어 멸종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연환경이다. 이러한 때 다큐멘터리 <잡초>는 우리 인간이 가지는 욕심으로 인해 '잡초'라 불리는 식물들이 어떻게 신음하고 있으며, 그 결과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이야기 한다.
큰개불알꽃, 뚝새풀, 별꽃, 하눌타리, 털여뀌, 광대나물 등 이름도 생소하고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꽃을 가진 통칭 '잡초'라 불리는 식물이지만 이들에게는 분명히 자연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땅 속 흙과의 관계, 공기와 태양과의 관계, 곤충과 동물, 그리고 미생물과의 관계 등 어찌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식물, 끝없이 자신을 내어 주고도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생명력을 가진 잡초.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음에도 꿋꿋이 생명을 품어 내는 이 초록빛 식물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기적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고 이 감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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