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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천재가 한 도시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곳을 말한다면 나는 단연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를 말할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고대로부터 소금의 산지로 번성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중세 이후에는 음악의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매년 음악축제를 개최하는 잘츠부르크의 음악 역사의 중심에는 바로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가 있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바로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 Gasse) 한복판이다. 나와 나의 가족은 이 번화한 거리에서 모차르트 생가의 입구를 찾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생가 입구 주변에는 늘 단체 여행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생가 진한 노란색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 모차르트 생가 진한 노란색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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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 금지? 관리원 몰래 '찰칵'  

모차르트 생가는 건물 외벽의 색다른 색상 때문에도 유독 눈에 띈다. 12세기에 지어진 모차르트 생가건물은 주변의 회색빛 건물들과 달리 온통 진한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노란 색상은 최근에 다시 도색을 한 듯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는 건물 전체를 모두 덮을 만한 오스트리아의 붉은색 국기가 건물 2층까지 드리워져 있다. 국기의 붉은색 두 줄은 마치 이곳이 모차르트 생가임을 알리는 이정표 같다.

과거와 달리 모차르트 생가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으면 될 것 같은데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으면 변질될 국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만큼 과보호되고 있는 모차르트 생가 내부를 조심스럽게 사진 찍어보기로 했다. 생가 내부 4층에 관리원은 1명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볼 때 관리원의 위치가 사각지대로 들어가면 조용하고 신속하게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관리원도 대충 눈치는 챈 것 같은데 나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1756년에 이 건물 3층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17살이 되던 1773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잘츠부르크의 번화가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중산층의 자녀로 태어난 그는 이 집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생가 부엌 오랜 세월의 그을음이 남아 있다.
▲ 모차르트 생가 부엌 오랜 세월의 그을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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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모습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 곳은 바로 부엌이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부엌 벽과 바닥, 그리고 목재에는 세월의 때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부엌에 놓인 솥은 검게 그을려 있고 황동 그릇들도 골동품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궁이에는 불을 지피려는 듯 장작이 들어있고, 부엌 작은 창문으로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차르트 생가 앞 광장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 모차르트 생가 앞 광장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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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리원이 지나가자 사진을 안 찍는 척 살짝 밖을 내려다보았다. 모차르트 생가 앞 광장에는 두 무리의 단체 여행자들이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마루 바닥이 깔린 방 한 가운데에는 작은 피아노가 놓여 있다. 피아노가 너무 작아서 피아노가 맞는지 설명문을 읽어보려고 하였으나, 그 피아노 위에 적힌 것은 '만지지 마세요'였다.

모차르트 생가 내부 당시의 악기들과 초상화가 전시 중이다.
▲ 모차르트 생가 내부 당시의 악기들과 초상화가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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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신체를 만나는 흥분

모차르트 기념관 내부는 새로 흰색 페인트를 칠한 듯 벽면이 티끌 하나 없이 말끔했다. 그 흰 벽면에는 모차르트 가족의 초상화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초상화에는 무대복을 입은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의 누나, 아버지, 부인, 아들이 각각 그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거실로 썼을 넓은 방 안에 그 당시 그대로인 가구와 생활도구들을 전시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에 살던 방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작은 방 안에는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작은 침대가 놓여 있고 침실 벽면에는 그림 액자가 잔뜩 걸려 있다. 그 다음 방에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등의 악기 외에 자필 악보, 교본, 편지, 콘서트 티켓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빠, 여기 와서 봐봐! 여기 모차르트 머리카락이 있어! 으악, 소름 끼쳐! 엄마, 와서 봐봐."

생가 전시물 중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모차르트의 금발 머리카락이다. 악보가 그려진 벽면에 둥그런 시디 같이 생긴 전시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차르트의 머리카락을 넣어 두었다. 금발의 머리카락을 묶어 둔 전시물 설명에 '모차르트 머리카락'이라고 해두었으니, 거짓말은 아닐 듯싶다. 다른 어느 전시물보다도 모차르트의 신체 일부를 실제로 만난다는 사실에 적잖이 흥분되었다.

오페라무대 미니어처 모차르트 오페라 작품과 관련된 미니어처가 전시 중이다.
▲ 오페라무대 미니어처 모차르트 오페라 작품과 관련된 미니어처가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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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차르트 초콜릿'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 초연 당시의 무대 등 오페라 무대와 함께 오페라에 사용되는 소품들이 미니어처로 재현되어 있다. 관광객들에게 중세의 평범한 집만 보여주기에는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만들어 놓은 작은 박물관이었다.

모차르트 생가는 얼핏 둘러보기에 전시물들이 화려하지는 않다. 그래서 비싼 입장료가 아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의 수도 잘츠부르크에 와서 모차르트 생가를 와보지 않았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모차르트 생가는 돈이 아까우면서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관광지다. 음악인이거나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이곳에서 훨씬 많은 감흥을 느낄 것이다.

모차르트 생가 구경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2층 출구 앞에 모차르트 생가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이 가게에서는 모차르트 음악 시디,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장식 자석, 걸어두는 목각인형, 모차르트 볼펜 등 다양한 기념품이 있다. 모차르트 생가의 가게답게 모든 기념품은 모차르트를 주제로 만들어져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오스트리아 전역에 깔려 있는 모차르트 초콜릿이다. 초콜릿 포장지가 진한 붉은색으로 되어 있어서 식욕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에 오스트리아에는 초콜릿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모차르트도 이 초콜릿과 직접 연관이 없지만, 초콜릿에 '모차르트' 상표를 붙임으로써 이 초콜릿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초콜릿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신영이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이 초콜릿을 살까 하다가 '모차르트 볼펜'을 무더기로 샀다. 신영이 반 친구들에게 모두 주기 위해 기념품 판매대에 걸려 있는 볼펜을 쓸어 담듯이 집어 와서 계산했다. 물론 볼펜은 가격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생가 기념품 가게는 온통 '모차르트'를 팔고 있다.
▲ 모차르트 초콜릿 모차르트 생가 기념품 가게는 온통 '모차르트'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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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을거리에도 역사가 누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차르트 초콜릿'은 오로지 많이 팔기 위한 상업 용도로 최근에 만들어져 기념품 가게에 납품되고 있을 것이다. 억지로 만든 역사 속에 끼어 들어간 모차르트는 초콜릿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수많은 모차르트의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잘츠부르크#모차르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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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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