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써오던 샤프펜슬을 버리고, 연필로 바꿨습니다. 이것저것 쓰는 것이 많아서인지, 손잡이 부분에 고무코팅이 되어 있는 샤프는 그다지 오래 못갑니다. 대략 일 년에 한 자루씩 새로 사고는 했는데 쓰다보면 금방 싫증이 나곤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편하다는 이유로 연필 대신 샤프펜슬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고, 주위에서 연필을 사용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 와서 의아하게 여겼던 것 중에 하나가 연필을 많이 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샤프를 애용하지만, 연필을 사용하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많이 보인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는 참 ‘신기한 나라’구나 하는 감동을 줬던 것 같습니다.
샤프펜슬의 꼭지를 꼭꼭 눌러대는 신식의 편안함을 추구했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느긋하게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고 있는 일본 젊은 친구들의 구식 스타일에 어떤 순수함을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필자는 이곳 대학에서 대학입학시험이나, 대학기말고사의 시험 감독관으로 가끔 일을 하곤 합니다. 시험지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여기저기에서 연필을 꺼내놓고 시험에 임하는 학생을 많이 보곤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감시 하에 연필로 시험을 치르는 풍경을 보면, 재미있어 혼자서 가끔 피식 웃기도 합니다.
연필을 본격적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에 이곳의 어느 문학관련 기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써 본적이 없는 연필을 오래간만에 손에 잡았을 때, 연필이 이렇게 가벼웠었던가 하는 들뜬 감정에 신이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래 필기구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지라, 싸고 잘 써지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문제는 이곳의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부터 생겼습니다. 내가 악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글씨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너무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악필이 되었었던가를. 아마도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 둘 연필에서 샤프로 바꾸기 시작하면서, 노트필기를 누가 빨리 하나 시합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빨리 쓰려면, 글씨를 흘려 써야 했거든요. 그 때부터 글씨가 엉망이 되었던 같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글을 예쁘게 쓰려면 샤프와 볼펜을 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필과 만년필로 한자 한자, 마지막 한 획까지 천천히 써 버릇하지 않으면 언제나 악필로 남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조금 불편한 필기도구로, 천천히 끝까지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도 예쁜 나만의 개성 있는 글씨를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hani.co.kr/sakebi/1104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