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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꽃이 한창이다. 인동초(忍冬草)란 이름 그대로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잎이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아 강인하고 줄기찬 생명력의 원동력으로 상징되는 풀이다.

 

인동꽃은 초여름이면 두 송이의 하얀 꽃을 피워낸다. 겨울을 이겨낸 꽃답지 않게 꽃물은 맑고 여리다. 시간이 지나면 하얀 색은 노랗게 변해간다. 그래서일까, 우리 동네 촌부들은 인동초를 ‘금은화’라 부른다.

 

 인동꽃은 어미새가 노란 주둥이를 한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다.
인동꽃은 어미새가 노란 주둥이를 한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모습이다. ⓒ 윤희경

오랜 옛날, 이곳 삼팔 접경 양지말에 쌍둥이 자매가 살았다. 쌍둥이들은 마음 씀씀이가 곱고 예쁜 짓만 골라해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꽃처럼 태가 고와 언니를 ‘금화’, 동생을 ‘은화’라 불렀다. 그런데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요새말로 장티푸스 ‘염병’이었다. 금화가 먼저 병에 걸려 몸이 여위고 머리가 하나둘 빠지더니 은화에게로 옮아갔다. 몹쓸 병은 동네를 휩쓸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죽기 전날 밤,

“언니, 이제 우리 죽는 거야.”

“그렇단다. 염병 앞엔 장사가 없다는구나.”

 

“왜, 하필 돌림병이야?”

“글쎄 말이다.”

 

“언닌, 죽으면 뭐가 되고 싶어?”

“약이 되는 산야초면 어떨까?”

 

“약초?”

“그래, 약초로 다시 태어나 우리처럼 몹쓸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고 싶어.”

 

“나도 같이 태어날 수 있을까?”

“그럼, 우린 쌍둥이니까.”

 

 흰색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한다. 그래서일까, '금은화'라 부르기도 한다.
흰색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한다. 그래서일까, '금은화'라 부르기도 한다. ⓒ 윤희경

동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를 가마니뙈기에 뚤뚤 말아 양지 말 뒷산 돌 무덤가에 묻어줬다. 이듬해 봄, 무덤가에 덩굴이 솟기 시작했다. 곧 은색 꽃이 피어나고 금색으로 변했다. 두 송이의 꽃은 자매의 얼굴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넋이 되살아난 것이 틀림없다며 ‘금은화’라 불렀다는데….

 

인동초는 자매의 넋이 깃들어 여러 질병에 효험을 보이고 있다 한다. 폐경, 비경, 심경, 해열, 해독, 갈증 해소, 세균성 질환, 장염, 간염, 황달, 수종 등 만병통치약이라 하지 않던가. 뿐이랴, 인동초의 어린 꽃순과 잎줄기를 따다 그늘에 말려 차로 마시면 몸이 개운해 온다.

 

 분홍색도 있다.
분홍색도 있다. ⓒ 윤희경

무더운 여름날에도 인동초의 하얗고 노란 꽃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시원해온다. 마치 하얀 어미 새가 노란 주둥이를 한 새끼에게 먹이를 주려고 파르르 떠는 몸짓 그대로다. 또 가끔 삶이 버겁고 힘들어 참고 견디어야 할 일이라도 생기면 정지용의 <인동차>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 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서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 <인동차> 전문

 

시인은 인동차를 마시는 노 주인을 통해 일제 암흑기의 ’현실 극복의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동차에서 우러나는 인내의 힘, 산중에서의 적막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는 동양화를 보듯 여백의 미(餘白美)가 흘러내린다. 

 

 인동 덩굴이 나무를 옥조이고 있다.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려 꽃을 피워낸다.
인동 덩굴이 나무를 옥조이고 있다. 긴 세월을 참고 기다려 꽃을 피워낸다. ⓒ 윤희경

세상이 어수선하다. 또 장마가 북상하고 올 여름도 무척 덥겠다는 예보이다. 이 여름을 시원하고 무사하게 보내자면 아직도 저 인동초에서 우러나는 ‘참고 견딤’의 깊은 속내를 맡아가며 ‘새로운 봄’을 기다려야 할까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카페 '북한강 이야기',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 정보화 마을 '인빌 뉴스'에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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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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