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강의 벽창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여중고생들이 처음 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이 5월 2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나는 동안 이른바 ‘촛불정국’은 참 숨 가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 지상 최강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위대에 맞서고 있는 분은, “뼈저린 반성”을 하신다더니 이미 한 달 전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배후”를 다시 제기하시는가 하면,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불법시위”라는 말도 꺼내고 계시잖아요. 지상최강의 벽창호라고 불러드려도 뭐 별로 틀릴 것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이 지상최강의 벽창호를 그 자리에 앉혀놓았을 뿐 아니라 그 분이 소속된 ‘그 정당에게 압도적인 표를 던진 사람은 또 누구냐?’라는 질문입니다. 이때부턴 이야기가 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B급 좌파’라고 칭하는 김규항씨는 요 며칠 전 “이명박 당선의 가장 큰 공신은 노무현 정권이며 달리 말하면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사람”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 안의 대운하”라는 글을 통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사실은 “가치관 전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요.
이런 지적들은 김규항씨 혼자서 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난 4월, 총선 직후 도법스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경스님과 함께 삼보일배라는 불가(佛家)의 수행방식을 저항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주셨던 도법스님의 강연은 그 자체가 죽비였습니다.
‘살아 있는 강’을 ‘인공구조물’로 바꾸는 것이 대운하의 정체이며, 더불어 우리 안의 욕망이 이 터무니없는 대공사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하셨거든요. 두 분의 지적이 뼈아프지만, 그 ‘지상최강의 벽창호’께서 ‘시장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 ‘시장경제’를 ‘재래시장의 경기’라고 이해했던 시장상인들이나 “저 좀 살려주이소”라면서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토로하며 그 분을 지지해달라고 했던 청년을 설득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선민국(直線民國), 대한민국
자신을 C급 경제학자(A급은 이론을 세우고, B급은 이론을 수정하고, C급은 이론을 적용한다는 의미에서)라고 부르는, 우석훈 박사가 이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 경제학자 시선에서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88만원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우 박사는 지난주 웅진 지식하우스에서 발행된 <직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무엇으로 이 불도저를 세울 수 있을 것인지를 제안합니다.
그는 2005년 태안 주민들이 천수만에 도래하는 철새들을 쫓기 위해 갈대밭에 불을 지른 사례를 언급하면서 ‘지역민들의 삶의 딜레마’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선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있으며 철원과 강화도 인근에 매년 400마리 정도가 찾아오는 학에게 지역주민들이 농약을 먹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의 이런 예상을 두고 지나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경고가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제의 사례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4월에 제가 직접 찾아갔던 우포늪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은 아주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보존되고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있는 창녕환경운동연합의 송용철 의장님은 우포늪을 지금의 현 상태로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지역주민들의 각성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김태호 경남도 지사는 “경부운하도 람사르 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해당 한다”(시사IN 33호, 4월 30일, “대운하에 짓눌린 습지의 아우성”)라고 주장하고 계셨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부운하가 들어서면 우포늪과 그 젖줄인 낙동강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한다고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늪지에 최소한 현재보다 3m이상의 제방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같은 기사). 지역주민들의 각성과 합의에 의해 보존되고 있는 우포늪도 ‘지역개발’이라는 구호 한 방에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운명인 겁니다.
선진국은 유기농이야
더 최악인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현재의 모든 정치집단들이 사실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벽창호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이 사례로 책에서 지적되는 것은 지난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지역 공약에는 ‘마찬가지로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이 오래전에 떨어진 ‘경인운하’가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공약에도 ‘하천변을 포장해서 공용 주차장을 만들자’는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앞서 두 분이 제기한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그 가치관의 변화는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초고층 아파트와 같은 직선들에 대한 동경이나, 속도의 문화에 중독되어 자전거를 타면서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이 대안으로 실제 사례들을 언급합니다. 반환경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토목’조차도 유럽에선 ‘생태 토목’을 연구하고 그 효율성을 인정하는 흐름이라고.
더불어 생태적 삶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토록 원하는 선진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협’을 통한 유기농 식단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시사IN 36호, 5월 19일, “유기농은 다 비싸다? 모르는 소리 마세요!” ).
아는 것이라곤 쌍팔년도부터 써온 ‘좌우’밖에 없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선 프레임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에 있어서 강남과 강북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좌와 우가 다를 수 없죠. 촛불정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공유된다면 Mr. 벽창호의 하야 여부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눈치만 보고 있었던 Mr. 벽창호님의 정부에서 드디어 내일 고시를 강행한다고 합니다. 급박하게 전개되어 가는 이 촛불 정국에서도, 우리의 길은 우리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길을 찾는 토론의 공간에 우 박사의 이 통찰이 더해진다면 진정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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