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의 얼굴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만화가 박재동 화백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그린 다양한 스케치 컷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박 화백은 <한겨레> 신문 창간 후 8년 동안 '한겨레 그림판'에 그린 만평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
이번 시위는 처음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는데, 장관 고시가 나간다고 할 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가 단체인 '우리만화연대'에서 6월 6일, 10일, 21일 서울광장에 모이기로 하여 이희재씨와 함께 나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그 도도한 물결에 놀랐다. 감동적이었다. 미선이 효순이 때도 나왔지만, 그보다 훨씬 강력하고 역동적인 물결. 더구나 알려진 대로 삼삼오오 모여서 토론하고 재치있는 글귀를 붙이고 퍼포먼스를 하고 연주를 하고….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에 누워 하늘을 보는 기분이란!
마치 그 큰 광장이 사랑방이 된 것 같았다. 평소 사람들은 서로가 소외되어 모두 공격적이고 방어적이면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인간의 모습을 맘 깊은 곳에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정겨웠던 밤. 그래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처럼 편안하고 정겹고 좋은 곳이 또 달리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모두 자기 집 안방처럼 여기저기 뒹굴며 잠자고 깨고 또 놀고 외치고 했다.
세계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자랑스런 우리 국민의 모습. 만화가 이희재씨와 나는 그림쟁이의 본능으로 스케치북을 꺼내어 그 놀랍고 역동적인 광경을 흥미로움과 흐뭇함 사명감을 지니고 그리기 시작했다.
이희재씨는 커다란 스케치북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알뜰히 담아 내었는데 내가 보기엔 가장 훌륭한 역사화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그린 야심적인 역사화! 나는 작은 스케치북에 컷들을 담았다. 모든 장면들이 소중했고 모든 순간들이 진했던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