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경험은 가장 생생한 리얼리티가 되어 몸은 '지금'에 존재하지만 정신활동은 여전히 '20년 전' (고문 당시) 근방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일상성이 완전히 파괴된 고문피해자 치유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지옥, 고문체험에서 비롯됐을 것"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함세웅 이사장)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영 상임의장)는 26일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을 맞아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기념대회를 열어 고문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제도·사회·문화·의료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이 1995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긴 했지만 고문을 근절하기 위한 법적 조치마련은 물론 고문피해자 치유에도 인색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는 과거 일어났던 고문 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사실조사를 실시하고 마땅히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며 "반인도 행위인 고문을 범죄로 규정하고 시효를 두지 않는 법·제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980년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았던 시인 황지우는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 낸 것은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것"이라며 자신이 태어나 겪은 양대 공포는 '굶주림'과 '고문'이라 말한 바 있다.
고문 피해자들에게 국가 공권력의 고문 앞에 힘없이 내던져진 피해자들에게 '고문'은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안기부장도 일주일 만에 간첩으로 만들 수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1985년 안기부에서 60일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고문을 당한 황대권(구미유학생사건, <야생초편지> 저자)씨는 "당시 날마다 고문을 받은 끝에 간첩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조서에 도장을 찍고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린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라도 안기부장을 단 일주일 만에 간첩으로 만들 수 있어. 암, 만들 수 있고말고!"
황씨는 또한 "나는 그때 고문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말하지 못할 채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홍성담(1989년 '민족해방운동상' 걸개그림 사건)씨는 안기부에서 당한 고문을 형상화한 그림 <욕조-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로 고문이 인간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다.
홍씨는 "출소 뒤에도 날마다 안기부에서 고문 받던 꿈을 꾸어 힘들었다"며 "그림을 그리는 작업장을 구하고도 혹시 또 고문했던 수사관이 잡으러 오지 않을까 해서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살펴보기도 했을 정도"라고 아픔을 털어놨다.
1982년 이른바 '송씨일가사건'으로 116일간 안기부에 불법구금 당한 채 고문을 당했던 송기복씨는 "왜 20명이 넘는 우리 일가족을 데려다가 그 끔찍한 고문을 했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고 절규했다.
송씨는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라며 "부디 재심이 열려 우리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 죽은 남편의 명예가 회복되고, 아이들의 피멍든 상처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함주명('고문경찰 이근안'의 고문피해자)씨는 "고문을 견뎌내는 힘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재심으로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고 소송으로 받은 국가배상액 일부를 고문피해자를 위해 써달라고 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국가기관이 저지른 조직범죄"... 정부, 조사·재심 등 나서야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고문사건 대부분은 국가기관이 저지른 조직범죄"라며 "고문 피해자를 방치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지금 정권도 야만성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문피해자 대책과 치유가 없는 지금 시대를 <야만시대의 기록>(총 3권, 역사비평사 펴냄)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는 박 변호사는 정부가 먼저 전반 사실조사를 실시하고 사과와 배·보상, 재심으로 원상회복을 비롯한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해왔다.
박 변호사는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고문으로 고통 받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 "내가 쓴 책에는 그나마 신문에 나거나 직접 변론하고, 자료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우리사회 고문 피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고문과 가혹행위라는 반인륜 범죄의 피해자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 있는 않다는 점에서 아직도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고문과 가혹행위라는 반인륜범죄를 포함한 인권유린에 감수성을 높이고, 이웃에게 벌어지는 공권력의 불법행사를 더 예민하게 관찰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고문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예외 없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재앙적 상황'이다"면서 "이것의 본질은 '죽음각인'에 있으며, 한 인간에게는 '영구적인 내적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고문의 반인간성을 설명했다.
"고문 피해자에게 존경을"
"오늘은 차마 말할 수 없던 사실들을 말하게 된 날입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온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입니다."
유엔총회가 1997년 12월, 고문방지협약이 발효된 6월 26일을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고 1998년 6월 26일 맞은 첫 기념일에서 코피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역설하며 지원을 호소했다.
당시 고문방지협약에는 미국·나이지리아·팔라우·마셜 4개국이 반대했다. 특히 미국은 '국제 감시단에게 무제한 사찰 권한을 주는 것은 견제와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은 1995년 2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했지만, 지금껏 국회 비준이나 예방기구 설치 등을 미뤄왔다. 인권위는 그동안 협약비준을 촉구하는 한편 국가예방기구 역할을 인권위에서 수행할 것임을 밝혀왔고, 실제 구금시설 등 시설과 제도 개선을 권고해 왔다.
이날 대회에는 고문피해자 사례증언으로 송기복·황대권·홍성담·함주명씨가 참여했으며, 정혜신씨(정신과전문의), 박원순 변호사, 이화영씨(내과 전문의) 등이 참여해 고문치유 대책과 고문법제와 현실·개선방향 등을 논의했다.
사회는 그자신도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바 있는 강용주(가정의학과 전문의)씨가 맡았다. 그는 고문피해자 치유모임을 진행 중이다.
참가자 소개 |
송기복
1982년 발생한 이른바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 관련자. 당시 안기부는 한 가족 29명을 연행하여 "80년대 최대의 간첩단 사건"으로 발표하였으나 모든 공소사실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조작간첩 사건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다. 7차례에 걸친 핑퐁재판으로도 유명한 사건. 송기복씨는 안기부에서 116일 동안 불법 장기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 수사를 당하였고, 이 사건으로 공군 중령이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강제예편 되었다.
황대권(생태운동가, <야생초편지> 저자)
미국유학중이던 1985년 잠시 한국 집에 왔다가 안기부로 연행, 62일 동안 불범감금된 상태에서 물고문 등을 당함. 교도관의 눈을 피해가며 작성한 <나는 어떻게 하여 간첩이 되었는가>를 통해 안기부에서 당한 고문을 생생하게 폭로하였다. 1994년 고문수사관을 고소하였으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홍성담(화가)
1989년 8월 평양축전에 보낸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사건으로 구속. 자신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의 몽타주를 그려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은 인적사항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 하였다. 2003년 홍성담은 22일 동안의 안기부에서 당한 고문을 그린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그림전을 열었다.
박원순(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80년대 인권변호사, 90년대 시민운동가, 2000년대 소셜 디자이너(Socal Designer). 오랫동안 시국사건 변론을 담당하면서 고문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10여년의 공력이 들어간 책 <고문의 한국현대사- 야만시대의 기록>을 펴냈다.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정신건강컨설팅기업 마인드프리즘 대표)
2005년 9월 국회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국가보안법을 진단하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진도 가족간첩 조작 사건' 청문회의 청문관으로 참여. 무죄판결난 함주명 사건(이근안 고문피해자)에서 법원에 의견서 제출 등 고문피해자들의 현재진행형인 고통에 공감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현재 고문피해자 치유모임 진행 중
이화영(내과 전문의/ 인권, 평화의학 연구소)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NCI)에서 암 연구를 하던 중 이라크 전쟁이 발생하던 해 미국에서 국제분쟁해결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분쟁해결 방법으로 의료와 평화, 의료와 인권을 접목하여 2007년 인권 의학(Medicine & Human Rights)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연세의대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권피해자들의 치유와 의료 활동가들의 훈련을 위한 인권클리닉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용주(가정의학과 전문의)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형 선고받고 1999년 2월 풀려났다. 수감 중이던 1998년 5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사상전향제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개인 통보(individual communications) 제출, 2003년 7월 인권이사회로부터 "한국의 사상전향제도가 국제인권규약 26조(평등권)와 제18조 1항(사상·양심의 자유), 제19조 1항(표현의 자유)을 침해한 것"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고문피해자 치유모임 진행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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