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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이주했을 때 마음 붙이는 방법으로 화분이나 혹은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는 길이 있다. 물을 주고, 가지를 쳐 주며 몇해동안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새 낯선 환경에 적응한 자신을 발견한다. 키운 건 나무였지만 도움을 받은 건 오히려 사람이다.

 

2백22명의 사람들, '복지세상'이라는 나무를 심다

 

 복지세상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복지세상 창립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 윤평호

지역에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1998년 6월23일 시민 2백22명이 모여 하나의 나무를 심었다. 약칭인 '복지세상'이라는 말로 더 익숙한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다.

 

10년의 역사 속에 나무는 창립 당시 보다 회원 수가 3배나 증가하며 천안은 물론 전국에서도 주목받는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복지세상의 성장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눔에 기반해 출발, 나눔과 기부를 독특한 활동방식으로 구현한 점도 크다.

 

시민단체는 이슬을 먹고 사는 천상의 존재가 아니다. 단체 유지와 활동을 위해서 사업비는 물론 상근자들의 인건비, 사무실 임차비 등 제반 운영경비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이런 돈을 어디에서 마련할까?

 

복지세상은 매달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단체 소식지에 재정보고를 싣는다. 지난 5월 재정보고를 보면 복지세상의 5월 총 수입은 1416만원. 전월 이월금 706만원을 제외하면 5월에 발생한 순 수입금은 710만원이다. 재정보고에 따르면 순 수입금의 77%는 회원들의 회비, 11.4%는 이사회비이다. 회원회비와 이사회비를 합한 금액이 순 수입금의 88.4%를 차지한다.

 

같은 달 기준 복지세상의 회원 수는 6백63명. 5월의 경우 등록 회원 6백63명 가운데 5백18명(78.1%)이 적게는 3천원에서 5천원, 많게는 2․3만원까지 회비를 빠짐없이 납부했다.

 

모든 시민단체가 복지세상처럼 수입의 대부분을 회원들이 기부하는 쌈짓돈에서 충당하는 것은 아니다. 회비 비중이 적은 시민단체들은 다른 곳에서 경비를 조달한다. 정부 보조금과 각종 공모사업의 지원비가 대표적인 창구이다.

 

재정난을 타개하는데 정부 보조금과 공모사업 지원비는 약도 되지만 시민단체에게 독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아닌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단체가 올곧게 시민 입장에서 활동하고 시민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까. 부족한 재정을 메우느라 공모사업 수주와 집행에 허겁지겁인 시민단체가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결국은 관변화, 시민 없는 시민단체로 귀결된다.

 

복지세상의 소식지 맨 뒷장에 적힌 "복지세상은 정부 보조를 받지 않고 회원님의 회비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라는 글귀가 값진 이유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소유한 물질과 능력을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나누는 시민들은 '특별한' 시민들일까. 아니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최종옥(47·천안시 다가동)씨는 복지세상 창립 첫해인 지난 98년부터 한번도 거르지 않고 줄곧 복지세상을 후원하고 있다. 그가 복지세상 회원으로 매달 내는 회비는 2만원. 최씨는 "사업체 운영으로 바빠 직접 참여는 어려워 회비만 납부하고 있다"며 "단체의 성장과 활동을 회원으로 도우며 지켜보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박은정(19·천안시 신방동)양은 복지세상의 고교생 동아리에 참여한 것을 인연으로 올해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회원 가입했다. 현재 은정양은 매달 1만원씩 용돈을 쪼개 복지세상에 기부한다.

 

지난 2002년 복지세상 회원에 가입한 강명화씨는 나눔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아이에게 복지세상 회원 가입을 권했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은 지금까지 매달 3천원을 복지세상에 회비로 기부하고 있다.

 

나눔은 또 다른 나눔 잉태, 복지세상의 '창조적인 나눔'

 

 '복지세상' 창립 10주년 기념식과 후원의 밤 행사에서 단체 대표들과 실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복지세상' 창립 10주년 기념식과 후원의 밤 행사에서 단체 대표들과 실무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윤평호

복지세상은 단체 창립의 종잣돈과 창립 초 운영경비를 초창기 복지세상 이사 스무명이 십시일반 제공했다. 단체 창립 이후에는 회원들의 나눔과 기부가 가장 큰 버팀목. 이렇게 출발 자체가 나눔에 기반한 복지세상은 10년 역사 속에 창조성이 더해지어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잉태하는 전형을 보여줬다.

 

복지세상의 창조적인 나눔은 '사회복지 인큐베이터'가 첫 번째로 꼽힌다. 사회복지 인큐베이터란 미숙아로 태어난 신생아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일정기간 힘을 보태주고 지원해주는 인큐베이터처럼 각 사회복지 영역의 당사자가 개별 단체를 만들어 독립하도록 돕는 활동을 뜻한다.

 

그동안 복지세상이라는 인큐베이터를 통해 창립한 천안의 복지운동단체들은 5개. 2000년 지역사회 정신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시작으로 2001년 2월 충남장애인부모회, 2003년 3월 미래를 여는 아이들, 2004년 1월 충남여성장애인연대, 2005년 5월 사회복지법인 노인복지 건강센터 느티나무가 창립했다.

 

단체들의 창립까지 복지세상은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여 동안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복지세상이 능력과 자원을 독점않고 나눔으로 확장하며 창립을 도운 이들 단체들은 천안지역 복지운동의 외연을 넓히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복지세상이 보여준 두 번째 창조적인 나눔 사례는 '네트워크 구축.' 복지세상은 나눔을 통해 새 단체의 창립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복지단체들과 나눔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지난 2002년 복지세상은 사회복지 분야 기관․단체 등 10여 곳과 '살고싶은 복지도시 천안네트워크(이하 복지천안네트워크)'를 결성해 시장 후보자 초청토론회 등을 개최했다.

 

2005년은 16개 사회복지기관․단체가 참여하는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 결성을 주도했다.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는 매년 천안시 사회복지예산의 정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복지사업 제안으로 시 복지예산의 확충에 큰 공헌을 했다. 복지세상의 네트워크 구축은 각 영역별, 단체별 장벽을 허물며 정보와 인력의 나눔과 소통을 불러왔다.

 

지난 10년에 안주하지 않고 복지세상은 더 나은 10년, 더 나은 100년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양진욱 복지세상 대표는 "언제나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진정으로 그 밑바닥으로부터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목이 마른 사람은 많지만 직접 우물을 파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무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복지세상은 창립 10주년을 경과하며 회원 1천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처럼 시민단체 후원은 나눔과 기부의 손 쉬운 방법이다. 키운 건 나무이지만 도움을 받은 건 오히려 당신이 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485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복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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