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경찰이 물대포를 쏘길래 눕자고 생각했던 겁니다. 길에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설마 폭력을 가할까,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누워있는 사람들을 폭력으로 제압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제 경찰이 군홧발로 때리고, 욕하고, 밟고 지나가더군요. 평생 이런 정권은 처음 봅니다."
이학영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은 많이 아파보였다. 입가에 간간이 웃음을 띠기는 했지만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 움직일 때마다 얼굴이 찡그러졌고, 말하는 것도 매우 힘겨워보였다. 무엇보다 이 총장은 지난 간밤(28일~29일)에 벌어진 무시무시한 경찰폭력에 치를 떨고 있었다.
총을 든 군인이 없었을 뿐이지 80년 5·18 광주 계엄사태와 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인터뷰 중간에는 이 엄청난 공권력의 폭력사태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 없어 주먹을 쥐다가도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군사정권 내내 비폭력 평화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이 총장이 민주정권으로 탄생한 이명박 정부에서 이 같은 일을 당했다는 데에는 어이없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 금강아산병원 205호실에 입원 중인 그를 만났다. 이 총장의 지금 심경은 분노를 넘어 차라리 기가 막힌다고 했다. 역대 정권 가운데 그 어떤 정권도 시민사회를 적으로 돌린 적은 없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너무 자신이 없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지난 29일 새벽 0시경. 이학영 총장은 수도권 YMCA 회원 7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 세종로 성공회성당 뒷길에서 경찰로부터 강한 폭행을 당했다. 경찰의 폭력진압 수위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이 총장 등은 '비폭력 평화시위'의 전형을 만들어보자며 "도로에 눕기 운동"을 제안한 것이다.
"경찰이 욕설 퍼붓고 곤봉으로 때리고 밟고 지나갔다"
이날 밤 이 자리에는 약 100여명의 남녀 시민들이 이 총장과 함께 도로에 누웠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200여명의 경찰들은 10명씩 20줄로 정렬한 뒤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곤봉과 방패로 사람들을 찍고 때리면서 군홧발로 밟고 지나갔다.
"너무 황당한 욕설들이어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요. 제 평생 그런 막말을 들어본 건 처음입니다. 움직이는 행태로 볼 때 어린 전경들 같지 않았어요. 폭력진압에 상당히 익숙한 직업경찰들로 보였습니다."
스크럼을 짜고 완전히 누워있는 이 총장 등 시민일행에게 경찰들은 30여분 동안 폭행을 가했다. 여성과 남성 구분 없이 모두 경찰로부터 얻어맞았고, 이 와중에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때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소용 없었다고 전했다.
"시민들이 사정하고 애원했어요. 소용이 없었어요. 방패로 사람들의 얼굴을 찍으려 해서 손으로 막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손목이나 팔에 골절을 입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총장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도 이런 일은 당해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때도 눕기 운동이 있었지만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얻어맞은 적은 없었어요. 경찰들이 들러붙어 한명씩 떼어내 연행했지 이렇게 경찰집단이 사람들을 밟고 지나간 적은 없었어요."
"살려달라" 애원도 무시한 경찰
시위대 폭력문제를 제기하는 정부를 향해 이 총장은 "새총 쏘고, 유리창 깨고, 차를 끌어내는 것이 폭력이라면 폭력일 수 있겠지만,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가 무장한 경찰들을 밟고 지나가는 무자비한 폭력은 없지 않냐"고 반문한 뒤 "이명박 정부는 폭력시위로 밀어붙여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정책의 잘못을 정당화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총장은 "아직도 이명박 정부는 과거 사고에서 못 벗어났다"며 "힘으로 국민을 통치할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시민단체 간사를 감옥에 보낸다고 또 방패 찍는다고 시민들이 생각을 바꾸겠냐"고 질타했다.
이 총장은 "정권이 일부러 시민사회를 반정부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시민단체를 적으로 만들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앞으로 YMCA전국연맹 등은 정부의 반인권적 행위에 지속적인 반대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비전이 없는 것 같다"며 "일등국민을 삼등정부가 끌고 가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것 같은데, 스스로 절대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총장은 "지금까지 경찰로부터 그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정권 바뀔 때마다 표변하는 경찰이 과연 지속적인 인권경찰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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