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새벽 1시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인권침해감시단' 이준형(41) 변호사는 서울 세종로 새문안교회 인근 큰길에 서 있었다. 광화문 뒷골목에서 밀고 당기던 시위대와 경찰이 '상호 인권침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었다.
동료 변호사 5~6명과 함께 변호사단 깃발을 들고, 노란색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있었다. 때마침 경찰이 7~8열 횡대로 서서 착착 발을 맞추었고, 급거 살수차에서 물대포가 쏟아졌다.
양복을 입고 있던 이 변호사는 물대포로 옷이 홀랑 젖으면 외관이 영 이상할 것 같아 투명한 우의를 한 벌 받아 입었다. 우의를 입었어도 '노란색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는 또렷하게 보였다. 경찰이 갑자기 너무 강경하게 들어오는 상황이어서 시민들이 다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좀 더 전진했다.
살수차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 물대포를 피해 45도 각도로 서 있던 이 변호사는 뭔가를 준비하는 듯한 전경들의 모습을 봤다. 5초간 적막이 흘렀을까. 시민들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이 변호사는 전경과 시민 모두를 향해 '천천히' '천천히' 외쳤다. 시민들이 뒷걸음치다 발이 엉켜 다칠까봐, 혹은 전경들이 시민들과 엉켜 다칠까봐 걱정돼 외친 외마디 소리였다.
그 뒤로, 기억이 없다. 피칠갑을 한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지만 이 변호사는 아무것도 몰랐다. 기억소실증. 일순간 기억이 사라지는 현상이다. 마침 구급차에 실려가던 이 변호사를 본 민변 간사가 핸드폰으로 전화했을 때 이 변호사는 "우리 지금 어디 가요?"라거나 "제가 광화문에 왜 갔어요?" 등의 말을 했다는 게다. 사선을 넘나드는 위중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피칠갑이 된 인권변호사... 경찰 살인미수로 고소
1일 오후 서울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에 입원중인 이 변호사를 만났다. 이 변호사는 아직도 누더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갈하고 깔끔한 법조인 이미지는 간 데 없고, 폭력사건의 주인공처럼 이마와 눈가, 코와 인중, 팔뚝 등에 시퍼런 멍 자국이 있었다.
그는 두개골 골절과 안와골절, 코 주변 뼈와 눈 주윗뼈 두 군데, 코뼈에 금이 갔다. 인중 밑이 찢어지기도 했다. 얼굴 피부가 벗겨졌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방패 날이 정확히 이 변호사의 이마를 직선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사고 직후 입안에선 흙이 섞여 나왔다. 이가 욱신거렸다. 누군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다.
이마에 금이 간 뼈 사이로 오염된 공기와 피가 들어갔다면 뇌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이 변호사는 병원 도착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항생제 주사를 맞고 있다. 뇌손상 여부는 계속 관찰해야 한다.
"제가 촛불집회에 20번 정도 나가서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했습니다. 경찰간부 대다수는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 다 알았어요. 경찰 지휘관들은 시민들이 너무 흥분해서 경찰버스를 포위할 때 자제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어요. 설사 제가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면 벌금 30만원이 최고형이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해도 50만원 벌과금인데 방패로 사람을 찍는 것은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이 변호사는 26일 경찰폭력에 항의하는 뜻으로 경찰을 살인미수로 고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경찰에게 방패를 주는 이유는 스스로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경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걸 흉기로 사용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다.
"이명박정부 막가파식 공포정치 하고 있다"
그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아무리 뒤져봐도 방패로 사람을 쳐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법을 떠나 상식적으로 비무장으로 서 있는 사람에 대해 경찰이 달려들어 방패로 얼굴을 가격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방패로 사람의 얼굴을 찍는 것은 경찰관직무도 아니고, 방어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경찰폭력을 분석해 보면 방패로 찍힌 부상이 상당히 많았다"며 "전경이 방패를 세워 얼굴을 가격하는 것이 당연지사처럼 돼 있는데 이것은 상부의 지시 없이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로 어청수 청장이 이에 대해 명백히 경위설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변호사는 "경찰은 항상 전경들에게 장비의 안전한 사용법에 대해 수시로 교육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함부로 방패를 세워 얼굴을 가격할 수 없다"며 "시민들의 얼굴을 방패로 가격해도 좋다는 경찰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에게 겁을 주고 공포감을 조성해 공포정치를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이명박정부는 이성을 잃었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체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막가파식으로 갈 데까지 가서 YS식으로 국민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며 "국가원수가 오너 뜻대로 모든 게 돌아가도록 하는 기업 CEO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전쟁 때도 안 건드리는 게 의사인데, 의사를 때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친 짓"이라며 "색깔을 덧씌워 몽둥이로 패서 정치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방패로 찍어놓고 사과 한 마디 없는 경찰그는 "노태우 대통령도 스스로 중간평가를 선택했었다"면서 "이 정도로 심각한 정치위기라고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재신임 투표를 통해 결정된 국민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68년 프랑스 혁명 때도 드골이 재신임투표에 따라 스스로 물러났던 일이 있다"고 말한 이 변호사는 "재신임 투표가 아니라면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국가운영을 할 수 없다"며 "비정상적으로 공안검사들을 동원해 협박과 공포정치로 국정운영을 한다면 국민도, 이명박 정부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거의 죽음의 목전까지 갔던 이 변호사는 아직도 경찰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다. 전화 한 통 없다. 시민과 경찰 사이에 발생할지 모르는 '인권침해'를 우려해 감시하던 인권변호사를 방패로 찍어놓고도 일언반구 없는 데 대해 그는 그냥 허허롭게 웃었다. 사과할 리 있겠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휴 안심이 됐어요. 그 뒤엔 뇌손상 징후가 사라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분명 전쟁이 아닌데,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민변은 2일 오전 11시 이준형 변호사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