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집에서 나온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SBS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드럼통으로 볼링까지 치는 달인을 비롯 3㎜든 5㎜든 손님이 원하는 대로 정확히 썰어주는 붕장어 달인, 30초에 총 192번의 가위질을 하는 미용사, 50㎏ 무게의 8인상을 한 손으로 들고 계속을 누비는 밥상 운반의 달인 등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달인이 됐다는 것. 지난 7월 1∼2일 광진구청 쓰레기 수거 현장에서 TV에서만 보던 달인을 만났다. 경력 19∼30년차의 환경미화원들은 대부분 몸집도 작고 다소 마른 평범한 어르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손수레에 싣고 오는 양은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들이 혼자서 냉장고를 옮기는 모습을 봤다. 손수레 한 쪽에 냉장고를 올린 뒤 순간적으로 나머지를 실었다. 젊은 사람 둘이 들어도 낑낑대며 할 일을 어르신은 연륜의 힘으로 거뜬히 처리하고 있었다.
장롱·책장 등을 처리할 때도 요령이 있다. 한꺼번에 많이 실으려면 잘 부순 뒤 차곡차곡 잘 쌓아야 한다. 내릴 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널빤지를 그냥 내려놨다가 옆 도로로 흐르기라도 하면 민원 대상이다.
한쪽에 치우는 달인이 있다면 또 한 쪽엔 버리는 달인이 있다. 환경미화원들이 지키고 있는데도, 눈을 피해 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형폐기물을 버린 뒤 시치미를 '뚝' 떼고 대책 없는 상태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버리는 달인보다는 안 버리는 달인이 많은 세상을 생각해본다. 그 때쯤이면 치우는 달인들이 '밥줄 끊기겠다'고 파업이라도 벌이지 않을까.
[저녁 9시] 28년 경력 이홍남씨, 무단투기를 말하다
1일 저녁 9시경 임시 집하장에 가니 그 새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다. 놀란 표정을 지으니까 반장이 "오늘은 많이 나온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하루에 보통 1.5톤 트럭이 예닐곱 번 정도 움직이는데, 일요일이나 월요일엔 그 두 배 정도 움직이게 된다고.
새로운 환경미화원 한 명이 부지런히 한쪽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중이다. 이홍남(58)씨. 환경미화원 생활 28년째다. 그는 퇴근한 뒤, 아침을 7∼8시쯤에 먹는다. 출근하기 전 2시쯤 점심을 먹고, 일하다가 9∼10시쯤 저녁을 먹는다. 지금껏 거의 변함없이 이 시간을 지키고 있다.
수레에 냉장고 한 대가 있고, 그 옆엔 또 다른 냉장고 한 대가 내려져 있다. 설마 혼자서 저 무거운 걸 들었을까? 물었더니, 이씨는 "혼자서 들었다"며 웃는다.
다 요령이 있단다. 한 쪽을 수레 위에 올린 뒤 순간적으로 힘을 줘서 나머지를 수레 위에 올린단다. 설명을 들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일을 하려면 단순히 힘보다 경험과 요령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엔 스티로폼 쓰레기가 많다. 최근 택배가 늘면서 많이 나오는 쓰레기 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것 안 만들어야죠. 허나 어떡하겠어요. 편리하려고 만든 것이니까."대형폐기물 쪽에 쓸 만한 물건이 제법 보인다. 나무 의자에 앉아서 "좋다"고 했더니, 등나무침대 이야기를 꺼낸다.
"정말 쓸 만한 것 많이 버려요. 언젠가 등나무침대를 소각장서 태우는데 너무 아까운 거예요. 태우면 또 석유도 들고…. 침대 시트도 많이 나오는데, 비닐도 안 벗긴 것도 많이 나와요."
쓰레기량은 예전에 비해서 줄었단다. 지금은 분리를 해서 처리를 하니까 예전에 비해서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도중 갑자기 반장이 나타났다. 무단투기 쓰레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 봐요.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갔어요. 여기 왔다가 우리가 있는 것 보고 살짝 돌아서 옆 공원에 버리고 갔네요."무단 투기하다 들켰을 때 반응은 두 가지. 미안하다면서 비는 것과 오히려 부인하거나 대드는 경우. 반장은 후자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택시를 타고 자양4동으로 갔다. 시각은 밤 9시 57분. 현장엔 자양3·4동 반장인 권오훈(51)씨가 있었다.
일행을 보자마자 첫 마디가 무단투기 문제다. 권씨가 언덕을 향해 앞장 선다. 이 동네는 언덕이 많아 평소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단다.
가장 많이 띄는 쓰레기는 스티로폼이다. 스티로폼은 부피가 커서 여러 번 실어날라야 한다. 권 반장은 "뒤돌아서면 나올 정도"라고 스티로폼 쓰레기량을 설명했다.
한 환경미화원이 0.5톤 용달차 '라보'를 타고 재활용쓰레기를 실어 나른다. 언덕지형이라는 점 때문에 손수레 대신 용달차를 끌고 나온 것이다. 물론 차는 개인차량이다.
근처에서 또 다른 환경미화원이 손수레를 단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린다. 경력 19년차인 한문석(61)씨다. 내년에 퇴직을 앞두고 있다.
처음엔 손수레를 직접 끌고 언덕을 오르내렸다. 눈이 오는 날엔 미끄러지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려갈 때는 더욱 위험했다. 오토바이로 바꾼 이유다.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거둘 때 쓰는 수단은 손수레, 오토바이가 끄는 손수레, 트럭 등 몇 가지가 된다.
[새벽 0시] 수거차가 왔다지금 시각 밤 11시. 쓰레기를 가져오는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다. 자정부터 새벽 1시 사이에 수거차량이 오면 새벽 4~5시까지 열심히 실어 날라야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네 명이 근처 해장국집에 갔다. 가장 싼 선지해장국이 3000원, 콩나물해장국이 3500원, 뼈다귀해장국이 4000원이다. 모두 뼈다귀해장국을 시켰다.
일행 중 한 명이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 비해 버리는 데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단다. 예전엔 미사리나 양수리까지 가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와야 하는데, 지금은 인근 강동구에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수거차량에 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수거차량이 쓰레기처리장에 도착하면 다른 지역에서 온 차량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숫자가 많으면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있다.
"한 번은 안성까지 간 적도 있다니까요."환경미화원과 처리업체 입장에선 처리시설이 가까울수록 좋다. 하지만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라면서 자기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 엄청난 설치비가 부담이다.
서울 몇개 구를 정해서 인근 지역 쓰레기를 처리하도록 한 정책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예전 연탄재 쓰레기 이야기도 나왔다. 연탄은 부피가 큰 에너지원이다. 하룻밤 때고 나면 한 집에서 여러 장의 연탄이 나온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집이라면 꽤 많은 연탄쓰레기가 나온다.
"겨울이 되면 집집마다 연탄이 가득해요. 세 집만 거두면 리어카가 가득 찬다니까요. 그것 다 치우려면 수십 번 움직여야 했어요.""우리 같은 사람은 냄새가 고역이죠. 식초나 유한락스로 지워도 안돼. 어제도 옷 몇벌 버렸어요.""누구는 겨울이 치우기 좋다고 하지만, 난 여름이 좋아요. 겨울에 일 마치고 나면 씻어야 하는데, 연탄 때던 시절이니 언제 물 데워요. 눈 오니 미끄럽고, 일 중간중간 쉬려고 해도 쉴 때도 없어요. 여름엔 괜찮죠. 아무데서나 쉴 수 있고, 끝나면 바로 씻을 수 있으니까. 여름이 냄새 빼면 제일 좋죠."
자정쯤 음식물쓰레기 수거차가 왔다. 평소보다 일찍 왔다고 한다. 음식물쓰레기수거통을 차 옆에 붙이니 도르레를 타고 자동으로 올라가 들이붓는다. 0시 6분 되니까 끝이다.
옆에 있던 권오훈 반장에게 "이런 속도로 하면 금방 끝나겠다"고 말하자 손사레를 친다.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두 개씩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0시 10분 스티로폼 수거차가 왔다. 환경미화원들의 움직임이 아주 빠르다. 0시 12분 상황이 끝나자 수거차가 떠난다. 저 차가 다시 여기에 있는 재활용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이 자리에 오려면 최소한 1시간은 걸린다.
이 시간 이후 누군가 스티로폼을 여기에 버린다면 이틀 동안 방치된 상태로 도시의 흉물이 될 것이다.
0시 15분쯤 부자 관계로 보이는 두 사람이 트럭을 끌고 나타나 매트리스 두 장을 싣는다. 권오훈 반장과 "이렇게 쓸 만한 걸 왜 버렸을까"라며 한참 동안 아쉬워했던 그 매트리스다. 이렇게 들고 가면 수거비용과 소각비용이 줄어든다.
"저런 경우가 많아요?""거의 없죠. 남 버린 것을 누가 쓰려고 하겠어요. 재활용업체에서도 매트리스 같은 것은 안 들고 가요."수거차량이 모두 떠나고 난 거리는 조용하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학생 몇이 언덕길을 질주한다. 정적을 깨고 권오훈 반장이 환경미화원들의 고충을 말한다.
"환경미화원 생활 하다 보면 냄새 때문에 고생 많이 해요. 식당에도 잘 못 가죠. 버스도 잘 못 타구요. 봉투를 써서 옛날보다는 나아졌다곤 하는데…."지금 시각 새벽 0시 37분. 지금부터는 새벽 4∼5시까지 계속 쓰레기를 싣고 이동하고 내리는 작업의 반복이다. 1년 365일 똑같다.
하루 동안 도시가 쓰레기를 만드는 양을 보면서 든 생각은 "엄청나다"였다. 이처럼 밤이면 거리 곳곳에 쓰레기더미가 가득 쌓여 있다가 아침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는 도시가 문득 요술쟁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