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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의 기록인 <나는 걷는다>의 제1권 겉표지. 표지 인물은 이 책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의 기록인 <나는 걷는다>의 제1권 겉표지. 표지 인물은 이 책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 효형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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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거지 차림의 늙은 외국인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맞을까요?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서라면, 아마 우리 아버님이라면, 그 외국인을 재워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님에게는 아직까지 인정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마도 그 외국인을 모른 척 할 것 같습니다.

난 외국인과 마주쳤을 때 도망간 경험이 있습니다. 한 번은 외국인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그 잘생긴 외국인이 내게 미소를 보내며 "영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난 아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노"라고 하고는 그가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외면했습니다. 또 한 번은 일본 사람이었는데, 춘천 어느 골목에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그 사람이 내게 무언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우습게도 난 도망쳤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 펴냄)라는 제목의 책인데 모두 3권으로 엮어졌습니다. 60살이 넘은 할아버지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따라 1만2천 킬로미터를 걸으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그린 여행기입니다. 전직 신문기자였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쉽고 재미있게 글을 썼습니다.

약 1300페이지의 긴 글이지만 지겹지 않게 읽었습니다. 그는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간적으로도 1만2천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곳을 이동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나라마다 종교마다 신기하게도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했고, 어떤 이는 손님 물건을 탐내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마을에서는 돈을 내야 먹을 거든 잠자리든 해결됐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베르나르가 우리나라에 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 그런 궁금증을 가졌던 것입니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이슬람

베르나르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실크로드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터키라는 나라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낀 나라로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인정 있다는, 어디선가 읽은 정보는 사실이었습니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걸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이슬람권답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베르나르에게 잠자리를 제공했습니다. 또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대접할 만한 특별한 요리를 허름한 복장의 낯선 남자를 위해 준비하는 아량을 베풀었습니다.

터키의 이런 문화는 이슬람권의 전반적인 문화였습니다. 특히 이란은 좀 놀라웠습니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란 사람들에게는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숭고한 뭔가가 있구나, 하고 느꼈는데 정말 이란 사람들은 국민 대부분이 성직자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네 번씩 기도를 하고,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전통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지리도 가난한 그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손님을 위해 자기의 모든 걸 주려고 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보니 자기의 종교를 이교도에게 전하기 위해 다소 광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차라리 종교에 신념을 다하는 모습은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물질만능주의보다는 종교적인 게 낫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란의 이런 모습은 나중에 여행하게 되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중국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베르나르가 여행한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이슬람권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 낯선 이방인에게 열렬한 관심을 보이면서 서로 자기 집에 재우겠다고 다툴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베르나르는 이슬람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다가 중국으로 넘어왔습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시안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횡단해야 했습니다.

미국 물질주의에 매혹당한 중국

그런데 베르나르는 중국에서 정말 실망했고, 깊은 고독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에게는 이슬람인들의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전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은 항상 돈을 요구했습니다. 중국에서 베르나르는 언제나 갖고 다니는 텐트에서 자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여관에서 자야 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 낯선 이방인에 대해 무관심 아니면 침묵, 심한 경우에는 거부감을 보이며 돌을 던지거나 하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베르나르의 책에서 중국은 좀 부정적으로 그려졌습니다. 미국의 물질주의를 좋다고 좇아가는 짝퉁 같은 나라로 중국을 묘사됐습니다.

베르나르가 본 중국은 미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중국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인들처럼 영어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다닌다고 비아냥했습니다. 도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건물을 밀어내고 고층 빌딩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돈을 너무 좋아하고 물질적 풍요를 최상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즉, 미국적인 삶, 넓은 아파트에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갖추고 사는 걸 삶의 목표로 갖고 있었습니다.

"웨이위안에서 서양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중국의 천년 문화'는 사라져서, 전 세계를 휩쓴 순응주의와 획일성 속에 녹아 버렸다. 일본인들이 전통과 특성을 간직하면서 현대 문물과 결합했다면, 중국인들은 미국이 대표하는 물질주의에 매혹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동양의 지혜'를 고층 건물 위로 던져버리고, 전통적인 구역을 허물었다." - 본문에서

이런 물질주의 앞에서는 생명도 존귀함을 잃게 돼 어느 부랑자는 죽은 지 한 달 반이나 길거리에 방치돼 있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종교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중앙아시아에서라면 이런 부랑자가 이렇게 죽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르나르 노인은 왜 아시아에 왔을까?

베르나르는 정말 대단합니다. 여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베르나르가 지나간 길 위에는 여행자를 봉으로 알고 돈을 뜯어내려고 안달인 경찰도 있었고, 몇 년간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것 같은 더러운 화장실에서 볼 일도 봐야 했습니다. 또 50도를 넘는 무더위, 고비 사막의 모래바람에 몇 번의 죽을 고비도 넘겨야 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고독감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예순을 넘긴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정말 엄청난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 어려움을 자초했을까? 고향인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남은 생을 편안하고 깨끗한 집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부드러운 바람도 느끼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면서 그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왜 낯선 아시아에 와서 생고생을 했을까요?

이 의문은 읽는 나에게도 해당됐지만 길을 떠난 그는 자신에게 계속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명료한 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므로 그가 떠난 여행 또한 삶의 한 모습이라고 이해할 뿐입니다.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2003)


태그:#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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