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신당 백색테러의 현장에서 이명박 정권의 바닥을 봤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지난 1일 밤 10시20분경 여성 8명만 있던 진보신당 중앙당사에 그들이 들이닥쳤다. 이후 우린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오고 소화기와 깨진 현판 조각이 날아다니는 현장에서 35분가량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진보신당 빨갱이들 다 죽여버리겠어!""빨갱이 새끼들, 개같은 XX들!""진보신당 칼라TV 진중권 나오라고 해!"3명의 남자가 현관 입구에 붙어있는 진보신당 현판을 부수고 셔츠를 찢어 벗어던지면서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누… 누구세요? 어디서 왔어요?""촛불? 가만 안두겠어. 빨갱이들 다 죽었어!"그들은 사무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책상과 복사기를 마구 차고 소리를 질러댔다. 우린 그들을 피해 황급히 복도로 나오면서 경찰과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또다시 그들은 욕설을 퍼붓고 우리 중 한명의 배를 발로 가격하며 이리저리 주먹을 휘둘러댔다. 어깨를 심하게 잡히는 바람에 피가 난 여성도 있었다.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30분만에 온 경찰
밤 10시30분경 주변에 있던 남성 당원 4명이 놀라서 뛰어올라왔다.
"절대 때리지 말아요!" "알았어요."우리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난동은 계속되었다. 경찰에 다시 출동요청 전화를 했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경찰은 늦게 오는 거야?'
경찰 오기 전에 피하려는지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비상계단 문 앞에 서 있던 이광호 영등포 당원을 밀쳐내고 때리기 시작했다. 정강이와 무릎을 구둣발로 찍고, 목을 잡은 채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여성 당원 2명과 광진 구 김다운 당원이 말리자 김다운 당원의 목을 팔에 끼고 무릎으로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고 집단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다운 당원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잡고 흔들다가 바닥에 쓰러뜨리고 머리를 마구 밟았다.
"악~~ 때리지 마!" "당신들 누구야?""경찰이죠? 지금 사람들이 맞고 있다는데 왜 안오는 거야~~?"복도는 욕설과 비명 등등으로 가득 찼다. 보이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던 그들은 복도 옆에 비치되어있는 소화기와 깨진 현판 조각을 복도 구석에 서있는 여성들에게 던졌다. 육중한 소화기가 날아와 발 앞에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찰이 온 것은 밤 10시50분경이었다. 구급 요청을 하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30분이 걸린 것이다(여의도지구대에서 진보신당 중앙당사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경찰이 늦게 왔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경찰과 함께 그들의 동료 2명도 같이 들어왔다. 그들은 경찰 앞에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저 사람들 어떻게 좀 해요. 빨리 제지를 하라니까요!"
우린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맞은 사람 누구예요?"
아수라장이 된 복도와 맞아서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도 경찰은 누가 때렸고 누가 맞았는지 정말 판단이 안 된다는 듯이 느긋하게 행동했다. 덕분에 상황을 듣고 뛰어온 진중권 교수도 경찰이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맞았다. 밤 11시가 넘어 경찰, 그들과 함께 우리 중 일부는 피해자 진술을 위해 경찰서로 갔고 심하게 맞은 이광호, 김다운 당원은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난동 주범이 '국민 대테러운동본부' 준비위원장?
그들 5명 중 가장 저질스러운 욕설과 행동을 한 사람이 나중에 도착한 2명 중 한명이었고 이후 경찰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결과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특수임무행동과학연구원장이라고 했다. 이들 2명은 앞서 난동을 부린 3명과 같이 봉고차를 타고 와서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복도에서 난동을 부리는 중에도 한명이 계속 어디론가 상황을 보고하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5명이 봉고를 타고 이동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술 먹고 진보신당 당사를 지나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들이 복도에 흘리고 간 명함에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사무총장 오복섭'이라고 적혀있었다. 인터넷으로 특수임무수행자회에 들어가 임원 명단을 검색해보니 사무총장 오복섭의 이름과 얼굴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바로 진보신당 당사 난동의 주범이었다.
그의 약력을 보고 다시 한 번 오싹해졌다.
'국민 대테러운동본부 준비위원장', '이명박 대통령후보 안보특위 공동위원장'….
야밤에 여자들만 있는 공당의 사무실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정치테러범이 '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은 언뜻 보면 코미디다. 하지만 그가 2005년 미송환 장기수 묘비를 파손한 것을 포함해 수많은 불법테러를 저질러 온 자임에도 크게 처벌받지 않고 각종 우익단체의 집행책임자 역할을 계속해서 맡아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폭력을 이용하고 비호하는 세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안보특위 공동위원장'이라는 경력을 갖고 있는 오복섭이 이명박 대통령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안보특위 공동위원장으로서 지난 대선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오복섭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안보특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우익 폭력집단의 지지를 받고 탄생한 셈이다.
특임자회에 수익사업 허용하는 법안 제출한 한나라당'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라는 이름을 최근 여러 사건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6월5일 서울광장에서의 '북파공작원 위령제', KBS 방송국 앞에서의 난동, 이번 진보신당 당사 난입 사건 등.
특수임무수행자회 사무실이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에서 4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부터 그 건물에 "대통령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전면 현수막이 걸린 걸 보고 알았다.
이번 사건을 당하고 특수임무수행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이 단체는 올해 1월에 공식 출범했다. '특수임무수행자 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유일한 공인 특수임무수행자 단체로서 각종 권한과 혜택을 받는 조직이다. 여기에 더해 한나라당은 손범규 의원을 중심으로 이 단체에 수익사업을 허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최근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온몸으로 막고 정권에 충성을 바치는 특수임무수행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두렵다.
경찰의 수수방관과 한나라당의 지원을 받는, 이 테러조직을 40m 옆에 두고 일해야 하는 진보신당 당직자로서 두렵다. 엄청난 폭력과 공포감을 유발하고 있는 이 단체에 각종 수익사업으로 날개를 달아주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노력에 의해 그 존재가 인정된 북파공작원과 유족들의 명예가 또다시 국가권력과 일부세력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테러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하지만 촛불은 역시 강했다. 60일간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촛불은 그 원동력이 연대의 힘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사건이 발생한 밤부터 다음날까지 시민들의 걱정과 격려 전화로 업무를 볼 수가 없었다. 또 특수임무수행자회가 진보신당 당사 앞에 집회 신고를 냈다는 보도가 나오자 진보신당을 함께 지켜주겠다는 촛불시민들의 전화와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3일 밤에도 기독교시국집회를 마치고 난 15명의 시민들이 밤 11시경에 진보신당 당사 앞으로 와 1시간 동안 있다가 돌아갔다. 촛불시민들은 인터넷에서는 특수임무수행자회가 관련된 각종 이권사업을 밝혀내 항의하고 특수임무수행자회와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과의 그간 잘못된 만남(?)을 찾아내 폭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촛불시위의 성격은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라고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촛불을 이념대립으로 몰아가고 "불법시위대에게는 총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조갑제가 선동하고 "불법시위대에 대해 엄중 대처하겠다"고 말한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행했다. 특수임무수행자회는 이들의 지시를 따르는 충실한 행동부대였던 셈이다.
진보신당과 촛불시민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이번 테러 사건의 책임을 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최은희 기자는 진보신당 당직자 입니다.